실직 도시 - 기업과 공장이 사라진 도시는 어떻게 되는가
방준호 지음 / 부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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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눈 감아 버려도 괜찮은가?

그들의 고통은 고립된 채 그들만의 고통이어야 하는가?

그럴 수 있는가?


《실직도시》라는 제목부터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하지만 저자와 출판사 담당자들 역시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한국지엠 군산 공장'이 철거한 후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후폭풍을 견디고 있는 군산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제목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책의 초반은 한국지엠 군산 공장 철거 후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군산을 방문한 2018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중공업에 이어 한국 지엠 공장까지 철거하여 고용 및 산업 위기 지역으로 지정된 후 현장 방문을 온 경제부총리 뒤에는 전북도지사와 군수 그리고 지엠대우 노동자였던 김성우씨가 있다. 기자들은 경제부총리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사진을 찍고 음성을 기록한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실직자 김성우씨의 말은 구체적이지만 김성우씨의 말을 경청하는 경제부총리의 말은 두루뭉실하다. 하지만 기자들은 구체적이고 절박한 김성우씨의 말보다 공허한 경제부총리의 말을 받아적기에 바쁘다.

공허하고 당연해도 중요한 말과

구체적이고 절박하지만 덜 중요한 말을

무참히 갈라 내는 것이 우리 일이라고. 나는 그때 믿었다.


기자들뿐이 아니였다. 언론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들 또한 군산 노동자들의 절박한 말을 잘 듣지 못했다. 그저 안 됐지만 어쩔 수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쉽게 잊혀졌다. 문제에 대한 원인은 본사가 결정한 일이니 해답도 없으니 다른 대기업 공장 유치만이 정답이라는 원론적인 말만이 맴돌았다.

《실직도시》의 저자 방준호 기자는 군산에 머물며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지엠 공장이 세워지던 과정을 취재한다. 군산시청 공무원 백일성씨가 사방을 뛰어다니며 현대중공업 조선소를 유치하기 위해 대학에 조선소 관련학과 신설하고 고등학교 또한 조선소 인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과정으로 개편된다. 그야말로 대기업 공장이 세워지기 위한 조건으로 탈바꿈한다.

한국지엠 공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우 자동차 공장은 지엠과 인도 타타대우상용차로 매각된다. 이제 군산은 현대 중공업 조선소와 지엠대우 공장이 군산을 대표하는 일자리가 된다. 땅값이 들썩이고 군산 토박이 및 외지 사람들이 유입된다. 협력업체들 또한 신바람이 났다. 안정적인 대기업 공장 근로자라는 정체성은 노동자들의 자부심을 높여주었다. 대기업 공장들의 유치로 신바람나있던 그 때 다른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의사 결정을 하는 기구가 없이

공장만 달랑 한국에 있는 형태인 것이 걱정스러웠어요.

말 그대로 생산 기지가 되는 것이죠.

생산 기지라는 건 생산 원가만 따지게 되죠.

언제든 어려워지면 공장을 접을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그 때도 했어요.


이 우려의 목소리는 현실이 된다. 저유가 시대에 수주가 줄어드는 조선소와 수요가 줄어드는 지엠 차량. 수요가 줄어드니 당연히 본사에서는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쁘다. 생산원가가 안 맞아 일방적으로 철수를 결정하고 뉴스로 공장 철수 소식을 듣게 되는 지엠 노동자들. 비정규직은 어떤 보호책도 없이 실직자가 되고 정규직은 희망퇴직금과 다른 공장으로의 배치 전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풍요로웠던 모든 삶이 정지가 된다.

《실직도시》는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흔하게 볼 수 있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 광고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지역들이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 유치하는 것을 제1목적으로 삼는다. 공장이 세워지면 자연스레 일자리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도시들이 대기업의 입맛에 맞게 바꾸고 열심히 일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군산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지역에게 일자리는 무엇인가.

사람에게 일자리는 무엇인가.

사람을 위해, 이 숱한 관계를 위해

일자리가 존재할 수도 있는 거였다.

거기 맞는 일자리를 지역이 구상할 수도 있는 거였다.


대기업의 생산 기지로만 존재했던 군산의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지엠 공장의 노동자는 철저히 생산 원가로서만 평가받았다. 그들의 절박함이 멀리 떨어진 미국의 디트로이트 본사에 통할 리 없었다. 대기업 유치에 급급하여 온갖 세금을 감면해주며 혜택을 제공하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은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 일자리가 사람을 위해 지역을 위해 구상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야 함을 이제는 고민해야 할 때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광주형 일자리'와 '군산형 일자리' 등 새로운 일자리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대기업에 치중하는 현상이 피할 수 없다. 함께 상생하기 위한 발자국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군산은 과연 이 후폭풍을 견디고 새롭게 나아갈 수 있을까? 《실직도시》에서 보여지는 군산의 현재는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전기차 '명신'이 인수하고 공장이 들어섰지만 지엠 공장때는 꿈도 꿀 수 없다. 문제점은 알지만 해결책은 요원하기만 하다.

다시 저자가 했던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이 고통은 단순히 그들만의 고통이어야만 하는가? 이대로 내 일이 아니라고 눈감아 버려도 괜찮은가? 군산의 지엠 공장 노동자들 또한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공장 철수 이후, 미국 다른 지역의 공장이 철거하고 남은 지구 반대편의 고통이 바로 자신의 고통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글로벌 시대에 지구 반바퀴 지역의 고통이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건 우리에게도 통한다. 아직까지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외치는 지역 관공서뿐만 아니라 노동자인 우리 모두가 단순히 그들만의 고통으로만 생각할 때 군산과 같은 문제가 우리 앞에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올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다시 고민해야 한다.

우리에게 일자리가 무엇인지. 지역에게 일자리가 무엇인지. 기업만 빛나는 일자리가 아니라 지역과 사람 그리고 기업이 함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일자리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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