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로드
조너선 프랜즌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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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 8년째. 아내, 엄마로 살아가며 느끼는 건 결혼생활은 결코 연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함께 하기 위해 결혼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퇴색해 버리는 마음에 놀라기도 하며 이 결혼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를 매번 깨닫곤 한다.

#조너선프랜즌 의 신작, 무려 800페이지가 넘는 소설 #크로스로드 는 내게 그런 소설이었다. 한 가정이 얼마나 유리처럼 가벼울 수 있는지, 가정 구성원이 서로 무너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겹겹의 이야기가 쌓여야 하는지 알게 해 준 소설이다.

백인 부유층들이 사는 제일개혁교회의 부목사인 러스 할데브란트는 경건해야 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아내 메리언에게 싫증을 느낀다. 자신의 자부심이었던 교회 중고등부 모임인 크로스로드에서 치욕적으로 물러나 성인 봉사활동을 이끄는 러스 부목사는 젊은 미망인 앰브로즈 부인에게 마음이 가 있다. 자신의 위치에서 흑심을 드러낼 수 없기에 봉사활동이라는 명분으로 함께 있을 기회를 만드는 러스의 모습은 이 가정의 위태로운 모습을 대표한다.

소설 <크로스로드>의 가장 큰 장점은 이 러스 가족 구성원 모두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부분에 있다. 아버지 러스를 자랑스러워하던 클렘이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목격하고 급격하게 실망하며 돌아서는 모습, 아름다운 미모에 남학생들의 추종을 받지만 결국 애인이 있는 태너를 빼앗는 베키, 약물중독으로 무너져가는 똑똑한 페리, 그리고 막내 저드슨까지 개개인의 심리 묘사를 통해 이 가정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랑하는 연인에서 짜증나는 걸림돌이 된 메리언. 메리언이 소피와의 상담을 통해 과거의 연인 브래들리를 기억해내고 자신을 배신한 남편 러스에게 욕을 내뱉는 장면은 욕이 아닌 울부짖음으로 들린다. 목사의 사모라는 굴레에, 한 가정의 엄마라는 짐에 눌러 있던 그녀가 옛 연인 브래들리가 떠오른건 그래도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주었던 일말의 추억 때문이 아니었을까 떠올려본다.

계급에 따라 베트남전을 피할 수 있는 주류 백인층에 비해 어쩔수없이 파병을 해야만 하는 미국 빈민층의 실태, 흑인 교회에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있는 자들의 대리만족이었던 허울 뿐인 봉사활동, 조금씩 싹트고 있는 여성문제와 그 안에서 갈등하는 여성들의 모습 등이 각 개인들의 적절히 녹여들어 1950년대의 미국 사회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해 준다.

생생하게 묘사된 인물들의 심리에 어느 누구도 탓할 수 없다. 바로 우리, 또한 이웃들의 모습처럼 생각될 만큼 설득력있게 그려져 가장 부도덕한 러스 또한 이해가 된다. 각 구성원들의 상처가 돋보였던 대림절로 시작하여 다시 부활절로 마무리되며 깨진 이 가정이 다시 일어서며 마무리되는 이 소설은 가정이라는 의미보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가족들 중 어느 하나 치우치지 않고 묘사되어 가족들간에 함께 읽고 각자의 입장에서 나누어봐도 좋을 것 같은 소설이었다.




- 인상 깊은 글귀 


난 이 독실한 척하는 헛짓거리에 신물이 나. 


가정생활이란 고등학교의 축소판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말로만 불우한 사람들에게 공감해야 한다고 하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오직 그 아이들 덕분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이 무거운 짐이기는 했다. 그래, 아이들은 그의 창의력을 고갈시켰다.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만이 그가 지옥에 떨어지는 벌을 받지 않도록 막아주었다. 


매리언은 그 프로그램이 이곳을 찾아오는, 무시당하거나 버려진 모든 아내에게 적용될 거라고 추측했다. 프리 사이즈인 것이다.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경찰이 그녀를 데려간 이후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것 같은 단어를 큰 소리로 말했다. "씨발!" 

하, 기분이 좋았다. 

"좆같은 도리스 해플. 좆같은 미트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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