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전범선 지음 / 포르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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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전범선씨에 대한 어느 지식도 없다. 이 책을 읽게 된 건 단지 비거니즘 에세이. 그 한 가지 때문이었다.

진정한 환경보호의 최종점은 비거니즘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인간이 자연에게 최대한 해를 입히면 안 된다며 어떻게든 쓰레기를 줄일 방법을 고민하지만 정작 육식은 포기하지 못하는 나의 비겁함 또한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삶에 대해. 제목 그대로 사는 동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삶에 대해서.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의 저자 전범선씨는 밴드 '양반들'의 보컬이자 사랑하는 연인 지지씨와 함께 비거니즘의 삶을 살아간다.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 자문위원이자 비거니즘을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활동들을 활발히 하고 있다.

비거니즘은 우리의 밥상을 죽임이 아닌

살림의 먹거리로 채우는 것이 시작이다.

페미니즘은 남성중심 사회가 여성의 몫으로 할당하고 폄하했던 살림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죽임의 문명에서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은 공통의 적을 갖는다.


우선 저자는 페미니스트이자 채식주의자 지지씨를 만나며 달라진 세상을 이야기한다. 여성에게는 위험의 공간으로 잘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남성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공간이며 폭력으로부터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노출되어 있는 세상. 애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전범선씨는 기득권의 세계가 아닌 약자의 시선으로 보는 법을 배워나간다.

같은 채식주의자로 동물의 해방을 위해 함께 행동하는 그들의 가치가 같았기에 전범선씨는 애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 만약 전범선씨가 일반 남성들과 다르지 않았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막상 각오를 했지만 저자가 설명하는 채식주의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단순히 고기만을 생각했던 내게 저자는 동물에게 해를 끼치며 만들어지는 모든 제품으로 영역을 확대해간다. 고기는 차치하고 젖소에게 고통을 줘서 짜내는 우유, 그에 따른 유제품 (치즈, 버터), 계란, 라면, 더 나아가 대체육까지 금하며 발효음식, 채식만으로 먹는 자연식물식 위주의 채식주의길은 처음에 정크 비건으로 살아가던 저자에게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하지만 읽어나가며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걸 금하면서 왜 사람은 동물을 죽여 먹는 걸 당연시하는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과연 인간에게 그런 권리가 있는가. 똑같은 하나님의 창조물이건만 왜 인간은 동물을 학대하며 착취물을 누리는가. 함께 살아가라고 만들어진 세상에서 정작 한 쪽만이 행복한 걸 평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가장 무릎을 치며 공감한 부분은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정부의 살처분 비판한 부분이었다.

전염병이 돌기만 하면 무조건 집단 살처분하고 땅에 묻는 모습을 보며 궁금했다. 왜 저들을 치료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질문을 한 지인과 나누었을 때 그 지인은 고칠 방법이 없다라는 식으로만 이야기했었다. 그 대답을 들으며 어쩔 수 없는 것일까라고만 생각했는데 저자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코로나가 터질 때 정부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염을 최대한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왜 동물에게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지 않는가? 왜 전염병의 원인인 밀집형 사육을 유지하면서 살처분으로만 해당하는가...

아.. 동물들의 사회적 거리 두기, 바로 왜 조류 인플루엔자와 같은 전염병의 원인인 밀집형 사육을 해체하는 것이 바로 첫 걸음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사람과 같은 근본대책이 동물에게 허용되지 않고 죽음을 명하는가... 또다시 조류인플루엔자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이 떄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가부장제는 남자란 자고로 힘이 넘쳐야 한다고 가르친다.

둘 다 명백한 오류지만 둘이 합쳐져 남자는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쓴다는 미신을 만든다.


여성이 절대적으로 많은 비거니즘의 실태에 대해서도 저자는 '사냥꾼 남성, 채집꾼 여성'의 기존 이분법을 부정한다. 육식을 선호하는 남성 문화의 배경에 저자는 힘을 강조하는 가부장제 문화에 원인이 있음을 말한다.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는 읽으면 읽을수록 고민이 많아지는 글이다. 특히 나 혼자만의 식탁이 아니기에 아이들의 식탁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을까란 고민이 많아진다. 살인적인 밀집형 사육은 반대하면서 그 결과물은 마음껏 먹고 있는 나의 비겁함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이 글에서 자신있게 비거니즘을 시작하겠다고 나는 말하지 못한다. 다만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건, 채식의 비중을 좀 더 늘리겠다는 것. 그 사소한 시작부터 해보려고 한다.

살고 싶다.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건 바로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 모두 함께 행복한 길이다. 한 쪽만 행복했던 결과는 이미 우리가 겪어 오고 있지 않은가. 동물의 불행은 결국 부메랑처럼 인간에게 돌아온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 또한 그 결과물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나보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주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비거니즘은 취향의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비거니즘. 우리가 가야 할 종착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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