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호텔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2
마리 르도네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림원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병원에 다녀왔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질병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내 몸에 새로운 질병들이 생겨난다.만원 이내의 진료비를 생각했는데 5만원이 청구되었다. 노화는 갈수록 더 많은 유지 보수를 요구한다. 건물 또한 다르지 않다. 신축되면 으리번쩍하며 영원할 것 같지만 시간이 갈수록 건물은 하자를 드러낸다. 우리가 우리 몸이 건강을 잃어간다고 포기할 수 없듯, 건물 또한 관리 비용이 많이 든다고 그 건물을 포기할 수 없다.

마리 르도네의 소설 『장엄호텔』 은 독특한 소설이다. 먼저 '장엄'의 뜻을 생각해본다.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에게 올려 장식하는 일.

영어 제목은 Splendid Hotel 의 Splendid는 '좋은', '훌륭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책 제목 『장엄호텔』 과 <Splendid Hotel>만 보면 매우 훌륭한 별 다섯개 등급의 호텔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내용은 정반대다. 할머니로부터 호텔을 물러받은 '장엄호텔'은 고장투성이다.배수가 안 되어 변기가 막히고 창문을 열면 늪 때문에 냄새가 고약하다. 지붕은 허물어가고 전기까지 위험하다. 어디 하나 말짱한 곳이 없다. 인간의 몸으로 따지면 '안 아픈 곳이 없는 종합병원'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 호텔은 할머니가 신축했을 때는 멋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호텔은 주인공에게 애물단지가 따로없다. 매일 양동이를 들고 변기를 뚫고 수리공을 불러 수리하며 빚이 늘어난다. 물은 새고 손님들의 불만은 쌓여만 간다. 어디 그 뿐인가. 어린시절 자기만 놔두고 언니 둘만 데리고 떠났던 엄마는 훌쩍 돌아와 철없는 언니 아다와 아델까지 보살펴야 한다. 주인공은 호텔 일로 발을 동동 구르는데 철부지 언니들의 뒷처리까지 해야 한다.

소설은 주인공이 언니들을 돌보고 호텔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한 가지를 고치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진다. 이제 일이 풀린다 싶으면 엉뚱한 일이 주인공의 발목을 잡는다. 사고들이 연이어 반복되고 호텔을 포기할만도 하건만 주인공은 호텔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끝까지 불을 밝히고 변기를 뚫고 물을 퍼낸다.

이 반복적인 일상을 읽노라면 이 호텔이 결국 우리의 삶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할머니가 물러준 호텔 또한 처음에는 이름 그대로 멋지고 아름답고 위엄있는 호텔이었다. 우리 또한 멋지고 아름다운 존재로 태어난다. 2-30대까지 우리는 위풍당당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의 중반기를 넘어서면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긴다. 내가 난생 처음 겪는 질병에 병원을 다녀온 것처럼 우리 몸은 수많은 유지보수 비용을 청구한다. 주인공의 호텔이 연달아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우리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고 우리의 삶을 포기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살아가면서 한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생겨나는 법. 그 고개를 묵묵히 가야 하듯 주인공 또한 호텔과 언니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상황이 악화되고 악취가 나도 손님이 단 한 명만 있어도 호텔을 묵묵히 꾸려나간다. 어느 누가 보지 않는다해도 장엄호텔의 네온사인을 밝히며 그 자리를 지켜나간다.



무너지고 무너져도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고 그게 중요한 거다'라고 말한 최진영 작가의 추천사처럼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삶을 지탱해 나가야 함을 이 소설은 무너져 가는 '호텔'을 통해 보여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고 했던 푸시킨의 시처럼 삶을 견디어 갈 것을 주인공은 보여준다. 포기하지 않는 것, 일말의 희망이라도 놓지 않는 것, 그 자리를 지켜나가는 것. 결코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을 보며 나의 삶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점점 녹슬어가는 나의 몸에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해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