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의 시간 -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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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수의 선수만 프로가 되는 거야?

왜 1군과 2군을 나누는 거야?

왜 굳이 연장 게임을 해서까지 승패를 가리려는 거야?

연봉과 성적은 왜 다 공개하는 거야?

왜 모두 승자가 될 수 없는 거야?


어렸을 때는 모두 꿈을 꾼다. 대통령, 선생님, 과학자 등등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누가 조금만 머리가 좋아도 크게 될 놈이라며 기대에 부풀고 잔뜩 꿈을 심어준다. 나 역시 그랬다. 책을 좋아했던 나를 보며 엄마는 내가 좋은 대학을 갈 거라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책은 내 성적과 별개였다. 당연히 엄마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 후 엄마는 내게 종종 말씀하셨다. "난 네가 책을 좋아해서 뭐라도 크게 될 줄 알았다."

크게 되지 못한 나에 대한 실망과 동시에 내가 지극하게 평범한 나의 현실을 원망하게 만드는 말이였다.

『불펜의 시간』은 읽는 내내 엄마가 내게 들려준 말이 떠나지 않는 소설이었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스포츠를 한다고 하면 반응은 두가지이다. "스포츠를 하려면 돈이 말이 들어." , "스포츠는 제1인자가 아니면 알아주지 않아."

사람들의 반응대로 이기고 지는 게 확실한 스포츠는 소수의 엘리트만 주목받는다. 그 외의 선수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을 알리기 위해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지만 대중에게 각인되지 못하고 코트 뒤로 쓸쓸히 사라지는 게 스포츠계의 현실이다.


소설 속, 주요 인물 세 명은 모두 코트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안감힘을 쓰는 인물들이다. 프로선수 포기 후 증권회사 막내로 일하며 조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준삼, 고등학교까지 촉망받는 야구 선수였으나 프로 전향 후 기대에 어긋나며 계투 선수로 볼넷을 던지는 선수 권혁오. 초등학교 시절 유일한 여자 야구선수였으나 여자 야구단이 없어 꿈이 좌절되었지만 스포츠신문 기자로 일하는 이기현 이 세 명 중 편집장에게 인정받는 이기현을 제외하고 준삼과 혁오는 자신이 속한 곳에서 방출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이겨야 하며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짓밟아야 한다. '연대'와 '동료'라는 의식도 없이 적자 생존인 사회 시스템은 같은 동료들까지 잡아 먹으라며 부채질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스템에 어쩔 수 없이 같은 동료를 공격한다. "가장 오래 버티는 자가 이기는 거다"라는 씁쓸한 변명으로 합리화하면서 자신을 방어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도쿄올림픽 금메달 소식을 들었다. 금메달 뉴스를 접하며 웃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이 『불펜의 시간』 속에 나오는 혁오가 만든 진호리그와 겹쳐진다.

이겨야만 박수를 받으며 살 수 있는 이 사회가 과연 정당한건지.

도전정신을 높이 평가한다지만 오직 승자에게만 박수받게 되는 이 현실이 과연 정당한것인가.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그 뒤에 가려진 수많은 선수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겹쳐진다.

책을 좋아했음에도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고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나를 보며 뛰어나지 못한 내 자신을 보게 된다. 회사에서 승진 경쟁에서도 밀려나며 누군가의 어시스트로 살고 있는듯한 내 모습이 준삼의 모습과 혁오의 모습을 통해 짙은 공감을 자아낸다.

소수의 승자만이 독식하는 사회. 이 시스템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반기를 드는 혁오와 준삼의 모습은 끝내 화려하지는 못하다. 어찌보면 현실을 넘어서지 못하는 문제이니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들의 작은 움직임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우리가 평범하다고 여기지만 결코 평범한 것은 없다. 우리의 모든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달리고 있고 삶이라는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우리 모두가 승자임을 말해준다.




-한겨레문학상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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