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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싶다 ㅣ 문득 시리즈 5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이상원 옮김 / 스피리투스 / 2021년 6월
평점 :

"달이 빛난다고 말하지 마라. 깨진 유리 조각의 반짝임을 보여줘라"
안톤 체호프의 창작론이다.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우는 안톤 체호프는 단편소설의 대가이다.
당대의 유명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 수전 손택, 레이먼드 카버 등이 극찬했던 안톤 체호프의 소설집 『자고 싶다 』 이다. 표제작인 <자고 싶다> 를 포함해 총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대의 특징 때문일까. 러시아의 문호들 중에서 가난에 대한 묘사가 유난히 잘 두드러진 것 같다. 안톤 체호프의 소설 <자고 싶다> 또한 그런 느낌을 연상케 한다.
아이를 돌보며 온갖 집안일을 도맡는 애보기 바르카는 온통 동분서주한다. 주인댁의 잡일도 해야 하고 아이도 재워야 한다. 겨우 열세 살인 바르카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열심히 자장가를 들려주지만 정작 자신은 잠을 자지 못하는 모습이 자장가와 대비되며 바르카의 가난을 더욱 극대화한다.
"자장자장 아가야 자자" 자장가 소리가 반복되며 그에 맞춰 바르카의 졸음을 못 이기는 모습 또한 생생하게 보여준다.
두 눈이 감기고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목이 아프다. 눈꺼풀도 입술도 움직일 수가 없다.
얼굴에서 물기가 다 빠져나가 감각이 사라지고
머리는 바늘귀처럼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다.
"자장자장, 아가야 자자."
하층민인 어린 바르카가 가난에 의해 끝내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그 섬뜩한 비극은 가난이 인간을 어디까지 몰아갈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겨우 열세 살 어린 나이임에도 가난은 삶에 잔인한 상처를 남긴다.
『자고 싶다』 소설집의 수록작인 <6호 병동> 에서 6호 병동은 정신병원이다. 젊은 의사인 안드레이 예피미치는 삶이 무료하기만 하다. 정부로부터의 지원은 고사하고 따분하고 대화상대가 없는 안드레이 예피미치가 말벗이 되는 사람은 정신병원 6호 병동의 이반 드미트리치이다. 예상치 않은 곳에서 친해지게 된 예피미치와 환자 이반 드미트리치의 대화는 삶, 스토아 철학 등 고고한 주제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그러나 세상은 정신병자인 이반 드미트리치와 친해질수록 의사 안드레아 예피미치를 점점 정신병으로 몰아가고 주변의 판단에 의해 의사인 안드레아마저 병동에 수감된다.
우리 둘 중 누가 정신병자야?
다른 승객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나인가,
아니면 자기가 제일 똑똑하고 말할 거리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모두를 귀찮게 하는 저 이기주의자인가?
우리가 타인에게 하는 판단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과연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궁지로 몰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주변인들과 다르게 정신병동의 환자와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배척하고 판단하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는 없는가.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안톤 체호프의 소설은 저자가 말한 대로 달이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읽는 독자에게 성찰하게 할 수 있도록 떄론 신랄하기도 하고 때론 비유가 넘치기도 한다. 고전임에도 문장이 잘 번역되어 읽는 이의 이해를 도와준다.
안톤 체호프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