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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이야기 ㅣ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29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천은실 그림, 정영선 옮김 / 인디고(글담) / 2021년 7월
평점 :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소공녀』가 올바른 제목인 『세라 이야기』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 <소공녀> 속에서의 세라는 부유한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 후 하녀로 신세가 전락한 후 고생을 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를 만나게 되어 다시 행복을 되찾는 이야기였다. 세라는 단지 현실만을 견디며 착하게 살아가는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그 당시 쓰여진 역할처럼 아버지의 친구에 의해 부를 회복하며 행복을 되찾는 다소 피동적인 인물처럼 느껴졌다. 성인이 되어 다시 읽게된 『세라 이야기』는 과연 예전과 동일할까 아니면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궁금했다.
『세라 이야기』는 기존과 다르지 않다. 아버지 랠프 크루 대위밑에서 사랑을 받고 자라난 세라 크루는 나이에 맞지 않게 의젓하며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따뜻한 소녀이다. 민친 기숙여학교에 맡겨진 세라 크루는 세속적인 민친 교장의 의도적인 총애를 받으며 생활하게 된다. 세라는 놀랍게도 자신이 가진 '부'에 대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인지한다.
이런, 우린 다 똑같아.
나도 언니처럼 어린 여자아이일 뿐이잖아.
내가 베키 언니가 아닌 것은 우연일 뿐이야.
베키 언니가 내가 아닌 것도 우연이고!
어린 시절부터 부유하게 자라난 이들은 자신의 부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못 가진 이들을 이해하기 힘들어하고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지금도 '할아버지 재력'이 '손녀의 재력'이라는 말이 오가는데 1888년에 쓰여진 『세라 이야기』 시절에는 더욱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라 이야기』에서는 부자인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모두 똑같다는 다소 진취적인 여성상을 엿볼 수 있다. 그 원칙 하에 세라는 친구들을 만들어가고 세라가 하녀로 신세가 바뀌었을 때 세라에게 절대적인 힘이 되어 준다.

성인이 되어 다시 읽게 된 『세라 이야기』에서 가장 압권은 세라의 상상력이다. 세라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의 힘이 세라가 불행을 대하는 태도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준다. 어린 시절, 동화책으로 <소공녀>를 읽었을 때는 세라의 상상력은 거의 없거나 무시되어 왔다. 단지 세라의 착한 성품만이 강조되었다. 나 역시 세라가 이토록 상상력이 풍부한 인물이라는 걸 다시 읽는 『세라 이야기』 를 통해 늦게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
아끼는 최애 인형 에밀리의 삶을 상상하고 민친여학교의 하녀 베키의 삶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상상하는 세라. 세라는 자신의 불행 또한 상상력으로 버티어간다. 프랑스 혁명의 바르세유 감옥을 상상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품위를 잃지 않는 공주라고 상상하며 언제나 해피엔딩인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 자신의 상상을 멈추는 순간 힘든 현실이 자신을 압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세라는 상상을 멈추지 않는다. 끝까지 자신을 지켜나간다.
제가 공주인데 교장선생님께서 뺨을 때리는 거라면 어떻게 될까,
저는 교장선생님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어요.
제가 공주라면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교장선생님께서 감히 뺨을 때리지는 못하셨겠죠.
교장선생님께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놀라고 겁나실까 생각했고요.
세라의 상상력은 자신에게 뺨을 때린 민친교장의 학대에서도 계속된다. 남이 들으면 비웃음을 살 상상이지만 고전은 세라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며 사악한 민친교장에게 한 방을 시사해준다. 과연 민친교장은 세라의 상상이 현실이 될 줄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어린 시절 읽은 <소공녀>는 단지 부유한 소녀였고 운 좋게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 다시 행복을 되찾은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세라 이야기』 에서의 세라는 자신의 부를 당연한 걸로 여기지 않으며 불행할 수록 더욱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소녀였다. 불행 앞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보다 현실을 담담히 마주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소녀로 새롭게 다가온다.그러한 세라의 모습과 함께 『세라 이야기』 속의 그림 또한 불행하지 않게 따뜻하게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