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샬롯 퍼킨스 길먼의 단편 소설 『누런 벽지』는 페미니즘의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한 여성의 일기로 이루어진 이 짧은 글은 주변의 억압에 의해 정신적으로 죽어 가는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월간 내로라는 한 달에 한 권 짧은 영미 고전 소설을 소개하는 시리즈이다. 올해 2월부터 시작되었으며 『누런 벽지』는 지난 4월에 소개된 세 번째 시리즈이다. 내로라 시리즈의 『누런 벽지』는 한영대역판이다. 영어와 한글 본문이 나란히 삽입되어 문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누런 벽지』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앞서 말했듯, 『누런 벽지』는 한 여성의 일기다. 총 열한 번째 일기로 이루어진 이 일기의 주인공 여성의 남편의 이름은 '존'으로 사람의 몸을 치료하는 의사다. 남편과 주인공(주인공은 이름이 없이 '나'로 표기된다)은 삼 개월을 지내기 위해 한 저택에 머무른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남편, 부유한 환경을 보여주는 상황 속에서 나는 이상 증세를 느끼지만 남편은 아내의 말을 무시한다. 의사인 자신이 잘 안다면서. 나의 오빠인 유명한 의사인 오빠마저도 똑같이 동생이 신경 쇠약일 뿐이라며 모든 행동을 금한다. 글쓰기도, 일도 금하고 휴식만을 강요한다.


내가 병들었다는 것을 그는 부정해!

그런데 내가 무얼 할 수 있겠어?


의사이기에 환자인 아내의 말을 믿지 않고 자신들이 병명을 진단하고 모든 것을 억압해 버리는 남편. 그 남편의 억압 속에 주인공 나는 모든 활동을 금지당한다. "그런데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냐"며 자포자기한 듯한 말투가 책 속에서 흘러나온다.

책의 내용은 벽에 붙은 '누런 벽지'를 보며 아내는 계속 이상 증세를 호소하지만 남편은 끄덕하지 않는다. 다만 아내를 억압할 뿐이다. 의사인 내가 잘 안다면서 자신이 진단하고 처방내리며 아내를 금한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존은 절대 모를 거야.

내가 힘들어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확신하고,

그 사실에 흡족해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누런 벽지』를 설명하는 문장은 바로 주인공의 한 마디가 모든 걸 대신한다고 믿는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없는 풍족한 아내가 힘들게 없다고 생각한다. 아내를 믿으려 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내를 대하고 다른 방으로 옮겨달라는 아내의 말도 무시하고 점차 아내를 무너트린다.

힘들어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믿는 남편 존의 모습에서... 나 역시 나의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

물론 나와 이 책의 주인공의 모습은 다르다.

『누런 벽지』에서의 나는 풍족하다. 그리고 아이를 돌봐 주는 사람도 있고 남편과 오빠 또한 유명한 의사이다.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조건이다. 그래서 남편은 "네가 힘들어 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한다.

나의 경우는 다른 의미에서 달랐다. 쌍둥이들에게 지극정성인 남편, 육아에 적극적이며 술 한 번 안 마시고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주변인들은 말했다. "잘 도와주니 좋겠다고", "가정적인 남편을 만나 부럽다고". 어머니도 이런 남편을 보며 흐뭇해하며 내게 자랑하셨다. 자신의 아들이 이렇게 잘 하는 남자인 줄 몰랐다며.

하지만 막상 내가 힘들다고 하면 주변의 반응은 달랐다. 남편은 "내가 얼마나 더 해야 힘들다는 소리를 안 할래?" 라고 말했고 주변에서는 그렇게까지 하는데 힘들다고 하냐고 나를 탓했다. 적극적인 남편이 있으니 내가 힘들어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들으려 하지 않았고 나의 말은 차단되었고 억압되었다.

그래서 주인공이 힘들다고 하는 그 절규가 내 마음 속의 메아리처럼 울러 퍼진다.

『누런 벽지』에서 얼마나 힘들지 모를거다라는 주인공의 말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난 이후에도 내 마음 속에 메아리친다. 왜 내가 힘들다고 하는데 그들은 무슨 근거로 아프다는 소리를 차단하는가. 자신들 위주로 해석하며 아플 이유가 없다고 듣지 않는가. 누구를 위한 처방인가. 누구를 위한 억압인가.

책 속의 나에게 가해진 억압이 현대에서는 이름과 형태만 달라질 뿐 억압은 같은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주인공을 조금씩 무너트리는 누런 벽지, 그리고 남편은 다른 이름으로 계속하여 변주되며 억압한다. 비록 짧은 단편이지만 여운은 오래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