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 개정판
김훈 지음 / 푸른숲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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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나는 정작 김훈 작가의 작품은 읽지 못했다.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김훈 작가의 작품을 최근에 새롭게 개정판으로 출간된 장편소설 『개』로 읽게 되었다.

김훈 작가의 장편소설 『개』 는 신작이 아닌 2005년에 출간된 소설이다. 출간 후 15년이 된 소설을 작가가 글을 수정하여 새롭게 펴낸 개정판이다. 보통 개정판은 많은 수정을 거치지 않지만 작가가 한 글자 한 글자 수정했다는 작가의 서문을 보며 이 소설을 향한 작가의 애정을 알 수 있게 한다.

소설 『개』 는 댐 공사로 마을이 함몰 직전에 놓인 시골의 노부부가 키우는 어미개가 새끼를 낳으며 시작된다. 네 마리의 강아지 중 우리의 주인공 진돗개 '보리'는 셋째이다. 보리밥을 잘 먹는다 하여 지어진 이름 '보리'가 철저하게

'개'의 시점에서 사람들의 삶을 보고 들으며 함께 하는 과정을 그려낸 소설이다.

진돗개 '보리'는 애완견이 아니다. 사람들이 방에서 키우고 함께 산책하며 안고 귀여워해주는 개가 아니다. 시골에서 개집에서 생활하며 함께 하는 가족이지만 가족 구성원보다는 동물로만 인식된다. 또한 보리가 머무르는 곳은 자연과 함께 벗삼아 살아가는 곳이다. 처음에는 보리의 고향인 시골과 주인할아버지의 둘째 아들이 살고 있는 어촌 마을. 이 두 곳을 오가며 보리의 시선에 의해 자연과 마을 사람들의 생활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먼저 보리가 태어난 곳이 댐으로 함몰 직전의 마을이라는 점이 시선을 끈다. 사라져가는 자연의 모습과 해체되어가는 공동체의 모습. 어쩔 수 없이 반강제적으로 살고 있는 터전을 빼앗기고, 부모님의 묘소를 빼앗기는 모습, 그 안에서 함께 슬퍼하며 떠나가는 사람들. 남의 집에 세들어살았기에 지원금 몇 푼 쥐고 쫓겨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김훈 작가가 평소 사회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쏟아내던 그의 정신을 엿본다. 공권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터전을 잃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설움이 개 의 시점으로 더욱 애잔하고 슬프게 비춰진다.



마을이 함몰된 후, 진돗개 '보리'가 거한 어촌 또한 마찬가지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작은 배를 몰며 고기를 잡아 푼돈으로 살아가는 소박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배를 타고 돌아와 "보리야!" 부르며 보리에게 줄을 던지는 주인, 조그마한 분교에서 저학년들을 챙기는 든든한 주인의 첫째 딸 영희 , 그리고 처음으로 사람 냄새를 맡았던 주인집의 막내 등등 비록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동네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농촌과 어촌에게 자연은 절대적인 신과 다름없다. 특히 보리의 주인과 같이 조그마한 배는 태풍같은 날씨에 극도로 취약하다. 자연과 벗삼고 더불어 살아가지만 사람의 목숨을 단번에 앗아가기도 한다. 자연 앞에 한없이 무력한 생물체가 인간이기도 하다. 마냥 영원하기만 할 것 같던 인간의 무력함을 주인의 죽음으로 작가는 보여준다.

개 '보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 단지 아파트에 거하며 주인의 보살핌을 받는 게 아닌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물의 신비를 몸소 체감한다. 때로는 암캐 흰순이와의 감정에 힘들어하기도 하고 뱀과의 사투에 긴장하기도 하며 주인 몰래 배를 타고 바다를 구경한다. 사람들의 희노애락과 자연의 신비 속에 함께 하며 살아가는 개 '보리'는 자신의 언어로 감정을 표현한다. 언제 팔릴 지 모르는 개의 일생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 현재 자신과 함께 하는 주인의 곁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개 '보리'는 끝까지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내 마지막 날들은 며칠 남지 않았다.

할머니가 떠나면 나는 어디론가 가야 할 것이다.

거기서 나는 달리고 냄새 맡고 싸워야 한다.

어디로 가든 내 발바닥의 굳은살이 그 땅을 밟고,

나는 그 굳은살의 탄력으로 땅 위를 달릴 것이다.


마지막까지 자신답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보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자신의 날이 계속되는 동안 힘차게 살아가는 데만 집중한다. 보리에겐 언제가 자신의 마지막일까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 만이 중요하다. 그래서 보리는 오늘도 힘차게 살아간다.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고 달릴 것이다.

'개'의 시점에서 인간의 생을 그려나가는 이 소설의 마지막 반전은 아무래도 마지막이 아닐까. 때론 인간에게 맞기도 하는 시한부 인생이지만 끝내 희망을 이야기하는 개 '보리'의 이야기는 끝내 나를 울린다. 끝까지 읽어나가다 보니 이 책의 초판 2005년도의 소설이 궁금해진다. 초판과 개정판이 과연 어떤 느낌일지 비교하며 읽고 싶어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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