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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아래 여자들 - 여성의 노동은 왜 차별받는가
아이린 파드빅.바버라 레스킨 지음, 황성원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2월
평점 :

사람들은 말한다. 여자들이 살기 좋아졌다고. 결혼 후 맞벌이는 이제 기본조건이 되었고 아이가 있어도 워킹맘으로 살 것을 강요받는 시대다. 100년 전에 비해 여성이 살기 좋아진 건 맞다. 예전에 비해 일하는 여성들이 많아진 건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데이타는 '수량'만을 보여줄 뿐 더 중요한 '질'은 보여주지 않는다. '여성 일자리의 질' '여성 일자리의 환경과 조건' 등을 살펴보면 우리는 살기 좋아졌다는 말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유리천장 아래 여자들』은 플로리다주립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아이린 파드빅(Irene Padavic)과 워싱턴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바버라 레스킨 (Barbara Reskin) 이 함께 공저한 책으로 여성의 노동에 대한 역사와 현실, 저평가받는 원인과 대책을 진지하게 고민한 책이다. 두 공동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여성의 노동의 차별이 생긴 기원부터 실태 조사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등을 논의한다.
여성에 비해 인간 활동에 가치를 매기는 지위를
차지하는 일이 더 많은 남성들은 남성의 활동을 표준으로 여기고,
한 사회의 존립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른 활동을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유리천장 아래 여자들> 33p
먼저 나는 이 구절에서 디폴트(Default)를 생각했다. 남성을 기본값으로 설정하여 사회 활동을 남성 위주로 설계하게 만든 젠더 데이터의 부재를 고발한 「보이지 않는 여자들」 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사회가 누구를 전제로 설계되었나. 주로 육체적인 활동이 많은 남성들의 일이 '기본'으로 간주되고 모든 노동이 '남성' 위주로 재편된다. '여성'의 노동은 '남성'보다 저평가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남성'이 하는 일을 '여성'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육체적인 일이 꼭 남성의 노동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나? 맞다. 저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 또한 제시해준다.
남성이 우월하다는 가정의 부산물 중 하나가
바로 여성을 남성의 돌봄이 필요한 열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가부장주의 paternalism다.
여성을 약하고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간주하는 성별 고정관념은 전통적인 남성의 영역에 여성의 진입을 가로막았다. 그 고정관념은 너무 뿌리가 깊고 만연해 있어 사회는 그 현상이 당연한 현상으로 자리잡혀졌다.
『유리천장 아래 여자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기혼 여성들의 노동에 관한 부분이다. 아이 엄마로서 기혼 여성에게 쉽지 않은 노동 현실을 잘 알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한국은 모자보건법 및 출산휴가와 육아휴가 등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정부는 여러 법을 제정하지만 '경력단절'로 고통받는 여성의 수는 갈수록 증가한다. 어디 그 뿐인가. 정리해고 1순위는 바로 가정이 있는 여성이다. 이 현상은 한국 뿐만이 아닌 미국과 다른 나라 또한 마찬가지다. 아이가 태어나도 남성들은 책임감을 더 무겁게 느낄지언정 해고나 경력단절 걱정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은 결혼하는 순간 직장의 존폐가 쉽게 흔들린다.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서 다시 기본값(Default)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회는 남녀가 아닌 가정이 있는 기혼 남성이 기본값이 되었다. 가부장주의에 근거한 기혼 남성이 기본값이 되며 일자리 또한 남성위주로 재편되었다. 여성은 결국 가사와 육아를 책임져야 하고 따라서 일에 더 소홀할 수 밖에 없다는 '별개의 영역' 이데올로기가 기혼여성의 일자리를 가로막는다. 전문직이 아닌 이상 설사 전문직이더라도 아이가 태어나면 여성에게 일자리를 쉴 것을 강요한다. 어디 그 뿐일까. 나 역시 일자리로 복귀하면서 언제까지 내가 두고 일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으로 쳐다보는 눈초리에 힘들었다. 회사의 피해를 주면 안 되는데 법과 인정으로 어쩔 수 없이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회사의 압박에 힘들었었다. 아이 아빠인 남편은 그런 고민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는 한 번도 이런 압박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기혼 남성에게는 더 한 책임감을 기대받으면서 왜 기혼 여성 특히 엄마들은 회사에 소홀하게 되고 조만간 퇴사할 것을 기대하는가? 바로 사회의 일자리가 남성들 위주로 기본값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성을 전제로 설계된 노동이 여성의 승진을 막고 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피라미드 조직의 최고점은 남성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여성은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지만 주로 결정하는 권한은 남성이 많다. 남성 결정권자는 주로 남성에게 유리한 결정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노동의 악순환이며 유리천장이 깨지지 않는 하나의 원인이다.
저자는 노동 성차별에 대하여 미국에서 있었던 많은 소송건들을 예시로 제시한다. 때론 여성 노동자가 승소하고 때론 회사들이 승소하기도 한다. 끊이지 않는 이의 제기와 뒤늦게 문제를 알아차린 정부의 차별금지법안과 노동법들이 시행되며 이러한 성차별 현상은 다소 약해졌다. 저자들은 정부의 강력한 법집행을 강조하지만 역시 개선하려는 고용주의 강한 의지가 없이는 무의미함을 잘 알고 있다. 우리도 잘 알다시피 고용주의 결정에 따라 성차별은 더욱 심해질수도 약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리천장이 더 이상 없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니다. 유리천장은 아직도 건재하다. 다만 아직도 기본값인 남성들에게 잘 보이지 않을 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정부의 많은 아동 복지와 여성의 경력단절이 왜 실패하는가를 되짚어보았다. 바로 정책 결정권자들의 시각이 여전히 남성을 기본값으로 보는 시선에서 머물러 있음을 깨달았다. 먼저 정책 결정권자들에게는 남녀 모두를 기본값으로 바라보고 그 후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더구나 코로나로 아동 보육이 사실상 가정에게 모두 넘어간 상태에서 여성의 노동은 더욱 위협받고 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 동일한 기본값이 되는 시선을 보지 않는 한 여성에게 유리천장은 더욱 두꺼워질 수 밖에 없다. 기본값을 재설정하는 정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