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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미드나이트
릴리 브룩스돌턴 지음, 이수영 옮김 / 시공사 / 2019년 12월
평점 :

북극에 홀로 남은 노인이 있다. 연구원들을 철수시키는 귀환을 거부하고 홀로 남은 어거스틴.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권고에 한 마디로 답한다.
"알겠다고 했습니다. 이제 날 내버려둬요."
왜 고국은 급히 철수하게 했을까? 본국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불친절하다. 단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는 것. 그 뿐이다.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다.
비행기가 떠나고 어거스틴은 혼자라고 생각한 순간 한 소녀를 발견한다. 말도 없이 한 구석에서 숨어 있던 여자 아이. 그녀의 이름은 아이리스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아이에 대한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어거스틴은 마음이 불편하다. 노년의 마지막을 이 곳에서 보내야 하는데 한 아이를 책임져야 하다니. 어쩔 수 없다. 이제 다시 그는 혼자가 아니다. 어거스틴은 아이리스를 돌봐야 한다.
어거스틴과 아이리스가 북극에 홀로 남은 인간이라면 우주에는 에테르 호의 대원들이 있다. 목성 탐사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는 다섯 명의 대원들은 불안함을 감출 수 없다. 탐사를 성공적으로 마쳤건만 이 탐사를 함께 기뻐해야할 지구에서는 몇 달 째 아무런 응답이 없다. 묵묵부답. 통신을 맡고 있는 셜리는 매번 신중을 기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똑같다. 묵묵부답. 우주로부터 여러 신호가 오지만 정작 지구에서는 소식이 없다. 도대체 지구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이 역시 알 수 없다. 저자는 이 또한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굿모닝 미드나이트』는 매우 불친절한 소설이다. 지구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부연설명도 없다. 단지 어거스틴과 아이리스가 있는 북극의 모습과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에테르 호의 생활만을 보내줄 뿐이다. 지구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는 에테르 호의 입장이나 읽는 독자나 지구의 상황이 어떤지 가름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구를 떠나기 전과 지금의 상황이 전혀 다르리라는 걸.
심지어 어거스틴과 함께 남은 아이리스 존재 또한 저자는 설명하지 않는다. 아이리스가 누군지 캐묻던 어거스틴 또한 탐색을 포기하고 그저 아이리스와 함께한다. 어느 누구도 책임져 본 일이 없던 어거스틴이 노년의 마지막을 아이리스 한 여자애를 온전히 책임지기 위해 먹을 걸 챙기고 아이를 돌본다.
죽음, 마지막에 임할 때 사람들은 지난날을 회상한다. 어거스틴과 셜리 또한 지난 날의 추억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어거스틴에게는 한 때 사랑했던 여인과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아이가, 지난날의 자신의 업적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아이리스와 함께 하는 날들이 늘어날수록 그 추억은 어거스틴을 휘감는다.
셜리는 에테르 호에 탑승하기 전 자신을 이해 못했던 전남편 잭과 사랑하는 딸 루시를 떠올린다. 대학 시절 갑작스런 사망으로 자신의 곁을 떠난 엄마와의 추억이 셜리를 휘감는다. 지구에 가까워져올수록 불안감이 커질수록 추억은 점점 더 커져간다.
어거스틴과 셜리의 추억 속에 인간의 일이 얼마나 사소하고 부질없는 것인가를 알게 한다. 젊었을 때 자신을 따르던 많은 여자들과 과학자로서의 명성은 죽음 앞에서야 소용 없는 것임을 알게 하고 지구에 남겨둔 딸 루시에 대한 그리움은 더 함께 있어주지 못한 회환을 낳는다. 그 당시에는 커 보였던 많은 일들이 마지막에는 얼마나 작아보이는가를 그들의 회상 속에 알게 해준다.
북극곰과 사향소, 늑대들만이 있는 북극 한복판과 행성 사이를 지나가며 우주의 망망대해를 탐험하는 에테르 호의 풍경이 교차되며 인물들 속에 동화되어간다.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던 어거스틴의 삶 속에 갑자기 끼어든 아이리스로 인한 어거스틴의 변화가 매우 인상적이다. 혼자이기에 돌아갈 곳이 없기에 홀로 있기를 택했던 그가 생경한 느낌을 가지게 되고 그의 내면을 바꿔놓는다. 어느 누구를 돌본다는 건 무거운 책임감 뿐만이 아닌 함께 하며 돌보는 기쁨을 갖는다는 걸 그는 비로소 알게 된다.
어거스틴은 아이리스를 생각했다.
부재보다는 현존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런 감정이 너무 낯설고 뜻밖이었고 그의 내면의 어떤 부분을,
오래되고 묵직하고 완강했던 어떤 부분을 움직여놓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뭔가 시작되었다.
아이리스는 과연 정체가 뭘까? 나는 어거스틴과 셜리의 이야기를 알고 난 이후 아이리스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자는 끝까지 아이리스의 정체를 말하지 않고 불친절했지만 아이리스가 누구인지 알았다. 무엇보다 아이리스가 어거스틴 생의 마지막에 찾아온 기적 같은 선물이었다. 언제까지 아이리스를 돌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아이리스와 함께 할 것이다.
셜리 또한 지구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을 지 알 수 없지만, 설사 이것이 마지막이라 해도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게 삶이라는 걸 알기에 그들은 끝까지 살아간다. 그래서 셜리의 마지막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
"나도 기뻐."
삶의 마지막까지 살아가기로 선택한 어거스틴과 셜리. 마지막이라 해도, 인생이 해피엔딩이 아님에도 삶은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이 소설은 말해주는 것 같다.
P.S. 이 소설이 넷플릭스에서 <미드나이트 스카이>라는 이름으로 스트리밍되었다고 한다. 영화도 좋겠지만 이 책의 묘미는 독자의 상상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북극과 우주의 광활한 풍경이 좁은 화면 속에 갇혀버리는 것 아닐까. 그저 독자가 마음껏 상상하고 즐기도록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더한 여운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