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유년의 기억,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의 어린 날들을 들춰본다는 건 때론 추억이기도 하지만 때론 용기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겐 그리움이지만 누군가에겐 잊고 싶은 순간들이기도 하다. 박완서 작가의 어린 날은 어땠을까. 일제 시대를 거쳐 해방, 그리고 6.25 전쟁 등 한반도 역사의 격동기를 겪어낸 저자의 유년기는 그리움과 부끄러움이 혼재되어 있을 것이다. 이 시절을 알지 못한 채 과연 박완서 작가를 알 수 있을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저자의 유년기이기도 하지만 저자를 만들어낸 토대가 된 모든 것이기도 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적골에서 태어난 작가는 가상 인물 없이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저자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찬란하다. 풍족해서가 아닌, 모두가 부자이진 못해도 가난하지도 않은 이웃들. 그 자체로 행복했던 박적골 마을. 개성에 가면 손녀를 위해 여러 사탕을 사 오시던 할아버지, 꽃동산이자 놀이터였던 집 뒤란. 저자가 기억하는 옛 시골 집의 묘사는 읽는 독자를 마음껏 상상하게 한다.

배워야한다는 신념 아래 어른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저자를 개성에 데려가 교육을 시킨 저자는 바뀐 환경에 얼떨떨하면서 이중적인 엄마의 세계를 알아나간다. 주소지를 옮기면서까지 잘 사는 문안 아이들이 다니는 국민학교에 입학을 시키고 가정방문 또한 친척집을 자신의 집인양 생색내는 어머니의 행보는 어린 저자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어른들의 세계일 것이다.



할아버지가 살던 박적골에서는 기죽을 것 없는 소녀였지만 도시에서 보게 된 부의 격차, 시골 산과 다른 서울 산의 풍경, 그 중 박적골에서는 흔하던 싱아가 한 포기도 없는 서울의 산을 보며 저자는 묻는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저자의 이 질문은 점점 사라져가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 그토록 그리웠던 박적골이지만 서울 생활에 익숙해지며 잊혀져가는 박적골의 어린 시절, 절친했던 친구 복순이와의 헤어짐, 해방으로 한 순간에 바뀌어버린 한반도의 모습, 그리고 6.25전쟁으로 또 한 번의 역사를 감당하느라 훌쩍 지나가 버린 어린 시절. 그 어린 시절이 누가 다 싱아를 먹어버린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저자는 또한 해방 후 부터 6.25전쟁이 발발하기까지 친척 각자의 입장에 맞춰 그 당시의 분위기를 회상해간다. 그저 아들이 무탈하기만을 바라며 아들의 좌익 활동에 전전긍긍하던 엄마의 모습, 어떤 신념도 없이 그저 가족의 안위가 먼저였던 엄마의 모습과 양심 있는 지성인이었던 오빠의 모습, 친척들 또한 자신의 상황에 따라 움직인다. 저자의 오빠에게는 신념이었겠지만 엄마와 어른들에게는 가정이 안전하다면 얼마든지 이념 따위 바꿀 수 있는 것임을 알게 해 준다.

문학소녀가 되어가는 저자의 이야기 또한 흥미롭다. 친구 복순과 함께 도서관에 가서 동화책의 세계에 눈뜨고 고전 문학을 알아가며 문학의 세계를 여행하는 저자의 학생 시절은 이 때부터 작가의 토대가 시작되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기 전 나는 이 책의 후속작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먼저 읽었다. 이 후속작도 좋았지만 유년기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어야만 저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까지 고백해가며 솔직하게 써내려간 이 소설은 저자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인물들의 입장 속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저자의 글을 떠올리며 나는 외갓집 뒷동산이 떠올랐다. 저자에게는 박적골의 싱아가 어린 시절의 향수였다면 나에게는 외갓집 뒷 편에 있는 동산이 놀이터이자 그리움이었다. 작년 그 뒷동산을 가보았을 때 빽빽했던 나무들이 잘리며 듬성듬성한 나무 사이를 지나며 나 역시 '그 많던 나무는 다 어디로 사라졌으까?'라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사라져버린 나무만큼 내 어린 시절이 사라져버린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그 마음이 저자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마음이 아니였을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