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는 건 나야
조야 피르자드 지음, 김현수 옮김 / 로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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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지 7년차에 접어든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만 엄마이자 주부 7년차이지만 여전히 낯설고 어렵기만한다. 삼시 세끼를 챙기고 씻기고 청소 등 반복되는 일상은 버겁기만 하다. 혼자이고 싶어도 혼자일 수 없는 엄마이자 주부의 자리는 결코 쉽지 않다. 많은 희생이 요구되는 자리이자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불을 끄는 건 나야』 는 이란에 사는 아르메니아인 작가인 조야 피르자드로 주로 '여성'을 주제로 소설을 집필한다. 이 소설은 작가의 첫 번째 소설로 10개국 이상에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 『불을 끄는 건 나야』에는 이란에 사는 주부 클래리스를 중심으로 가족과 이웃의 모습을 통해 여성의 심리를 다루는 소설이다.

클래리스에게는 아들 아르멘과 쌍둥이 아르미네와 아르시네가 있다. 아르멘은 쌍둥이 여동생을 매일 놀리고 클래리스는 아들을 말리기 바쁘다. 아이가 셋이 있는 클래리스의 집은 항상 바람 잘 날이 없다. 아이들이 하교 후 간식을 챙겨주며 가부장적인 남편 아르투시는 집안일을 잘 도와주지 않는다. 클래리스의 어머니는 매일 딸에게 와서 잔소리를 늘어놓고 여동생 앨리스는 결혼을 하고 싶어 안절부절하며 언니 클래리스의 심경을 긁는다. 북적북적하고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삶이 비록 쉴 틈이 없지만 클래리스는 당연한 것처럼 살아왔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그냥 앨리스에게 좋다고 말하라고, 굳이 싸움을 일으키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맞춰주며 살아간다. 보통의 나날이 계속되던 중 새 이웃이 이사온다. 쌍둥이 자매의 친구 에밀리와 에밀리의 아버지 에밀, 마지막으로 신경질적인 에밀리의 할머니 사모니안 부인이 이사오며 클래리스는 자신의 감정에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잔잔한 일상을 보냈던 클래리스는 새 이웃과 지내게 되며 묘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분명 언제나 똑같은 일상이지만 뭔가 다른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특히 에밀리의 아빠 에밀과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며 그 불편한 느낌은 강해져만간다. 이제까지 자신의 도움을 당연하게만 여기고 클래리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가족들 곁에 지냈던 클래리스는 에밀이 자신을 칭찬해주고 걱정해주며 관심사를 공유하는 게 생소하면서도 왜 가족들은 특히 남편 아르투시는 자신을 생각해주지 않는지를 늦게서야 깨닫게 된다.

나는 화가 났다. 비올레트와 에밀을 엮어 줘야겠다며 내 팔을 비틀어 억지로 저녁 파티를 열게 한 니나에게.

오로지 자기 생각만 하는 앨리스에게. 오로지 앨리스 생각만 하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모르고 신난 아이들에게. 그리고 머릿속엔 오직 체스 생각뿐인 아르투시에게.

왜 내 생각을 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지? 왜 내가 뭘 원하는지 물어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지?

<불을 끄는 건 나야> 288p

돌봄을 당연하게 여겼던 클래리스는 에밀을 통해 자신이 소외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항상 챙겨주기만 했던 자신이 도움을 받는 것 또한 불편하게 여겼음을. 혼자 있고 싶어도 혼자 있지 못하며 아이들에게 시달려야 하는 엄마의 버거움을, 아들 아르멘을 걱정하는 자신을 두고 자신을 불평하는 것밖에 모른다고 하는 아들의 험담 적힌 편지도 클래리스는 너무 버겁기만 하다.

나 역시 쌍둥이를 두고 있어서일까. 무너져가는 클래리스의 심리를 공감하며 몰입하게 된다.

'나는 하루에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혼자 있고 싶어.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클래리스의 자아를 보며 버스를 타고 도망가버리고 싶었던 내 안의 충돌과 직면하게 되고 남편 아르투시가 이웃 남자 에밀보다 자신을 덜 배려하는 모습에 화가 나는 클래리스의 심리에서는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쏟고 정작 나에게는 무심한 남편을 보게 된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공허함. 내가 항상 느꼈던 2%의 부족함이 클래리스에게도 느껴졌다.

소설은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클래리스는 불편함을 가족에게 자기 주장을 펼쳐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바쁘고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가부장적인 이란 사회에서는 작가가 더 큰 변화를 그려내기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설사 한국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똑같다는 것을. 그 일상 안에 서로가 약간의 변화를 시도하며 서서히 변화한다는 것이 우리의 최선임을.

그래도 나는 클래리스가 조금만 더 용감해지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 더 큰 변화를 시도해봐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매일 밤 남편 아르투시가 '불 누가 끌래? 내가 꺼? 당신이 꺼?'라고 물을 때 남편에게 불을 끄라고 당당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아들 아르멘이 자기를 험담할 때 그건 잘못된 거라고 훈계하며 집안일에 잔소리하는 엄마에게도 선을 지켜달라고 말하는 클래리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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