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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미셸 딘 지음, 김승욱 옮김 / 마티 / 2020년 12월
평점 :

책 표지에는 한 여성이 정면을 응시한다. 여성의 눈빛과 함께 책 제목 또한 예사롭지 않다.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라니.. 원제가 『Sharp』 으로 '날카로운'이란 뜻인데 한국어판에는 더 강한 의미가 실렸다. 책 제목과 표지부터 사람을 설레게 한다.
표지의 여인은 존 디디언이다. 사실 존 디디언이라는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에는 12명의 여성 작가를 다룬다. 다만 특이한 건 그들의 전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닌 성 만으로 그들을 부른다. 이는 남성 작가들은 성만 들어도 잘 알기 쉽지만 여성 작가들은 전체 이름을 부르지 않고는 알기 쉽지 않은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 남자 작가들처럼 성만으로 그들을 명칭한다고 한다.
이 책에 수록된 12명의 업적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한다. 처음을 장식한 도로시 파커부터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등 그들을 자세히 알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나와 같이 이 12명의 작가 중 반절도 알지 못하는 인물이였기에 이 책을 통해 그들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책이 흥미로운건 각각의 인물이 독립적으로 서술된 것 같아도 각각 서로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노라 에프런은 어린 시절 도로시 파커를 우상 숭배로 존경하고 있었음을 알려주기도 하며 존 디디언이 케일을 싫어했다는 점, 수전 손택과 폴린 케일의 연관성 등 각자의 연결고리로 새로운 인물들을 소개한다.
그 때 당시의 상황이였을까. 많은 여성 작가들이 남성 편집장에 의해 고용되어 <보그>, <베니티 페어> 등등의 잡지에 기고를 하는 등 글쓰기를 시작한다. 여성이기에 처음부터 그들이 원하는 글쓰기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고 평단 또한 그들에게 보다 냉혹했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건 계속해서 써 내려가는 수 밖에 없었음을 이 책은 알 수 있게 한다. 한나 아렌트가 수전 손택을 크게 찬사하며 연대하기도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여성이지만 비판적 눈길을 보내기도 하는 적대적 관계도 있었음을 사실 그대로 묘사해준다. 과거 한국에서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들이 있었다. 작은 파이만을 가지고 싸워야 했던 그 때 여성들은 서로 싸워야했다. 어쩌면 이 작가들이 활동한 시기에도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대 또는 비판이 서로 공존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이 책은 여성 작가들을 다룬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는 좀 더 우리에게 익숙하고 페미니즘적인 여성작가들을 다루어서 대중적인 면이 강했다면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는 좀 더 전문적인 시각에서 여성 작가들을 대한다. 전작이 알고 있던 작가들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삶을 다뤘다면 이 책은 잘 알지 못했던 여성 작가들에 대한 입문서와 그들의 작품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전문적으로 서술한 느낌이다. 그래서 이 책에 수록된 여성 작가들을 알게 되었다는 흥분감과 그들의 작품을 찾아 읽을 수 있게 인도해준다.
제목부터 강렬한 이 책은 척박한 여성 문단계에서 끊임없이 써 내려가고 활동하던 여성 문인들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들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배경에는 그들의 재능이 바탕이였지만 계속 써 내려갔음을 알게 해 준다. 그래서 더욱 멋진 책이다. 비록 끝까지 화려하지 않은 작가들도 있었지만 글쓰기는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책을 읽은 후, 제목을 계속해서 되새겨본다.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나 또한 내 남은 생애를 그들처럼 날카롭고 멋있게 살아보고 싶다는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