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 경계의 시간, 이름 없는 시절의 이야기
허태준 지음 / 호밀밭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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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작가님의 페이스북에서 이 책에 대한 추천글을 읽었다. 유명 인사의 글이 아닌 순수한 한 청년의 글을 왜 정지우 작가님은 그토록 적극적으로 추천했을까. 그 궁금증이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였다. 한편 고 김용균 군의 죽음 이후 청년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환경 개선이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지금, 많은 책들이 쓰여졌지만 직접 그 현장에서 일을 하던 경험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했다. 목격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닌, 경험자가 들려주는 고민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는 허태준씨가 가정 형편으로 문예창작학과에 가려는 꿈을 접고 기계공고에 취업한 후 경계의 삶을 살아가가며 경험한 그의 고뇌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담긴 글이다. 고등학교에서부터 각종 기계 지식을 배우고 취직을 하며 이른 사회인이 되어야 했지만 사회에서는 잊혀진 존재.. 김용균 군의 죽음이 알려지기 전까지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당연히 대학생이리라는 우리의 고정관념은 그들의 존재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들은 학생과 사회인의 경계 속에서 불안감을 끌어안고 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던 걸까.

어쩌면 그 거리의 누구도 우리를 축하해주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수험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이

우리를 소외시켰기 떄문은 아닐까.

왜 우리는 무언가를 축하하기 위해 조건을 내걸까. 왜 우리는 삶의 여러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모든 인생을 축하해 주지 못하는 것일까.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내내 곱씹게 된다. 19살에 대학 입시를 위해 공부하던 학생들도 있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일터에 나가야만 하는 청춘들도 있음을 왜 우리는 알려고 하지 않는 걸까. 어쩌면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몰랐다고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을 알고 그들의 스물을 축하해주려는 노력이 있긴 했을까. 김용균 군의 죽음 이후에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금새 그들의 존재는 잊혀져 간다. 또 다른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뉴스를 보기 전까지는...


회사에서 폭행이나 폭언이 있었나요?

.......

네, 없는 거로 할게요.

우리의 표현이 암묵적인 동의라는 것도,

그가 의도적으로 그걸 무시했다는 것도,

그럼에도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것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저자는 군복무 대신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다. 병무청에서는 근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불시에 감사를 하곤 했다. 폭행이나 폭언이 있냐는 그 형식적인 질문에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못한다. 저자는 그 때의 감정을 수치심이라고 표현한다. 다른 또래보다 이른 나이에 불안감을 짊어진 것도 모자라 신분만으로 무시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청년 노동자들.. 굳이 문제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아 그 암묵적인 동의를 알면서도 무시했던 병무청 직원들... 이 사회는 그들에게 동의할 것을 요구해왔다. 굳이 사회에서 문제를 만들어내지 않기를. 조용히 일만 하고 살아가기를 종용했다.

왜 우리는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사람을 한 조직 속으로 규정하려고만 할까. 저자가 말했듯 모든 열 아홉은 함꼐 축하받아야 하고 모든 노동자는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왜 우리는 이런 저런 조건을 두고 그 조건으로 무리를 짓고 열외된 대상들을 소외시킬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감싸안던 질문이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는 젊은 청년의 글이지만 깊은 사유로 글을 담아내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자신의 불안했던 시절을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 경계의 삶을 지나 오늘도 꿋꿋이 글을 쓰며 살아가는 저자의 다음 글은 어떤 글이 될까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최근 김용균 군의 어머니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그들을 위한 법률 하나 제정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다시 한 번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주었으면 한다. 꺼진 관심의 불을 다시 지펴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이 일은 바로 내가 당사자가 될 수 있으므로.. 우리의 이웃과 친구들이 될 수도 있으므로.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이야기를 꼭 읽어주길 나만의 추천사를 살포시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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