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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 번역을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노경아 외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9월
평점 :

책을 사랑한다. 그리고 영어 또한 사랑한다. 책과 외국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번역가를 생각해 본다.
나 역시 번역가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이다. 하지만 AI가 대세이고 사양산업이라고 하는 번역가들은 가장 먼저 위협받는 직업군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좋아서, 글이 좋아서 이 일을 계속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서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의 다섯 명의 번역가들 또한 너무 좋아서 번역을 한다. 직업병인 허리가 아프고 마감일에 쫓겨도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역서 하나에 온 시름이 없어지는 이들의 희노애락이 그려진다.
다섯 명의 번역가들은 모두 일본어 또는 중국어 번역가이다. (영어 번역가가 없다!) 그 중 처음부터 번역가의 길로 들어선 분도 있고 노경아 번역가처럼 생계를 위해 다른 업종에서 일을 하다가 퇴사 후 뒤늦게 번역가의 길로 뛰어든 분도 있다. 그들은 번역을 왜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답한다.
" 여전히 책이 좋고 글이 좋고 번역이 좋았습니다."
"일이 괴로우면 번역이 잘 될까요? 오래 이 일을 해나가려면 좋아하지 않으면 힘들 것 같아요. 저는 그래요."
일에 대한 사랑, 좋아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회사원이라면 적든 많든 일정한 월급이 나오지만 번역가는 프리랜서로서 일을 헤쳐나가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프리랜서로 에이전시를 통해 일하기도 하지만 출판사를 직접 거래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고된 직업이다. 이 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결코 오래할 수 없는 직종 중 하나가 바로 번역가이다.
만화와 라이트 노벨 전문 번역가에게는 수시로 튀어 나오는 의성어, 의태어와 씨름하고 자기계발서는 우리말과의 싸움이다. 일욕심에 들어오는 일을 거절하지 못하고 일을 하다가 결국 교정 천국이 된 원고를 본 실패를 통해 자신의 루틴을 만들어가고 자기 관리를 한다. 더 오래 일하기 위해 더 양질의 글을 쓰기위한 그들의 고군분투가 이 책 속에 펼쳐진다.
처음부터 쉬운 일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자신을 갈아 넣는 노력을 하지 않고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더 이상 '과연 저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미 자기 자신이 알고 있으니 말이다.
나 또한 번역가가 되기 위해 번역 아카데미 강좌도 듣고 네이버 카페에 가입해 공부를 하곤 했다. 번역가분들이 하는 말들은 실력이 최우선이다. 번역가의 원고료는 매우 낮다. 만만치 않은 직업이고 먹고 살기 힘들어 도중에 포기하는 번역가들이 많다는 직언 또한 서슴치 않는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하지 제대로 된 시작은 하지 않는다. 김지윤 번역가는 번역가 지망생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기보다 먼저 공부를 하고 시작을 하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확신이 없는 사람은 해 나갈 수 없다고 강조한다. 김지윤 번역가 또한 글 쓰는 번역가로 살기 위해 매일 메모하고 기록하며 공부를 계속해나간다.
이 다섯 명의 번역가들은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프리랜서인만큼 자신이 거래처를 확보해야 하고 작업 시간 또한 자신이 모든 걸 관리해야만 한다. 때론 막막하고 힘든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력과 시간이지만 무엇보다 동료 또한 중요함을 강조한다. 같은 길을 걷는 동료로 서로 함께 도우며 격려할 때 이 일을 해 나갈 수 있다. 언젠가 내가 존경하는 함혜숙 번역가의 글이 떠올랐다. 힘든 번역가의 세계에서 열정페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낮은 원고료를 받는 행위는 이 시장을 더욱 파괴하는 행동이라고 함혜숙 번역가는 말했다. 이 번역가라는 직종이 인정을 받기 위해서 올바른 노동의 대가가 주어져야 하며 체불시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와 마찬가지로 프리랜서의 세계 또한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도미노처럼 파급력이 커질 수 있다. 나를 지키고 다른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동료의식을 가지고 정당한 대우를 위해 함께 일해야 한다.
《도서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의 다섯 명의 번역가들은 어쩔 수 없는 번역쟁이임을 고백한다. "우리 정말 좋았는데 네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이야..." (190p) 라며 하소연하지만 울부짖지만 그럼에도 번역이 좋은 그들은 자신들이 말하는대로 번역가가 될 운명이었음을 말한다. 일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거래처를 확보해야 하는 부담감 속에서도 이 일을 놓지 못하는 건 좋아하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거북목을 하소연하고 허리 통증을 이야기해도 그들의 작업이 행복해 보이는 건 이 번역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꼴도 보기 싫은 일본어라 하지만 그럼에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들에게서 일에 대한 애정을 본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번역가들의 모습이 내게 아직 늦지 않았으니 시작해보라는 용기를 준다. 좋아하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 일을 즐기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매우 멋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음이 뿌듯한 건 그들의 일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일에 대한 시작이 두려울 때, 일에 대한 권태기가 찾아올 때에도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일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서평단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