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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은 여자가 필요해 - 268년 된 남자 학교를 바꾼 최초 여학생들
앤 가디너 퍼킨스 지음, 김진원 옮김 / 항해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미국에서 여성의 역사가 인종 문제보다 더 뒤쳐져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역사에서 디폴트인 남성들은 인종 문제 뒤에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투표권 뿐만 아닌 교육 받을 수 있는 권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미국 일류대학교인 하버드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가 타대학보다 여성들에게 입학 허가가 늦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기만 하다.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는 남자들만의 터전이었던 예일대학교에서 첫 여자 입학생으로 들어와 자신의 길을 가기까지 고군분투했던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이다.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는 먼저 예일대 총장인 킹먼 브루스터 총장의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그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화제였던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며 인종문제에 있어서도 흑인에 우호적이며 진보적이던 명망있는 브루스터 총장이건만 여성 입학에 대해서는 극도의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모습이 부각된다. 젠더 이슈에 관해서는 다른 정치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던 그의 정책은 예일대학교에서 능력 있는 여교수들의 극히 드문 현실 또한 무관하지 않았다.
여학생 입학에 부정적인 예일대학교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입학의 문을 열기로 결정하며 예일대학교에는 많은 변화가 그려진다. 여학생 기숙사, 화장실, 보건소, 성상담소 등등을 구비해 나가는 모든 과정이 순탄치 않다. 여성들에게 학업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차이가 나는 남녀성비, 여성이 같은 급우라는 개념보다 성(sex)적인 부분에서만 관심있는 구태의연한 남학생들의 개념, 남성들만의 전유물인 클럽 등등 많은 장애물들이 가로막혀있다. 심지어 학교 응원단까지도 남성들의 영역이었다.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의 저자 앤 가디너 퍼킨스는 예일대 최초 여학생들이 처음부터 페미니스트가 아니였음을 강조한다. 그들은 단지 최고의 대학에 공부하고 싶었던 학생들일 뿐이였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녀들에게 '슈퍼우먼'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지만 그녀들은 10대 여학생일 뿐이었다.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차별을 받아야만 하는 여학생들이 장애물 앞에서 굴복하느냐 또는 뛰어넘느냐 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뛰어넘는 것을 택했고 투쟁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페미니스트로 변모해갔다.
저자는 이 여학생들의 투쟁 과정에서도 여학생 입학을 주도하며 입장을 대변해 온 올가 교수와 투쟁 방식에 있어서도 이견이 있음을 말한다. 같은 여성으로서 여학생의 입장을 총장에게 강조하지만 어른이자 학교 교직원으로 강경한 입장보다는 온건파에 속했던 올가 교수에 비해 여학생들은 정면돌파를 택했다. 때론 정학 위기도 있었지만 투쟁을 수정해가며 여성 입학생 비율을 확대해 나가는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이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고 느리게 해 나갔음을 보여준다. 느리게 진보해가는 이 역사 속에 저자는 헤비스터와 같은 일부 남학생들의 협조와 도움이 함께 했음을 말한다. 언젠가 조남주 작가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 떠오른다. "우리는 분명 좋아지고 있습니다." 느리지만 계속 진보하고 있음을 말하는 작가의 글이 비록 더디지만 예일대에서 터전을 힘들게 다지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리고 이 역사 속에 함께 동참하는 남학생들과 함께 이 힘든 산을 들어올리는 그들의 움직임 속에 한국의 페미니즘이 더욱 넓혀지기 위해서 남성들에게 이 페미니즘이 단지 여성에게 국한된 이론이 아님을 알리는 일이 시급함을 말해주는 듯 하다. 남성과 여성 모두 페미니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때 이 사회는 변할 수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남성이지만 페미니즘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극히 소수일 뿐이다. 남녀 모두에게 확대될 때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더 큰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비록 지금은 큰 바위이지만 그들에게 다가가기를 멈추지 않을 때 우리는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예일대의 최초 여학생들이 들었던 핀잔과 장애물들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에 막막함을 느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포기한다면 우리는 장애물들을 인정하게 된다. 예일대 여학생들이 끝까지 장애물을 인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듯이 우리에게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