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월 28일, 조력자살 - 나는 안락사를 선택합니다
미야시타 요이치 지음, 박제이 옮김 / 아토포스 / 2020년 8월
평점 :

나는 가족에게 만약 내가 회생불가능하다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달라고 말한다. 그렇게까지 목숨만 유지하는 모습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을 때 가족들은 말한다. 그건 가족이 판단할 문제라고. 그러니 신경쓰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을 결정하는데 왜 본인의 의사보다 의료진과 보호자의 선택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 나는 납득하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논란중인 가장 적극적인 죽음 방법인 안락사 또한 이 점에서 항상 많은 질문을 낳고 있다. 과연 우리는 안락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걸까? 안락사가 죽음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행동일까? 《11월 28일, 조력자살》은 안락사를 이룬 일본인 고지마 미나씨의 안락사를 통해 죽음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다.
《11월 28일, 조력자살》이라는 제목에서 사람들은 이 날짜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미야시타 요이치의 책 <안락사를 이루기까지>를 통해 일본에 안락사의 현장을 취재한 르포르타주 출간했다. 그 후 많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고 그 중 진지하게 안락사를 희망하는 여성 다계통 위축증 환자 고지마 미나씨와 말기암 환자인 남성 요시다 준씨였다.
다계통 위축증은 소뇌의 변이로 몸의 근육기관이 마비되는 병이다. 구음 장애가 발생하고 다리가 꼬이며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결국 자리보전해야만 하는 신세가 되는 이 병은 유효기간이 없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 암과 달리 10년 아니 20년이 갈지도 모른다. 다계통 위축증 병을 확정받은 후 고지마 미나씨는 의사에게 말한다.
"은근히 골탕 먹이는 병이네요? 시한부 선고보다 더 잔혹한 것 같아요."
미나씨의 말에 의사는 대답한다.
"잔혹하다고 느끼는 마음은 알겠지만, 금방 죽지는 않는 병이니 안심할 수 있지 않나요? 애초에 일본인 여성의 평균 수명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환자 분 연령이라면 어지간하면 앞으로 20년은 살 수 있어요.
일단 금방 죽지 않는다는 걸 기뻐하세요."
의료진들은 그녀에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게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둔감하다. 독립심이 강했고 아동 교육에 뜻을 품었던 고지마 미나씨는 고향 큰 언니집으로 내려와 생활한다. 그리고 급격하게 나빠지는 그녀는 이제 대소변도 제대로 못 받고 언니의 간호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목숨만 보전하는 삶, 이 고통이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는 막막함으로부터 그녀는 자살 시도도 하고 안락사를 시행하는 단체 스위스의 라이프써클에 가입 신청을 밝힌다.
또 다른 희망자 요시다 준씨는 말기암 환자로 더 큰 고통이 오기 전에 죽음을 희망한다. 가족과 원만한 관계가 아닌 요시다 준씨는 치유 가능성 1퍼센트로 생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그는 안락사는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되도록 통증이 없는 상태로 생활하다가 수명을 다하고 싶었어요.
삶의 질을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절차도 복잡하고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스위스에 가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요시다 준씨도 고지마 미나씨도 더 늦어지면 스위스에 못 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초조해진다.
《11월 28일, 조력자살》에서는 이 두 명의 이야기와 함께 과연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그리고 현재의 의료기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는다. 먼저 안락사를 희망하기 전 여러 방법을 충분히 알아보고 있는지 그리고 왜 안락사를 이루고자 하는지 진지하게 답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현재까지 안락사가 이루어지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저자는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네덜란드, 스위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도 이 안락사가 허용되기까지 많은 논의와 토론을 거친 역사를 거쳐왔음을 강조한다. 죽음에 대한 논쟁을 피하지 않고 왜 안락사, 조력자살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가에 끊임없이 논의해왔고 대안의 선택이 없는 막바지 환자들을 돕기 위한 안락사가 끝내 허용되었음을 말한다.
그에 비해 일본은 한국과 같이 엄격하게 범법 행위로 규정하며 이에 대한 토론 또한 정치권에서는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이런 현실에 암환자면서 안락사 법제화를 찬성하는 하시다씨도 그리고 고지마 미나씨는 말한다.

한국 또한 안락사는 엄연한 범죄 행위다. 이 책을 읽은 후 기사를 검색해보니 한국에도 안락사를 행한 의사가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기사를 찾았다. 생명은 귀하다라는 건 엄연한 진리이다. 하지만 그 진리 앞에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암암리에 함구되어 왔다. 삶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니 당연히 죽음 또한 말할 수 있어야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서야 죽음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 멈춰서 있던 문제 앞에 죽음에 관한 이슈는 항상 제자리걸음이었다.
이 책은 안락사를 찬성하는 책은 결코 아니다. 저자는 자신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환자에게 안락사를 절대 권하지 않는다. 책에서 저자가 만난 고지마 미나씨와 요시다 준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저자는 안락사가 법제화될 경우 죽음을 조장하는 길이 될 수 있음 또한 우려한다. 그 대신 죽음에 대해 정확히 알고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를 그렇기 위해서는 의료진, 환자, 그리고 정치권등 활발한 토론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권리임을 이야기하며 성인의 80%가 찬성했다는 설문 조사를 보았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이야기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마 저자는 이 책이 또 하나의 논란을 가져올 수 있음을 직감할 것이다.
저자가 취재했던 환자들은 말한다.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이 사회에 조그마한 돌멩이를 던지고 싶었다고. 멈춰서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죽음은 의료진이나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국민들이 함께 토론하고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듣고 말해야 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