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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김비.박조건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우리는 상대방의 멋진 부분을 보거나 또는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상대를 찾는다. 이 사람만 있으면 완벽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사랑을 시작한다. 그 기대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약함이 드러날 때 우리는 혼란을 겪는다. 강함을 보고 선택한 사랑은 그렇게 혼돈을 경험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상대방의 약함을 인정하고 그 연약함으로부터 시작된 관계는 어떨까? 연약함으로부터 시작된 관계, 그 위태함과 연약함을 끌어안음으로 시작되는 관계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의 공동저자이자 부부인 김비씨와 박조건형 부부의 이야기이다.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성소수자 김씨와 우울증을 겪는 박조건형씨는 온라인상에서 알아오던 관계이다. 용인과 양산, 사는 지역도 다른 남과 여가 "영화나 같이 보실래요?"라는 박조건형씨의 용기를 낸 문자 하나로 시작된 첫만남부터 부부의 인연으로 10년 넘게 동고동락하며 겪는 순간순간의 기록이다.
이 부부의 키워드는 '연약함'이다. 성소수자로서 겪어야만 했던 과정들,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기까지의 시간들. 그리고 앞으로도 호르몬제 복용과 함께 살아가는 김비씨와 때때로 찾아오는 우울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박조건형씨의 연약함. 처음부터 이 부부는 서로의 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이들에게 약함은 남들의 눈에 고쳐야 하는 문제가 아닌 상대방의 일부였고 포옹해야할 존재였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서로의 마음을 알기에 박조건형씨는 김비씨의 본명을 장난삼아 불러도 개의치 않고 박조건형씨도 우울증으로 힘겨워해도 아내 김비씨는 남편의 곁에 함께 해 준다.
그는 오늘도 자신의 방에서 일찍 잠을 청한다.
지난번 다친 머리는 괜찮은지,
석회화되었다는 종양은 그를 괴롭히지 않는지·····
나는 그의 방 쪽으로 돌아눕는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용히 그의 몸부림 소리를 듣는다.
그의 몸부림이 새근새근 잠에 빠진 숨소리로 바뀔 때까지
귀를 기울인다.
그는 그의 방에서, 나는 나의 방에서,
우린 그렇게 각자의 위태로움을 있는 힘을 다해 끌어안는다.
서로의 약함을 끌어안은 관계는 외부로 확장되어간다. 수술 후 호적을 정정하기까지 이 사회에 등록되지 않았던 아픔을 알고 있는 김비씨는 또 다른 소외된 자의 아픔을 나누고 우울증의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박조건형씨는 또 다른 이들의 호소에 귀기울인다. 그들이 서로 환대하고 이웃으로부터 환대받으며 자신들도 남을 환대하며 나눔으로 그들의 삶이 더욱 풍성해져간다. . 끌어안다가도 붙잡아주는 김비씨로 인해 부부는 공동 저자로 책을 함께 하는 추억을 나누고 김비씨의 작품을 무조건적으로 응원해주는 박조건형씨로 인해 김비씨는 작품활동을 한다. 그리고 그들 관계를 인정해주는 지인들과 공동체로 이 부부의 삶이 더욱 빛을 발한다. 김비씨와 박조건형의 만남으로 시작된 관계가 친구와 지인 그리고 공동체로 커져가며 서로의 삶을 나눈다
나를 완벽하게 해 주기보다 그저 곁에 있어줌으로 서로의 존재가 빛이 난다. 이 부부는 함께 한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다. 10년 후를 기약할 수 없기에 지금을 더욱 사랑하고 우울증을 앓는 우기의 고통을 알기에 평상시에 짝지 김비씨를 향한 사랑을 감추지 않는다. 어느 것을 기대하기보다 상대방의 현재를 묵묵히 받아주며 사랑한다.
사랑.. 이젠 흔한 말이지만 이 부부에게는 사랑이 곧 삶이다. 사랑하는 삶을 매일 살아가는 부부이다. 사소한 일상이지만 결코 사소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저자들의 순간 순간이 담긴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사랑이 하고 싶어졌다. 내 옆에 남편이 있지만 이 부부의 사랑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연약한 두 사람이 만나 완전함을 이루는 관계를 이 두 저자는 그들의 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함께이기에 빛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부는 앞으로도 빛날 것이다. 혼자 있으면 위태롭지만 그 위태로움을 끌어안음으로 잠시 지나가는 소낙비처럼 그들은 통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