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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4분 33초 - 제6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평점 :

나이가 들어가며 항상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나는 자문하곤 한다. "내가 나이값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이 직장에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맞게 살아가는 걸까?" 이 질문이 반복될수록 자신이 없었다. 그 질문과 함께 내가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보다 더 어리지만 능력 있는 동료를 볼 때마다 그 질문은 나를 더욱 괴롭혔다.
소설 《당신의 4분 33초》은 2020년 황산벌 청년 문학상 수상작이다. 저자 이서수씨는 필명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지만 청탁이 없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후 다시 이 황산벌 청년 문학상으로 수상의 영광을 얻었다. 《당신의 4분 33초》의 포맷이 아버지가 남긴 글을 자신의 작품으로 투고해 문학상에 등단한 소설가 이기동의 이야기라는 소재에 끌려 일게 되었다. 소설가 등단 후 벌어지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이 소설은 처음부터 내 예상을 빗나갔다.
소설은 음악가 존 케이지와 이기동의 이야기를 병렬하여 보여준다. 존 케이지라는 음악가 존재를 알지 못했거니와 서로 교차되는 두 인물의 이야기는 내게 낯설음과 당혹감을 주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어떤 공통점이 없는 것 같은 두 사람의 삶이 결말을 향해 갈수록 하나로 이어짐을 알 수 있지만 굳이 존 케이지의 이야기를 상당한 부분 삽입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의문은 남는다.
《당신의 4분 33초》 의 주인공 이기동은 루저이다. 집 나간 아버지, 의사 또는 판사가 되길 원했던 어머니의 지원에도 삼수를 하여 간신히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운도 없는 이 시대의 낙오자이다. 평범하다 못해 표준에도 못 미치는 사람. 그가 어느 날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온 우편물을 보게 된다. 아버지가 생전 쓴 단편 소설들.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이기동은 자신의 이름으로 공모전에 응모하여 수상의 영예를 얻는다. 한순간에 수상작가로 문단에 등단한 이기동은 재수생 시절 만났던 최장기수생 여자와 결혼하여 가정도 꾸린다. 그렇다면 이제 이기동의 인생은 이대로 인생역전된 걸까?
이 소설의 반전은 바로 이기동의 공모전 수상 부터이다. 모두들 그가 이제 잘 나가는 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될 것으로 기대했건만 계속되는 무명작가로서의 인생은 의아함을 가지게 한다. 어떠한 반전도 없이 추락하는 듯한 이기동의 인생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한심한 인생으로 비쳐질 뿐이다. 떠오르는 신예작가에서 어머니가 운영하는 김밥집 주방에서 일하는 그의 모습, 그리고 후에 망한 지하서점을 인수해 쓸쓸히 자리를 지키는 이기동의 모습은 왠지 허무하기까지 하다. 이대로 끝인 걸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한다.
이기동의 인생이 가장 밑바닥이였을 때 처음에 어색하게만 다가오는 존 케이지의 이야기가 빛을 발할 때임이 최고의 반전이였다. 책 중간 중간 이 세상의 표준이라고 정해 놓고 그 표준을 도달하지 못하는 인생들을 향한 위로와 울분이 간간히 터져나오며 공감을 자아냈다면 마지막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소리와 소음이 구분이 없다는 존 케이지의 음악처럼 인생에도 성공과 실패한 인생은 따로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어떠한 반전 없이 묵묵히 지속되는 삶. 이기동의 모습을 끝까지 읽어나가며 나는 눈물이 나오는 걸 참아냈다. 묵묵히 하루를 살아가는 이기동의 모습이 매번 나 자신에게 회의하며 작아지는 나와 다른 누군가를 향한 응원같아서 더욱 마음이 아려왔다
아닙니다. 명백히 달라요.
저는 소음을 소리로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겁니다.
처음부터 소음이란 존재하지 않음에도
우리는 소음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인생의 무게가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인생의 무게가 크고 화려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작을 수 있다. 하지만 작다고 하여 우리는 그 사람을 함부로 루저라고 한심하다고 말해선 안 된다. 모두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작가는 이기동을 통해 보여준다. 마치 존 케이지가 자동차의 부품처럼, 다른 각자의 사물이 내는 소리가 소음이 아닌 개별의 소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만약 이기동이 아버지의 작품으로 등단하여 승승장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살아가는 삶. 자신의 4분 33초를 여전히 만들어가고 있는 이기동의 삶 역시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이기동은 낙선작들을 품어주는 역할로 비록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지만 무명 작가들에게 그리고 빛 바랜 작품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존 케이지의 이야기가 전반부가 아닌 후반부를 중심으로 쓰여졌다면 이야기가 더욱 가독성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가볍기만했던 이기동의 삶이 묵직한 감동과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내게도 나의 4분 33초를 끝까지 만들어가도록 응원하는 작가의 위로처럼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