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
제임스 리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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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군산 대명동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화재 현장은 불법 성매매업소였다. 출입문이 쇠창살로 막은 업소에서 여자들은 장소에 갇혀 질식사로 생을 마감해야했다. 이 억울한 죽음 앞에 많은 국민들은 분노했다. 정부는 성매매 특별법을 제정했지만 그 뿐이었다. 업주들은 또 다른 사각지대를 찾아 아가씨들을 미끼로 성매매를 알선하고 수익금을 취한다. 항상 도돌이표인 허술한 법과 단속은 또 다른 소중한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은 군산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소설 속 중심인물인 소희는 근무하는 업소에서 최고참이다. 매일 저녁 과한 화장과 반쯤 드러난 옷을 입고 유리창 안에서 남자 손님을 유인한다. 근처 다른 불법업소의 화재 사건을 듣고 자신들에게 닥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소희와 다른 여자들을 두려움에 휩싸인다. 여자들의 두려움과 달리 업소 주인에게는 이 사건으로 관공서의 단속이 더욱 심해질 것 같아 귀찮아졌다며 불평한다.


소설은 소희의 현재와 소희가 어떻게 불법 성매매업소로 흘러들어왔는지 과거로부터 거슬러 보여준다. 가난, 임신과 사산, 조직의 꾀임 등.. 소설 속에 그려지는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때론 불편하기까지하다.

군산에서 호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원점이 되는 그녀의 인생은 출구가 보이지 않아 읽는 동안 답답함을 멈출 수 없다. 그렇다. 출구가 없는 삶. 끝내 자포자기의 삶으로 귀결되는 그녀들의 일생을 작가는 보여준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성매매가 이 사회에 얼마나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성매매는 돈 있는 일부 사람들이 즐기는 일이 아니다. 많은 보통 남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성매매업소를 찾아간다. 가령 군대 가기 전 기념으로, 결혼 전 기념으로, 회사 회식 후 2차로 여자를 찾고 자신들의 여흥을 즐긴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유를 붙여 업소를 찾는 남자들, 그리고 여자를 미끼로 돈을 버는 업소 주인과 여자들을 감시하는 폭력배와 남자 미끼 등.. 그들에게 여성은 사람이 아닌 그들의 재산일 뿐이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소설 때문이 아닌 이 화재가 일어난 당시, 나는 같은 지역에서 그 소식을 들었고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있을 때 성매매 특별법을 피해 성매매 여성들이 호주로 많이 건너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음에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잠시만 분노하고 어쩔 수 없다고 돌아섰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 그들은 더 외로웠다는 생각에 더욱 미안해진다.


그들은 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 나갈 수만 있었어도, 우리가 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 더 그녀들을 함께 해 주며 앞장 섰다면 이런 허무한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단지 문틈 사이로 한 걸음의 자유도 허용되지 않는 그 소중한 인생.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녀들을 우리와 똑같은 인생으로 생각했는지. 과연 이 질문에 몇 명이나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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