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꽃을 잘 알지 못한다. 장미, 해바라기 등 보편적인 꽃은 알고 있지만 그 외의 꽃은 여섯 살 아이들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꽃과 나무에 무지하다. 아이들과 길을 가다 가끔씩 걸음을 멈추며 꽃 이름을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대답해주지 못해 무안할 때도 많았다. 갈수록 바깥 외출이 어려워지는 코로나 시대에 아이들과 꽃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읽게 되었다.
《이규보의 화원을 거닐다》의 저자 홍희창씨는 은행 지점장에서 퇴직한 후 밀양에서 텃밭에서 수십 종의 채소와 백여 그루의 나무를 키우며 매주 '터앝을 가꾸며'란 연재물을 SNS에 올리고 있다. 단지 조경기사이리라 지레 짐작한 나의 예상과 다른 저자의 이력이 다소 특이하다.
이규보는 고려 시대의 문인으로 명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저자는 이규보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 등에 나오는 2천 편이 넘는 시들 가운데 꽃과 나무, 과일과 채소를 읊은 시를 골라 각각의 특성과 상징, 키우는 법 등에 관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꽃과 나무의 실제 사진이 있으리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사진이 아닌 작품 속에 그려진 꽃과 나무들을 보여 준다. 이규보의 시와 함께 모란, 동백, 매화 등등 수많은 꽃이 소개되는데 그에 얽힌 일화 등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특히 저자는 혼동하기 쉬운 꽃 설명도 곁들어 독자들이 혼란스럽지 않게 도와준다. 가령 동백꽃은 알고 있었지만 애기 동백꽃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던 나와 같은 초보자들에게 각각을 구분하는 법등을 상세히 알려준다.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자리 잡은 시기가 1900년경 애국가 가사 후렴으로 들어가면서부터라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무궁화에 대해 하는 많은 질문을 얼버무리기 바빴는데 이 책에서 아이들의 질문에 답변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소나무라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해송이라고도 하고 춘양목 (금강소나무)라고 불리는 소나무도 있다. 꽃과 나무를 보며 왜 단 하나의 종류라고 생각하며 더 알지 못했던 걸까라는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시골에서부터 그토록 보아왔던 내 주변의 사물들에 나는 얼마만큼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을까? 단지 아이들과 함께 꽃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읽게 된 책이었는데 자연에 무관심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한다.
다만 아쉽다면 주로 소개되는 일화가 중국과 한국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서양의 일화까지 함께 소개해 주었다면 더욱 풍요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작품 속의 그림이 아닌 실제 사진을 한 장이라도 삽입했더라면 그 꽃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올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규보의 화원을 거닐다》는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기 기대했던 나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책 한 권이라면 불쑥 튀어나오는 아이들의 온갖 질문에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꽃과 나무 이야기를 자신있게 들려주는 나의 모습 기대해봐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