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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러 수용소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0년 7월
평점 :

한 출판사 출간 전 연재 포스트에 기대평을 남겼었다. 책 주제가 흥미로웠고 추첨을 통해 증정해 준다는 글을 보고 남긴 기대평이었다. 그런데 나의 댓글에 어떤 누군가가 답글로 자본주의의 노예라며 매도하는 글을 쓴 걸 보고 매우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단지 기대평을 쓴 건데 나를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고 매도하며 내가 그 익명의 사람에게 답글을 남기지 못하도록 조치해 놓은 그 사람에게 매우 원통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SNS가 발달하며 소통이 활발해진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남을 공격하기 쉽고 마녀사냥을 당하기 쉬운 곳도 SNS다. 특히 대중에게 노출된 공인 특히 연예인의 삶은 악플과의 전투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고호 작가의 소설 《악플러 수용소》는 악플로 삶을 잃어가는 고혜나라는 인기 여배우와 악플러 처단 정책으로 수용소에 수감된 열한 명의 악플러들의 이야기다.
《악플러 수용소》는 평범한 인물들의 일상이 소개된다. 결혼을 앞둔 딸 진희를 키우며 인테리어 매장을 하는 김광덕,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 아래 사법고시 1차 합격 후 2차 준비 중인 장민환, 지방에서 서울로 취직한 후 간호대학교 입학을 꿈꾸는 간호조무사 오수정, 아들쌍둥이에 딸 하나인 전업주부 신영자 그리고 무직인 박기성과 외고입시 준비중인 중 2 윤설의 어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이 그려진다.
그 평범한 일상과 대비해 아이돌 출신 연기자 고혜나의 사망 소식이 속보로 뜨며 소설은 고혜나가 죽기 전 배우 데뷔 초부터 죽기 전까지 시간을 짚어가며 익명이 남긴 악플로 점차 삶을 잃어가는 고혜나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은 대통령의 공약인 <악플러와의 전쟁>으로 수용소가 설치되고 이 악플러들이 졸지에 수감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린다. 일반 감옥과는 달리 악플을 필사하고 레드볼을 취득하는 사람이 조기 출감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 《악플러 수용소》이지만 본격적인 흥미가 시작되는 부분은 바로 수용된 그들이 레드볼을 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조기 출소할 수 있지만 레드볼에 담겨진 명령을 수행해야만 하는 이들에게 운명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한 명씩 조기 출소 하게 되지만 그들 앞에 닥친 불행과 연기자 고혜나의 마지막이 서로 대비되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오히려 슬픈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고혜나보다 수감되었던 이 악플러들의 결말이 어떻게 될 지 더 궁금하게 한다.

연기자 고혜나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동안 봐 온 여러 연예인들의 피해 사례를 좀 더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인스타그램에 사생활을 공격하는 악플러들, 절연한 부모의 빚투 사건, 진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부풀러지는 소문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황폐화시키는지 고혜나의 모습으로 알 수 있게 해 준다.
《악플러 수용소》에서의 교정은 매우 잔인하다. 악플러들이 레드볼을 받고 출소하지만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던 건 교정보다 처벌에 목적을 두었기에 잘못이라는 사실을 하지 않았으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오히려 출소 후보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잘못을 알 수 있도록 했더라면 바깥 생활에서 극복하기 쉽지 않았을까? 내게 이 소설은 악플이 한 인생의 삶을 흔드는 걸 볼 수 있게 해 주었지만 그보다 개선이 아닌 처벌만을 우선시하는 정책 또한 부작용 또한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악플을 한 그 댓글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몇 달이 지난 일이었지만 아직까지도 그 때의 당혹감을 잊을 수 없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글이 나를 상처줄 수 있다는 걸 그 때 깨달았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장난으로 던지는 글 한 문장이 한 사람을 얼마나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익명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우선되어야 함을 알려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