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알맞은 걸음으로 - 졸혼, 뇌경색, 세 아이로 되찾은 인생의 봄날
아인잠 지음 / 유노북스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삶에 알맞은 걸음으로》를 읽는 내내 망설였다. 서평을 써야 하는데.. 그러자면 솔직해져야 하는데.. 이 익명의 공간이 아닌, 그리고 나라는 실물을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를 전혀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솔직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용기를 내어 글을 쓴다.

《내 삶에 알맞은 걸음으로》의 저자 아인잠씨는 13년의 결혼 생활 끝에 아이 셋과 함께 독립하여 졸혼을 선언하고 자신의 가족과 인생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는 작가이다. 전 작인 {내 인생에서 남편은 빼겠습니다] 가 남편과의 결혼 생활당시 힘들었던 저자의 시간이였다면 《내 삶에 알맞은 걸음으로》에는 남편으로부터 독립 후 일어난 변화와 홀로 서는 과정을 그렸다.

결혼 13년차, 아이 셋과 간단한 짐만 챙겨 독립한 저자는 남편의 양육비 지급 거절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아이들이 상처 입을까 걱정되고 주변에서 무조건 남편에게 빌고 들어가라는 마이 웨이식 조언들은 힘들게 결정한 저자에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13년까지 결코 참지 않았는데 더 참으라고 말하는 지인들을 보면서 대체 어디까지 참으라고 말하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저자는 이혼 전까지 오후 5시가 불안함의 시기였다고 말한다. 막내가 하원하는 4시 반부터 남편이 퇴근 후 돌아오기까지 집안을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밖에서 더 놀고 싶어하는 아이를 부추기며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의 비위에 맞추기 위해 허겁지겁 청소하고 저녁을 한다. 돌아온 남편의 표정에 만족하는 미소가 보일 때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마저 못다한 집안일을 한다. 남편의 퇴근이 가까워질수록 불안해하던 이 오후5시가 독립 후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이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도시락을 포함해 남편의 삼시세끼를 챙기고 가사와 육아에 힘든 저자에게 독립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지인들의 고마움을 깨닫는 자리이기도 하다. 급성 뇌경색으로 입원했을 때 집으로 음식을 배달해 주는 지인들,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나누는 지인들을 보며 감사와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마음과 빈 아빠의 자리만큼 든든한 엄마의 역할을 할 것을 다짐하는 저자의 글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저자는 결혼 생활 속에 행복하지 않은 부부가 많다고 말한다. 함께 해서 불행하다면 헤어지는 게 정답이라고 말한다. 사실 많은 부부가 싸우면서 이혼을 거론하지 않는 부부는 없을 것이다. 설사 이혼을 입 밖에 낸 적은 없다고 해도 이혼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남과 남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데 갈등이 없는 부부가 없을 것이다. 6년 차인 우리 부부 또한 마찬가지다. 나의 경우 이혼을 생각하고 있을 때 엄마의 병진단을 받았다.

현재까지 치료법이 나오지 않는 엄마의 투병과 내 아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찾는다는 엄마에게서 아이들을 떼어 놓을 수 없었다. 나보다 아이들을 더 좋아하고 아이들을 더욱 끔찍하게 아끼는 남편이 양육권을 내게 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혼하지 못한 건 솔직히 그 때문이었다.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즐거움이라고 하는 엄마의 낙을 빼앗을 수가 없었다. 그 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남편은 싸울 때마다 이혼으로 나를 압박했고 나는 부부 사이에 약자가 되어야 했다. 싸울 때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서 나를 분리했고 과한 친절을 베풀며 아이들은 자신이 데려간다며 나를 압박했다.

저자가 묘사한 결혼 생활 중 가장 공감이 되었던 부분은 남편이 바라는 여자 상이였다. 바로 "아내가 닮았으면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였다.

살림 잘하고, 부지런하고, 시부모 봉양하며, 아이들을 잘 키워낸,

집안은 항상 정갈하고, 온유하고, 따뜻하고, 친절하며, 인내심이 많으며, 희생적이고, 알뜰하고,

불평하지 않으며, 좋은 것은 자식 주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남편을 섬기며, 음식을 잘하고, 가족들을 위해 봉사하는....

'아내가 닮았으면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결코 닮을 수 없었다.

남편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반신 불구가 된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삼형제를 키워 낸 어머니를 존경하는 남편은 내게 어머니 =희생이라는 공식을 강요했다. 헌신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편에게 내 고생은 어머니에 비하면 종이 한 장처럼 가볍게 보였다. 그래서 남편은 내가 힘들다고 할 때마다 엄마들은 그런 거야라면서 나의 고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뭔가를 해도 고생했다라는 말보다 당연한 걸 했다는 듯한 태도는 나를 지치게 했다. 여자, 한 개인의 삶보다 그의 삶에 알맞은 장식품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엄마라는 존재로만 있어주길 원했다. 그 압박 속에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잃어갔다.

그래서일까.. 읽으면서 나는 저자에게 계속 반문했다. "정말 나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내가 나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갈수록 힘들어하시는 엄마를 두고 내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저자는 분명 이 책에서 독립을 하며 찾게 된 인생의 봄날을 이야기한다. 가부장적인 남편에 억눌려 있던 저자가 온전한 자신을 되찾으며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일상도 그려내고 있지만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고민들 또한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며 부부와의 연은 끊어졌지만 부모로서의 연은 이어지고 있는 관계,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 등은 만만한 문제는 아니였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기에, 남편이 아닌 부모님 그리고 자신을 아끼는 지인이 있고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세 아이들이 있어 감당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빈 자리만큼 듬직한 엄마가 되어줄 수 있도록 다시 힘을 낸다.

결혼과 이혼이라는 징검돌을 건너 온 저자의 글을 보며 내 앞의 징검돌을 보며 고민에 빠진다. 내가 과연 행복할 수 있기 위해서 나도 징검돌을 건너야 할까? 6년을 넘어가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도돌이표를 보며 어느 게 최선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저자 또한 이 결정이 쉽지 않았다. 13년이라는 긴 시간만큼 수많은 갈등과 번민 속에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유한한 내 인생, 다시 오지 않을 내 인생을 위해서 나를 위한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결정을 위해 철저하게 분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결혼 생활이 결국 헤어짐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결코 헛 된 시간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내 삶에 알맞은 걸음으로》을 읽고 나는 인생 숙제를 만난 느낌이다. 저자의 상황이 나와 다르지 않기에 더욱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나를 위한 선택, 내 행복을 포기하지 않을 선택을 할 것은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