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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ㅣ 러시아 고전산책 5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김영란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평점 :

《파우스트》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대개 독일 작가 괴테의 <파우스트>를 떠올린다. 나 역시 그랬다. 읽지 않아도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소설. 악마와 거래하여 젊음을 되찾는 파우스트와 파우스트의 사랑의 화신 그레트헨 이야기를 그린 파우스트 이야기를 생각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이외 러시아 작가에 문외한이었던 내게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는 이반 투르게네프는 낯선 작가였고 약간의 두려움 속에 책을 펼쳤다.
먼저 이반 투르게네프가 누구인지 설명해야겠다. 이반 투르게네프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국민 작가이다. 투르게네프는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어머니 영지의 농노들에게 동정을 느끼고 농노제를 강하게 반대하며 농노의 비참한 생활을 그린 연작 [사냥꾼의 수기]로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이다.
《파우스트》에는 [세 번의 만남] [파우스트] [이상한 이야기] 등 세 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소설인 [세 번의 만남] 에는 이탈리아의 소렌토에서 우연히 미지의 여인을 보게 되고 세 번의 우연에 걸쳐 그녀와 만나게 되지만 실연의 아픔에 괴로워하는 그녀를 떠나보낼 수 밖에 없는 남자의 아픔이 그려진다.
이탈리아 소렌토, 러시아 글린노예, 그리고 마지막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이반 투르게네프는 영화 속 장면을 클로즈업하듯 찬찬히 보여준다. 주인공의 시선에 따라 풍경이 보여지며 그 미지의 여인의 피아노와 음악 소리, 낯선 남자와의 품에서 행복해 하는 여인의 모습, 그리고 가면에 감추인 여인 등의 모습이 섬세한 묘사와 함께 읽는 독자를 작품 안으로 초대한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에 따라 읽는 이가 함께 움직인다. 미지의 여인을 과연 만날 수 있을까 한껏 애태우게 한 후 마지막은 짙은 안타까움으로 막을 내린다.
나는 달빛과 이슬 가득한 정원 앞에 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부드러운 절반의 그림자 속에서 어슴푸레 빛나는 창문 두 개를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순간 갑자기 저택 안에서 피아노 소리가 되어 퍼져 나갔다…
자극적이고 날카로운 공기는 메아리가 되어 온 세상을 진동시켰다… 나는 돌연 이상한 전율을 느꼈다.
피아노 소리에 뒤이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표제작이기도 한 [파우스트]는 주인공인 파벨 알렉산드로비치 B가 친구에게 보내는 아홉 통의 편지 형식으로 된 소설이다. 파벨은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여인 베라 니콜라예브나가 대학 동창 프리임코프의 아내와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와의 재회에 주인공은 첫만남부터 떠나기 전까지를 회상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소설이나 시를 읽지 않았던 베라에게 주인공은 소설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파우스트]를 읽어준다. 만남의 횟수와 함께 변해가는 두 사람의 마음의 변화가 매우 압권이다.
흥미로운 건 소설을 읽을 수록 액자 안의 액자 구성을 떠올리게 된다.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서 악마가 파우스트에게 젊음을 주겠다며 유혹하는 내용이 투르게네프의 소설 속에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문학을 읽지 않는 베라를 유혹하는 장면과 데칼코마니와 되는 듯하다. 문학을 읽으라며 그 아름다움을 알려 주겠다며 설득하는 나는 과연 악마 메피스토텔레스일까 아니면 그레트헨일까 의심하게 된다.
소설 속 나는 베라가 [파우스트]를 읽고 변해가는 걸 보며 돌아가신 그녀의 어머니 초상화 앞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제 그녀는 당신에게서 벗어났다며 자랑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악마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 두 사람 안에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가 [파우스트] 작품의 인용문과 함께 더욱 감정을 극대화하며 괴테의 [파우스트]와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를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 아홉 번째 편지는 베라와의 짧은 인연을 통해 씁쓸히 인생을 말하는 글은 [파우스트]에서 그레트헨의 사랑을 받아 구원 받고 승천하는 파우스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이 베라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베라가 자신을 변화시켰음을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최근 몇 년 간의 경험에서 난 확신 하나를 얻었어. 인생은 농담이나 오락이 아니라는 것,
인생은 유희조차 아니라는 것 …
인생은 힘겨운 노동이라는 것. 금욕, 끊임없는 금욕, 이것이 바로 인생의 숨겨진 의미요,
인생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네.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를 읽노라면 괴테의 <파우스트>를 더 풍성히 느끼게 되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소설 속의 소설을 더 깊게 느끼게 하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이반 투르게네프의 서정적이면서도 절제된 듯한 문체를 보며 작가의 묘사 또한 놀랍지만 이 작품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번역에도 많은 공을 들였음을 짐작케 한다. 옮긴이 후기에서도 투르게네프의 아름다운 문체를 읽는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많은 고심을 했음을 밝힌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다른 작품들 또한 궁금해진다. 특히 농노제를 강하게 비판한 <사냥꾼의 수기>가 기대된다. 한 작가의 세계를 계속 탐험하고 싶어지는 작가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