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장미 인형들
수잔 영 지음, 이재경 옮김 / 꿈의지도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어려서부터 여성, 특히 소녀들에게는 많은 제재가 가해진다. 옷차림, 통금, 말투 등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은 순종적인 것을 원했다. 때로 성격이 과하거나 개성이 강한 여자가 있을 경우 어른들은 말하곤 했다. "쟤는 앞으로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나."라고 말하며 혀를 쯧쯧 차곤 했다. 어려서부터 제재와 통제 속에서 자란 삶은 커서 성인이 된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어른들은 소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가르치며 세뇌시키곤 한다.

《깨어난 장미 인형들》은 온실 속의 학교에서 자란 소녀들의 이야기이다. "이노베이션스 아카데미"에서 아리따운 소녀들에게 좋은 신부가 되기 위한 자질을 배우는 곳이다. 이 곳에서 배우는 과목은 원예, 사교 에티켓, 겸양과 정숙, 아름다움, 순응 등 투자자들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자질 등만을 배운다. 이 소녀들은 항상 체중 관리를 위해 맛없는 오트밀만을 먹어야 하며 엄격한 관리를 받는다. 질문도 없이 무조건적인 순종만 강조된다. 그 가르침에 세뇌된 소녀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투자자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여자학교지만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모두 남자들이다. 기숙사 보스사감부터 분석가 안톤 그리고 교수들까지 모두 남자다. 단 교장의 아내 리앤드라만 제외하고. 이 아카데미 울타리에서만 살아가던 필로미나 로즈는 어느 날 학교 현장학습 때 사감의 눈을 피해 몰래 사탕을 사던 중 잭슨이라는 남자와 대화를 하게 된다. 자신에게 사탕을 사 주며 호의를 베풀던 소년, 잭슨과 대화하는 모습을 사감에게 들키게 된다. 사감은 필로미나를 거칠게 끌고 가게 되고 필로미나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평범한 학교 생활에서 잭슨을 다시 만나게 되며 그가 이 학교에 의문을 나타내며 결코 이게 정상이 아님을 이야기해주고 친구 밸런타인의 변화와 레논리즈가 갑작스레 학교를 떠나게 되는 일들을 겪게 되면서 필로미나는 이 배후에 뭔가가 있음을 깨닫고 친구들과 함께 행동하게 된다.

《깨어난 장미 인형들》은 남자들에게 온전히 순종할 것을 세뇌하는 아카데미의 남자들과 그 세뇌로부터 벗어나려는 어린 소녀들의 투쟁이다. 소녀들은 오랜 시간 그들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남자들의 시선에서 찾을 것을 배워왔다.

"선을 긋는 건 너희에게 달렸어. 미래의 남편을 위해 자신의 순결을 지켜.

그들에겐 그걸 가질 자격이 있어. 그들의 권리야."

"너는 이제 무가치해."

이 가르침 속에 소녀들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아카데미에서 배운 가르침만이 목표가 된다.

이 소녀들의 이야기들은 서커스의 아기 코끼리를 생각나게 한다. 코끼리는 힘이 세다. 하지만 서커스에서 코끼리는 인간의 지시를 잘 따른다. 어떻게 이 몸집이 커다란 코끼리가 순종적일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어린 코끼리 때부터 코끼리를 말뚝에 박아 이들이 못 움직이게 묶는다고 한다. 처음에 반항하던 아기 코끼리는 곧 포기하게 되고 이 코끼리가 성장해서도 이 말뚝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 책의 소녀들은 바로 말뚝에 박힌 아기 코끼리들이였다. 좋은 신부감이 되고 투자자들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도록 오랜 시간 훈련받아온 그들은 감히 거역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억압된 삶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었다. 무기력한 아기 코끼리처럼.

미나, 시드니, 밸런타인, 브린 등 그들이 이 가르침을 거부하고 투쟁을 시작할 때 소녀들은 자신들을 감시해 온 아카데미 선생님들보다 그들이 심겨 준 오랜 교육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더 큰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마침내 그 세뇌로부터 벗어났을 때 그녀들을 조종해 온 선생들은 당황해하며 마지막 작전을 감행한다.

《깨어난 장미 인형들》의 이야기가 과연 소설 속에서만 있는 이야기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 한국에서도 여전히 여성들, 소녀들을 세뇌시킨다. 밤길을 조심하는 것도 소녀들이 해야 하고 몸조심을 해야 하는 것도 소녀들이 해야 한다. 큰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을 귀가 박히도록 들어왔고 딸이 있으면 비행기 태워준다. 예전, 어느 한 지인의 아기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갓난 남자 아기 사진을 보며 누군가가 말했다. "딸이였으면 어쩔 뻔했어." 여자라면 무조건 이뻐야 한다는 가르침, 이뻐지기 위해 성형수술도 상관없다는 태도 또한 어려서부터 사회는 여성에게 심겨주었다.

꾸미기보다 자연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강조하는 탈코르셋 운동 또한 그런 세뇌에 NO라고 말하는 여성들의 투쟁이다. 이러한 운동은 우리가 오랜 세뇌 속에서 깨어날 때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

두 딸의 엄마로서 내가 과연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사회가 아이들에게 주입하는 말들로부터 세뇌되는 것을 막아주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리라.

이 소설의 에필로그 부분의 예기치 못한 강한 반전을 읽으며 이 책의 후속편이 곧 쓰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언제쯤 이 소녀들의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을까 지금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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