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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문학계의 거장 황순원 작가의 신작 《철도원 삼대》를 가제본 형식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내용 중 앞 부분 3분의 1 내용만을 소개한 이 《철도원 삼대》 가제본은 이백만, 이일철, 이진오 삼대에 걸친 노동자들을 소개하는 데 집중한다.
소설 초반은 진오가 굴뚝농성을 하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해고자의 신분, 공장이 폐쇄되고 다른 회사에 매각된 직장, 복직과 고용승계를 주장하지만 이제 모두 뿔뿔히 흩어지고 열한명이 남아있는 투쟁의 현장. 기약 없는 시간은 그들을 더욱 애태우게 하고 사업주는 그들이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묵묵부답으로 느긋하기만 한다.
이진오의 고공농성은 외롭고 고되다. 여름에는 찌든 더위와 싸워야 하고 비오는 날은 온 몸으로 비를 맞아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외로움이다. 홀로 이 좁은 공간에서 버텨야 하는 외로움은 지상에서 그에게 식사를 보조해주는 동료들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외로움에 진오는 페트병 다섯 개에 이름을 붙여주고 말을 건다. 그들에게 말을 걸며 진오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세대인 일제강점기부터의 이야기들을 생각해낸다.
일제강점기 기관차에 매료된 이백만은 기관사가 될 수는 없지만 이 철도원으로 일할 수 있음을 큰 자랑으로 여긴다. 그리고 성적이 좋은 큰 아들 일철이 철도 기관사가 될 수 있는 학교에 입학한 것이 매우 뿌듯하기만 하다. 자신의 오랜 숙원을 아들이 이뤄준다고 생각하니 어찌 뿌듯하지 않을 수 있으랴. 비록 형 만큼은 아니다 하더라도 이철 또한 아버지 밑에서 함께 일을 하며 기술을 배워나간다.
소설은 일제시대, 조선인이 일제치하에서 철도 공사를 위해 일제가 조선인들의 토지를 가차없이 몰수해가며 졸지에 터전을 잃어버린 실향민들의 아픔과 무작정 착출하며 강제 노동에 동원하는 노동의 현실을 가차없이 보여준다.
이 현실에 분개한 사회주의자들과 이백만의 둘째 아들 이철이 함께 하며 위에서부터가 아닌 아래서부터의 노동 운동을 꿈꾸지만 탄압과 해고 속에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왜 작가는 이진오의 고공농성으로 시작했을까 생각해본다. 그건 바로 일제강점기의 일제가 조선 노동자에게 가했던 탄압과 지금의 현실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설명하기 위함이였다. 이철의 노동 운동에 화내는 백만에게 이철은 소리친다.
아부지가 운이 좋긴 뭐가 좋아요?
아부지한테는 왜놈들이 상전이구 주인이잖아요?
제 말씀은요, 일본 놈이든 조선 놈이든, 그냥 목숨만 부지할 정도로
주는 대루 먹구 사는 종놈이 아니라,
일한 만큼 대우를 받으며 살자는 거예요.
그런 사회가 오면 나라도 독립이 되곘지요.
일한 만큼 대우를 받는 사회가 독립이 될 것이라는 이철이 지금의 모습을 보면 뭐라고 말하까?
100년의 세월이 지났고 독립도 되었지만 우리는 이철이 원하는 사회가 살고 있나? 일한 만큼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나? 이백만 집안의 종손 이진오가 굴뚝농성을 하며 복직투쟁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그는 이게 독립된 나라의 모습이라고 말할 것인가?
시간이 흘렀지만 노동자를 착취하고 탄압하는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고달픈 노동자들의 현실을 저자는 이 삼대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준다. 처음 고공농성을 시작했을 때 언론의 주목을 받고 큰 화제였지만 이제는 보편적인 투쟁이 되어버린 현실, 기약 없는 시간 때우기로 투쟁하는 이들이 스스로 지쳐 떨어지기를 원하는 사측, 자신의 일에만 관심있는 사람들... 이 현실이 일제치하시대의 모습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소설의 일부만을 소개한 것이기에 이철의 노동운동에서 멈추었다. 이들의 투쟁과 진오의 힘든 투쟁이 어떻게 이어질까. 진오는 이 힘든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이 가제본은 나의 마음에 궁금증을 불태워 기어이 예약구매를 하게 만든다. 집필만으로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이 역작이 과연 어떤 내용으로 끝마쳐질지 매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