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2년생 김지영] 이후로 여자, 엄마의 존재는 많이 부각되었지만 할머니의 존재는 여전히 관심 밖에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끝까지 자식 손녀들의 뒷바라지 역할을 하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할머니들이 늘어나지만 우리는 그분들의 희생을 어쩔 수 없다며 당연시한다. 뒤에서 쓸쓸해하는 그들의 모습까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나의 할머니에게》는 한국 문학계의 젊은 작가들이 여러 할머니의 모습에 대해 쓴 단편소설집이다. 부제 제목 그대로 이제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할머니'를 내세운 첫 소설집이다. 그리고 이 여섯 편의 작가들 모두 여성들이라는 점도 매우 인상깊다. 이 소설 속에는 6명의 할머니들이 나온다. 재혼하여 전처의 자식을 키웠지만 자식을 위해 집을 팔지 않는다며 매정해하게 여긴다는 오해를 받는 할머니, 어린 시절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엄마 역할을 해 주며 프랑스에서 쓸쓸해하던 할머니, 치매에 걸려 손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 부자 할머니를 두었던 손녀, 템플 스테이를 하는 모습까지 각각 그 모습들이 여러 모습으로 그려진다.

윤성희 작가의 <어제 꾼 꿈>에서는 자식들이 자신을 매정한 할머니라고 내세우는 모습이 전개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당연히 작은 집으로 이사해 남은 돈을 줄 것을 요구해하는 자식들. 그 자녀들의 모습 속에 끝까지 퍼 주기를 바라는 자녀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소설에서 자녀들이 전처의 자식들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도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씁쓸해진다. 그럼에도 동시를 외우며 꿋꿋이 살아가는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가 후에 되고 싶은 할머니의 모습이 아닐까.

여섯 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쓸쓸하면서 여운이 남는 작품은 단연 백수린 작가의 <흑설탕 캔디>였다. 죽은 며느리를 대신해 손주들 뒷바라지를 해주고 파리까지 가서 손주들을 보살피지만 한 마디도 못하는 불어로 인해 쓸쓸해 하는 할머니의 모습. 그 모습에서 나는 가끔씩 부모님이 서울로 오실 때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후 쓸쓸해 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발견했다. 직장으로, 어린이집으로 가는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정적이 흐르는 집에서 홀로 집을 지키는 부모님의 모습. 솔직히 바쁘다는 이유로 그분들의 외로움까지 헤아리지 못했다. 이 소설이 단지 할머니의 외로움을 부각시켰다면 마음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프랑스 타지에서 만난 낯선 할아버지와의 로맨스를 대입시키며 할머니에게도 할머니대의 삶과 사랑 그리고 추억이 있음을 감동 깊게 이야기한다.

요양원으로 보내지는 노년의 현실, 죽음에 대한 노년의 모습, 외로움, 자신의 삶을 고집한다는 이유로 이기적이라며 내몰리는 할머니의 모습 등은 현실 그대로의 노년 모습을 보여 주지만 결코 수동적이 아닌 끝까지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민자와 세대 문제를 통해 씁쓸한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손원평 작가의 <아리아드네 정원> 또한 강한 여운을 남겨 주는 등 여섯 편의 소설 모두가 반짝 반짝 빛이 난다.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고 이제는 할머니,할아버지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노년에 과연 어떤 할머니가 되어 있을까 상상해보며 빠르게 다가오는 나의 노년 생활이 과연 어떻게 다가올지 많은 생각을 하며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소외된 존재들이 이렇게 하나씩 세상의 전면에 부각되고 더 많이 말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책이 바로 그 첫 시발점이 된 것 같아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의 할머니에게》 바로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미래임을 기억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