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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요스트 더프리스 지음, 금경숙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히틀러를 소재로 한 소설 및 영화 작품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때로는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기도 하고 다른 작품 같은 경우는 히틀러의 만행을 철저하게 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히틀러를 연구하는 학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접하기 힘든 분야의 사람들이고 그 학문 조차도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과연 그 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능할까?
소설 《공화국》으로 황금부엉상을 수상 작가 요스트 더프리스는 이 작품에서 히틀러를 연구하는 학회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의 찬란한 지식으로 우리에게 소개한다.
책 표지 앞면, "자네는 나를 이을 후계자인가? 나를 지울 혁명가인가?"라는 부제는 이 책의 이야기 방향을 소개한다. 히틀러 학문의 권위자인 브리크 교수의 소개로 히틀러에 관한 잡지 <몽유병자>의 편집장 프리소는 소설 초반부터 자신과 브리크와의 친분을 강조한다. 네덜란드인인 자신이 미국으로 오게 된 계기가 브리크의 추천이였으며 <몽유병자> 또한 브리크의 강력 추천이 있었기에 일할 수 있었고 따라 브리크의 책을 편집한 사람도 자신이다라고 자부한다. 브리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브리크가 칠레에 있는 동명의 히틀러를 만나 볼 것을 권해 칠레에 간 프리소는 뜻하지 않은 감염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병상에서 브리크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다. 투병 중 장례식과 추모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던 프리소는 귀국 후 브리크의 사망 소식에 관한 기사를 읽던 중 대부분의 기사들이 브리크를 잇는 후계자로 자신이 아닌 처음 접하는 필립 더프리스를 지목하게 됨에 분개한다. 흥분한 프리소는 연인 피파에게 대체 필립이 무슨 말을 했기에 모두 그를 후계자로 지목하느냐며 열변을 토하면서 필립에 대한 질투심에 불타오른다.
《공화국》은 후계자 자리를 되찾아오려는 프리소가 빈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가하게 되며 사람들이 자신을 필립 더프리스로 오해하고 프리소 또한 필립 행세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벌이는 복수가 일파만파로 퍼지는 사태에 관해 이야기한다. 간혹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자신을 필립이라고 강조하는 프리소의 모습과 자신에 대해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필립이라고 받아들이는 학회 사람들, 기자, 이스라엘 첩보부, 과격 단체등들이 그를 방문하면서 프리소는 그들과 히틀러에 대한 변론을 펼친다.
이 히틀러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히틀러 본인이 아닌 학자들의 입에서 이토록 풍성하게 알 수 있는 작품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작가는 다양한 히틀러의 이야기를 풀어준다. 단편적으로만 알던 지식이 아닌 프리소의 입에서 나오는 히틀러의 이야기를 통해 단지 광적인 독재자 히틀러가 아닌 여러 모습으로 보게 된 다는 점은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저자가 자신의 성 더프리스를 작품에 똑같이 이용한 부분은 저자의 재치를 엿보게 한다.
다만 아쉬운 건 이 분야가 우리에겐 생소한 부분이고 저자의 해박한 지식의 향연이라 할 만큼 굉장히 많은 주석들로 가득차있어 가독성이 떨어진다. 모르는 부분이 많다 보니 주석을 보기 위해 읽는 내내 주석을 살펴보느라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재독을 한다면 이러한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은 또 다른 도전을 안겨준다. 다시 한 번 읽어서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말겠다는 도전 욕구를 불태운다.
브리크를 잇는 후계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벌이는 복수극이였지만 전개될수록 그 흐름과 역행하기도 하면서 과연 후계자인지 또는 혁명가인지 종잡을 수 없는 이 프리소의 이야기 속에 마약처럼 단숨에 몰입하는 가독성은 없지만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저자의 재치와 풍자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