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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수업 -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
김헌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평점 :

학창시절, 선생님께 질문했던 경험이 많지 않다. 그냥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할 뿐이었다. 성인이 된 후,내가 진지하게 묻기 시작한 건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기혼녀, 엄마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굴레를 알면서부터 나는 진지하게 이게 맞는 것일까라는 질문 앞에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대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아마 질문의 경험이 많지 않는 내게 답을 찾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천년의 수업》의 저자 김헌 교수는 '차이나는 클라스'의 명강의로 일반인인 우리에게 익숙한 저자이다. 서울대 도서관 대출순위를 바꿀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저자의 강의는 이 《천년의 수업》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독자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고 있는지 묻는다.
상황에 순응하며 끌려가는 삶인지, 끊임없이 질문하여 정답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물으며 저자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묻는 이 아홉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에서 찾는다면 아마 의아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단편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 표면적인 이야기의 이해에 그치며 재미있는 옛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저자의 질문은 매우 심오하며 진지하다. 이 질문들에 대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천년의 수업》에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아울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화 속 수많은 인물들에게서 지금의 우리와 대입시켜 질문을 하며 답을 찾아간다. 저자가 신화를 읽으면서 신화가 단지 한 두 명의 신과 영웅들에 의해서 지어진 것이 아님을, 그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이 거대한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었음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삶 중 소중하지 않은 것임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 예가 바로 로마공화정이 수립될 수 있었던 이야기다.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지만 그에 동의하고 공감한 한 명 두 명의 시민들이 모여 로마 왕정을 무너 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한 계기를 예로 들며 저자는 결코 자신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말도록 조언해준다.
그리스 로마 신화로부터 많은 예를 들지만 이 책의 강의는 주로 저자의 깊은 혜안과 경험에서 우려나온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교육자로서 프랑스 유학 시절 느낀 프랑스와 한국의 교육에 대한 단상과 죽음이 있는 유한한 삶과 영원한 무명의 삶 중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 묻는 저자의 강의 등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학창 시절 선생님이 수업 시간 후 들려주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다. 또한 인문학이 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상류층에 집중되어 있고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오히려 먹고 살기에 바빠 인문학을 접할 기회가 없는 현실에 대한 저자의 고민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저자는 "답은 틀릴 수 있지만 질문은 틀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왜 저자는 질문의 중요성을 이토록 강조했을까? 아마 질문을 하는 삶과 하지 않는 삶의 극명한 차이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역사는 이게 옳은 것인가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답을 내리며 행동으로 옮긴 이들로 이루어져왔다. 질문이 있을 때 답을 찾기 위해 변화를 시도해온다. 그리고 저자는 이 답을 그리스 로마 신화로부터 찾아왔고 우리에게 그 여정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한다. 아마 이 책을 읽노라면 어느 새 그리스 로마 신화를 검색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읽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