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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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다. 오테사 모시페그의 소설의 인물은 난해하다. 처음에 그 난해함에 당황하지만 읽다 보면 그 난해함에 공감하게 된다. 작가 오테사 모시페그는 첫번째 소설 《아일린》의 자기 혐오 강한 여주인공으로 《내 휴식과 이완의 해》의 주인공은 모든 현실로부터 휴식을 선언하고 동면에 잠자기로 한 스물 여섯 여성을 그려냄으로 자신만의 강렬한 개성을 드러낸다.

《내 휴식과 이완의 해》에서의 주인공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매우 회의적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경제적인 부도 있지만 어머니는 술과 약에 취해 있었고 아버지는 존재감이 없이 암으로 쓸쓸이 돌아가셨다. 전 남자친구 트레버는 바깥에서는 전망 있는 금융인이지만 심심풀이용으로 '나'를 만나고 자신의 성적 취향에만 따를 것을 강요하는 이기적인 남자이다. 직장에 손쉽게 취직했지만 해고 당하고 친구인 리바는 자신의 세계로 편입되고 싶어하는 속물이다. 이런 현실에 '나'는 살아가기보다 잠을 택한다.

세탁물 자동 수거, 속옷 배달, 공과금 자동납부 처리, 실업수당 자동응답 서비스 등등.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긴 유산으로 돈 걱정없이 동면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모든 인간이 24시간 잠을 잘 수는 없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수면제를 처방해 줄 수 있는 정신과 의사인 '닥터 터틀'을 찾아 여러 핑계를 대며 수면제와 안정제를 처방받는다. 깨어있는 동안 볼 영화 비디오테이프도 대여하는 등 주인공은 모든 환경을 완벽하게 세팅한 후 본격적인 동면에 들어간다.

잠에 빠져들기로 결심한 '나'의 모습이 무책임할 수 있다. 스물 여섯, 청춘의 나이에 잠으로 한 해를 보낸다는 게 무책임하게 느껴지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과 전 애인과의 만남 그리고 친구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어느 곳에도 그녀는 의지할 곳이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나'의 안에 축적된 회의감이 이제 주변에 눈을 감고 잠이라는 회피 수단을 택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잠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행동이 염세적이지만 그만큼 더 외로웠음을 알게 되며 잠이 무책임한 행동이 아닌 그녀 나름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김하나 작가는 추천사에 이 이야기가 우리가 삶이라는 고통에 내동댕이쳐질 때 눈을 감느냐 뜨느냐의 문제를 말한다고 했다. 처음에 이 추천사가 공감이 가지 않아다. 하지만 주인공 나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이 추천사야말로 이 소설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에게도 삶은 녹록치 않다. 만만하지 않은 삶 속에서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눈을 뜨고 살아갈 것인가. 눈을 감고 회피할 것인가. 보통 많은 사람들은 회피야말로 비겁한 수단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주인공처럼 잠시 현실 속에서 회피하며 쉴 시간이 필요하다. 이건 비겁한 게 아니라 다시 살기 위한 행동이다. 결국 주인공의 '잠'이라는 수단도 다시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휴식과 이완의 해를 보낸 주인공은 과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주인공이 또 다시 눈을 감지는 않을 것 같다. 78층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여자가 완전히 깨어 있다고 말하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건 그래도 깨어 있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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