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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일터로 나가다 - 현장실습생 이야기 ㅣ 사탐(사회 탐사) 5
허환주 지음 / 후마니타스 / 2019년 11월
평점 :

대학진학율이 80%가 넘는다. 이제 대학은 전형적인 교육 과정처럼 느껴질만큼 대학 진학은 당연하게 되었다.
매년 수능 난이도, 대학입시 경쟁률 등 보도하며 고3 수험생 이벤트등 시끌벅적하지만 고등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현장실습이라는이름으로 험한 작업장에서 힘겹게 버티는 어린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다.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김군이 스크린 도어 수리 도중 그 처참한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그리고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 군의 안타까운 사고가 있기 전까지 그 어린 현장실습생들은 이 사회에서 잊혀진 존재들이였다.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의 저자 허환주 기자는 인터넷 언론매체 "프레시안"의
기자로 현장실습생들의 산재 사건에 관한 현실 그리고 왜 이 사고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는지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원인을
분석하고 어떻게 이 악순환을 끊어내야하는지 이 책을 통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먼저 전주의 한 LG유플러스 하청업체로 콜센터에서 근무하며 회사의 성과제 압박과 쏟아지는 고객으로부터의 폭언 끝에 결국 자살을 택한 18세 홍은주 양의 죽음을 소개한다. '애완동물'과를 공부하고 애완동물 미용사가 되고 싶었던 은주 양에게 학교가 소개해 준 곳은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통신사의 콜센타.. 그 곳에서 끊임없는 압박과 시달림 끝에 홀로 마지막을 택한 은주양에게 회사의 변명은 가정의 불화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많았다는 구차한 변명뿐이었다.
한 노동자의 인권보다는 실적만으로 평가받는 시스템으로 인해 끝내 죽음에 내몰리게 된 은주양의 죽음과 함께 현장실습에 취직했지만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한 박영수 군의 죽음을 통해 저자는 그 원인의 뿌리를 추적해간다.
저자는 박정희 시대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전 국민의 과학화"를 외치며 기술력을 갖춘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공업고등학교를 육성하고 한국과학기술원을 설힙했던 시대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직업계고의 설립으로 '산업역군'을 배출하였지만 IMF로 인한 고용유연화 이후 외주화가 본격적으로 희생되면서그 외주화의 한 가운데 직업고교를 나온 학생들이 그 외주화란 이름으로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차근차근 분석해간다.
대학 진학이 당연시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집안 형편에 스스로 공고 또는 직업고등학교를 선택할 수 밖에 없던 중학생들, 또는 성적이 되지 못해 어쩔수 없이 직업고등학교로 내몰린 아이들은 처음부터 문제아라는 딱지를 떼고 임하게 된다. 같은 직업고교이지만 재학생들의 취업률에 따라 학교 예산이 정해지는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회사의 구조와 학생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작정 아이들을 위험한 일터로 내모는 이 교육정책은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아 버린다.

평등한 교육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공교육에서마저 소수의 엘리트들만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며 나머지 아이들은 방치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교육의 현장.. 취업률 하나로 회사에 대한 변변한 정보 없이 아이들을 일터로 내몰고 책임을 지지 않는 학교,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변변한 근로계약서 없이 이용하지만 사건이 일어나면 아이의 태도를 문제삼고 아이들의 부주의라고 매도하는 사업주들.. 그들의 무책임 속에 아이들이 죽어간다.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군의 죽음에는 외주화가 있었고 2인1조의 안전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고 태안화력발전소에서의 23세의 김용균도 그 위험한 장비 앞에 안전 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채 목숨을 잃어야 했다.
돈이 많이 투입되는 안전에 관한 부분은 외주화로 돌려버리고 편한 사무직 정규직은 있는 자들이 독식하는 그 시스템에서 위험한 외주화의 자리는 현장실습생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현 문재인 대통령까지 이 끝나지 않는 악순환 속에서 이들의 이름을 건 법안이 제정되지만 여전히 변한 건 없는 사회.. 현 정권마저 주변의 압박 속에 정책은 진보는 커녕 후퇴해만 간다.
이 막막한 현실 속에 아직도 고 김용균군의 어머니는 거리에 나와서 온전한 법 개정을 외치며 더 이상 이런 사고가 없어야 한다고 외치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안전을 위한 바램은 기득권들에 의해 막연하기만 하다.
저자 또한 이 현실 앞에 대안을 마련해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가 그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일 때, 음지에 있던 그들을 양지로 끌어낼 때 조그마한 변화라도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일하러 가는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세상은 과연 정상인가?
바로 이 세상 끝에 열여덟 우리 아이들이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