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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ㅣ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평점 :

미투운동이 한참이었을 때 직장 여성들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전자는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참았을까?"라며 피해자를 옹호하는 직원도 있었고 후자는 "지금이 어떤 사횐데 정말 말할 창구가 없었을까?"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미투 운동, 탈코르셋 등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면서도 페미니즘의 행렬에 동참하면서도 온전히 동의하지 못하는 데서 느끼는 불편함 등이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윤이형 작가의 소설 《붕대 감기》는 여성의 우정을 다룬 소설로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처럼 한 인물의 서사가 끝나면 그 서사의 주변인물이 다른 서사의 주인공으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모든 여성이 주인공이다. 먼저 미용실 실장인 혜미가 8개월 전 마지막 방문을 끝내고 방문하지 않는 여성 고객을 생각하며 시작된다. 매번 올 때마다 자신이 가지고 온 책을 읽던 그 고객에게 책을 선물한 후 방문이 뚝 끊겨버린 사실을 생각하며 혜미는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팀장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함몰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건만 갑작스런 아이의 사고로 8개월을 병상에서 간호하는 은정은 회사도 휴직하고 아이의 병간호에 지칠대로 지쳐있다. 아이의 입원이 장기전으로 흐름에 따라 남편과의 사이도 소원해지고 시댁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은정은 이방인처럼 또는 죄인처럼 혼자서 모든 상황을 묵묵히 감내한다. 오랜만에 집에 들러 무조건 걷던 곳 미용실에서 그녀는 미용실 앞에 비친 거울을 보며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소설은 그렇게 헤어 디자이너인 혜미가 은정을 생각함으로 은정에게 바톤을 넘겨주고 은정이 그 바톤을 이어 받아 미용실에서 자신의 머리를 잘라주며 이야기를 들어주던 또 다른 디자이너 지현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각각의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 소설 속의 인물들은 여성이면서 자신의 위치에 따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만큼 그 모든 것을 뛰어넘고 우정이 지속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가령 불법 촬영 피해자였던 친구의 영향으로 페미니즘에 동의하고 탈코르셋도 찬성하지만 사람들의 스타일을 빛내주는 자신의 직업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질까 두려워 불편함을 느끼는 지현,
전업맘이자 방과후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진경과 출판기획자이자 비혼여성인 진경의 친구 세연,
교수의 성추행을 고발했지만 윗세대들을 원망하지 않는 채이와 이 사태에 침묵으로 일관해 버리는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하는 후배 형은 등등..
한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그들의 삶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에 이들의 우정의 틈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서로의 차이를 느끼면서도 더 불편해질까 두려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속에 과연 우정은 지속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고민 속에 저자는 채이와 형은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진경과 세현의 이야기 속에 한 가지를 제시해준다.
서로 가려는 방향이 전혀 다른데,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닌데,
억지로 함께 가자면서 차이를 뭉개버리는 게 옳아?
하지만 만나서 얘기하지 않으면 영원히 평행선이잖아.
이해하고 싶었어.
너의 그 단호함을, 너의 편협함까지도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 또한 자신의 생각이 다르기에 상처받을까봐 그 차이를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며 조심스러워한다. 하지만 진경이 자신과 다른 세연의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듯이, 형은과 채이가 서로의 차이를 두고 불꽃튀는 논쟁을 벌이는 모든 것들이 다양성을 인정하며 그 속에 서로의 모습을 온전히 보낼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이 하나가 되어 큰 우리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지난 여름 열렸던 페미니스트이자 소설가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내한강연회가 떠올랐다.
그 곳에서 저자는 최근 한국에서 탈코르셋 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들으며 답한 작가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탈코르셋 운동을 응원합니다. 다만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지 아니하는 다른 여성들을 절대 비난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다양성이 결여된 페미니즘은 없으며 이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다름을 걱정하지 말자. 우리는 나와 타인이 다르다는 인정 속에 서로의 관점을 나누면 된다.
연대는 한 마음이 아니다. 연대는 우리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더 큰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