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머리 앤 특서 청소년문학 10
고정욱 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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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오빠와 여동생이 있다. 큰딸인 나를 낳은 후 엄마가 동생을 임신하셨을 때 아빠는 내심 아들을 원하셨다고 한다. 그당시 초음파가 없던 시절, 성별구분은 어려웠고 아들이 있음에도 또 다른 아들을 기대하셨던 아빠는 딸이라는 말을 듣고 눈물지으셨다고 한다. 그 때의 이야기를 부모님은 우스개소리로 말씀하시지만 여동생에게는 남녀차별하지 말라며 큰 소리로 외치곤 했다.

『빡빡머리 앤』은 청소년들의 시각에서 보여지는 이 사회 속의 '불균형한 성평등'에 대하여 여섯 명의 작가들이 쓴 청소년문학 단편집이다.

그간 시중에 젠더, 또는 남녀차별 등이 성인의 시각에서 그려졌다면 이 『빡빡머리 앤』의 여섯 편의 단편들은 청소년들, 학교 그리고 어른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서 주로 그려진다.

여섯 명의 앤들은 아직 부모의 보호 아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주변의 차별을 감당해야 한다.

축구에 유능한 자질이 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시합을 거부당했던 조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이면서 비난의 화살을 받고 평생 멍에를 지고 살아가다 그 무게에 눌러 쓰러져간 언니,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한 대리용으로 자신의 희망을 억누를 것을 강요받는 해미,

성추행을 당하고 주변에 침묵을 강요받는 현진과 천경

존경하는 아버지가 여고생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인 사실에 직면한 윤아

이 책 속에 그려지는 앤들은 유난히 여성에게 전해져 오는 억압에 의해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다. 성인인 여성들이 주로 겪는 차별이 있다면 청소년들에게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지는 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

진로를 선택하는 것조차 '여자 주제에' '여자는 힘이 약해서 안 돼'라며 시작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그들의 희망과 생각을 차단해버린다. 모두 다 너희들을 위한 것이라는 흔해 빠진 변명 속에서..

조앤 또한 축구의 희망이 차단되었고 요리를 좋아하는 해미 또한 요리는 하찮은 것이라 간주하는 부모의 생각 아래 자신의 꿈을 발설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언니가 죽었다》의 살인과 다름없는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이지만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삼고 피해자에게 손가락질로 인해 동네에서 쫓겨다니시피한 언니, 그리고 그 족쇄를 끝내 벗어내지 못했던 언니의 일생이 자신에게 또 다시 족쇄가 되어버린 엄마를 향해 내뱉는 딸 주연이 엄마에게 던진 한 마디는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이 사회에 묵직함을 남긴다.


말하지 않고 묻어두어서 이모 인생이 나아진 게 뭐 있어?


침묵이 오히려 이모의 인생을 진흙 속에 내던져졌다.

한 때 미투운동이 한참이었을 때, 미투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그 때 당시 침묵하다가 왜 이제서야 고발하냐는 식으로 비난하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기득권의 시각으로 본 그들은 사회적으로 불리한 약자의 입장, "을"의 입장에서 볼 수 없는 그들의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침묵하라는 사회의 암묵적인 요구에 순응했지만 그 침묵이 그들을 구원해 주지 못했기에 이제 살려고 목소리를 높여 외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임을 기득권은 알지 못했다.

단편 《마카롱 굽는 시간》에서 아들만을 선호하는 시어머니에 반발해 큰딸 준성을 성공시키려 하지만 큰 딸 준성을 명문대 이과에 진학하려는 어머니의 욕심 또한 잠재되어있는 남녀차별의 한 모습임을 준성의 시각에서 보여준다.

시대에 의해 억눌린 자신의 삶을 자녀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심리로 인해 자녀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이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했던 모순이 낳은 하나의 부작용이었다.


다행이 이 책 속에 그려지는 앤들이 자신의 굴레를 깨고 자신만의 날개를 펴고 비상하기로 결심하면서 각 소설들은 끝을 맺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결심이 마침표가 아닌 또 하나의 시작임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는 또 다른 차별과 편견이 있을 것이고 성장해 갈수록 더욱 더 큰 공격이 강해질 것이다.

이 시대의 많은 앤들이 더 활짝 날아오를 수 있도록 하는 건 결국 어른인 우리의 역할인 것 같다.

우리와 같은,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억압이 그들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어른인 우리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한참 자라나고 있는 내 딸들에게도 여성이라는 이름보다 그저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로 대접받길 자라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의 많은 앤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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