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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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대통령이 10억달러에 위안부 합의를 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난 후 내가 처음 들었던 생각은 "자기가 뭔데 합의를 하지?" "자기가 피해자도 아니고 피해자가 용서를 안 했는데 왜 제 3자가 용서를 한다는 거지?"였다.

피해자가 제외된 합의, 피해자가 제외된 제 3자가 용서하기로, 끝내자고 마음 먹는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위안부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많이 남아 있다. 5.18 민주혁명, 4.3 제주사건 등등 우리에게 많은 과제로 남겨져 있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에 있던 저자 시몬 바젠탈이 죽음을 앞둔 독일군 병사의 용서를 뿌리치고 돌아선 저자가 용서의 자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책이다.

본래 이 책은 자신의 경험을 [해바라기]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후 용서에 대해 수많은 인사들이 그에게 보낸 답장이 함께 추가되어 실린 개정판이다.

건축가였던 시몬 비젠탈이 전쟁으로 인해 미래를 저당잡히고 매일 죽음과 직면해야 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그려진다. 생각도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SS대원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기쁜척 행군을 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살아간다. 죽음이 일상화된 사회..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삶 속에서 저자는 임시병동으로 쓰이는 학교에서 은밀하게 죽음을 앞둔 독일군 병사의 고백을 받게 된다.

평화롭던 어린 시절부터 전쟁 후 유대인 몰살 행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독일군 병사의 애원에 저자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 자리르 나온다. 진심으로 참회하는 그에게 용서해 주지 못한 저자는 전쟁 후 그의 집을 방문하여 어머니를 뵈면서도 끝내 용서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하며 그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이 질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보내온다.보스니아 내전 피해자, 가톨릭 사제, 달라이 라마, 작가, 유대교 신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답변을 다룬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의 답변은 결국 그 피해자만이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수많은 답변을 읽으면서 나는 영화 '밀양'을 떠올렸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을 자신도 용서하지 않았는데 주님에게 용서를 받았다며 평안함을 느끼는 범인의 모습에 분노하는 전도연의 모습이 그려진다.

피해자가 우선시 되지 않는 일방적인 용서가 피해자에게 더 큰 가해로 다가올 수 있음은 영화 '밀양' 뿐만 아니라 똑같은 수용소 동료들의 입장을 통해서도 대변된다.

누군가가 자네에게 저지른 짓에 관한 한, 자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용서하고 잊어버려도 되지.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문제니까 말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자네의 양심으로 무마하려는 것은 오히려 끔찍한 죄가 될 수 있을 거야.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에서 죽은 사람들이 자네에게 와서 이렇게 묻지 않겠나?

'당신이 도대체 무슨 권리로 우리를 죽인 자를 용서했단 말인가?'


이 책의 수많은 사람들의 글 중 훌륭한 글도 많지만 나는 실제 피해자였던 유대인 동료들의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용서할 것을 강요하지 못하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이제 그만 하라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의 조롱도, 뻔뻔하게 시내를 휘젓는 전두환을 보면서 우리가 피해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함께 해 주는 것 뿐이다.

그 상황에 있지 않는 우리들에게는 가만히 그들을 지켜봐주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의 판단을 그들에게 강요하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를 유대인 동료가 해 준 용서에 대한 대화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 사법부들 또한 피해자로부터 시작하여 용서받을 자격을 주어야 하는지 심판해야 한다.

이 책이 개정판이 아닌 초판인 [해바라기]만으로 읽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책이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용서 받을 자격, 용서할 자격은 누구에게 아닌 피해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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