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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 제주4.3, 당신에게 건네는 일흔한 번째의 봄
허영선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4월
평점 :

벚꽃, 개나리 살구꽃 등 모든 꽃들이 꽃망울을 드러내며 향기를 뿜어내는 4월이다.
하지만 이 봄의 향기가 기쁨과 설렘보다는 아픔과 고통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공포와 비명 속에 바다 속으로 사라진 아이들을 마음에 품는 세월호 유가족들,
그리고 국가 공권력에 의해 빨갱이로 낙인 찍히며 한 순간에 폭도로 내몰리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던 제주 4.3 사건의 유족들.. 벌써 4.3사건을 맞은 지 71주년이 되었고 세월호는 5주기를 맞았지만 그들의 아픔과 상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국 관광의 중심지 제주도, 아름다운 바다와 유채꽃이 만발하며 사계절 모두 관광객으로 들끊는 이 제주도에 이 아픈 역사의 현장을 찾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온갖 테마파크와 바다를 둘러보지만 수많은 관광객들 중 제주도에 도착해 처음 밟는 제주공항에서부터 4.3사건의 희생자들의 유골과 피눈물이 숨어 있다는 것을 과연 얼마나 알까?
전혀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을 살았습니까.
그렇게 살았던 적 있습니까.
그럼에도, 다시 봄날입니다. 묻혔던 진실의 봄이 왔고 봄은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제주 출생의 시인이자 제주 4.3연구소 소장이신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겠지만>의 저자 허영선씨는 이 아름다운 봄이지만 봄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는 4.3유가족들의 슬픔을 대비하여 보여준다.
고사리를 따러 간 자신을 마중나온 아버지가 경찰에 의해 한 순간에 목숨을 잃은 후 평생 고사리를 먹지 않은 현 할머니부터 양하밭 양하 무더기에서 경찰에 잡혀 피범벅이 된 딸을 보며 평새 양하를 입에 대지 않은 어머니 등 사는 것마저 힘겨운 그들에게는 매일 매일이 겨울이였다.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봄. 하지만 저자는 다시 봄은 온다고 말한다. 이 4.3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행방불명된 자들의 시신이 찾아지고 억울함이 해소되는 날. 그 진실의 봄을 기다리며 견디고 있다.
슬픔을 위로할 수 잇는 건 슬픔이라고 말한다.
슬픔을 겪어 본 자들이 슬픔을 겪고 있는 자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
우리 슬픈 현대사 중 가장 오랜 71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제주 4.3의 유가족들은 자신들과 같이 국가 공권력에 목숨을 잃은 광주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국가로부터 제대로 구조도 받지 못하고 죽어야만 했던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한다.
이 모든 사건들이 국가의 공권력에 의한 야만으로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잊으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그 아픔을 알기에 70 넘은 4.3 사건의 희생자들이 그보다 훨씬 젊은 광주를 위로하며 진실은 더딜지라도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라고 위로한다.
그 오랜 슬픔의 역사. 제주 4.3사건의 역사는 그래서 꼭 밝혀져야 한다. 그 일흔의 4.3사건의 진실이 드러나야 더 어린 광주 5.18 민주항쟁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힘을 낼 수 있다.
이 진실이 밝혀질 때 우리의 민주주의와 평화가 온전히 시작될 수 있다. 반성과 청산 없는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된다. 그 슬픈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청산은 4.3사건이 바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일흔 살 먹은 제주 4.3 역시 진행형이다. 아직도 입을 닫은 대목이 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젊은 광주는 어찌 마를 것인가.
분명한 것은 이렇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봄. 이 아름다운 봄의 향기를 우리 모두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아직도 겨울처럼 느껴지는 4.3사건의 희생자들에게도 온전한 봄이 느껴져야 한다. 비록 사는 것이 고통스럽고 살아 있는 것 조차도 죄인처럼 느껴지겠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아야 희망이다라고 한 저자의 글처럼 진실이 언젠가는 꼭 밝혀질 때까지 결국 잊지 말고 기억해야 희망을 맞을 수 있다.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봄조차도 없는 사람들. 가장 아름다워야 할 봄날에 가슴을 부여잡고 세상을 떠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평생 트라우마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왜 고통과 부끄러움은 피해자만이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 이제 그들의 눈물을 씻겨줘야 한다.
제주 4.3유가족들이 "이젠 울지마라 광주야, 살다보면 살 수 있다, 울지 말아요 광주여!"라며 위로를 한 것 처럼 우리도 "울지 마세요 제주여! 당신들이 잃어버린 봄을 꼭 찾아드릴게요. 봄은 꼭 찾아옵니다" 라며 그들을 위로할 날이 속히 오도록 해야 한다. 잊지 말자. 포기하지 말자. 우리의 긴 기다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