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몰랐던 시절동화나 그림책은 단순히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래서 주로 소설,에세이 또는 인문서등만을 주로 읽던 내게 동화가 다 큰 성인인 나를 이렇게 엉엉
울리리라고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마당을 나온 암탉》은 나를 엉엉 울게 만들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통해 자신과 다른 청둥오리를 품으며 그 오리의 엄마가 되어주는 암탉 잎싹의
모성애와 희생을 사람이 아닌 암탉으로 써낸 동화는 내게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다. 모성애와 입양 등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황선미 작가님의 글의
원동력이 알고 싶었고 에세이 「익숙한 길의 왼쪽」는 내게 당연한 선택이었다.
옴망눈,엄마에게 혼나 피하지 못해 구부러진 새끼 손가락, 어렸을 때부터 장녀로서 짊어져야 했던 책임감
등..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밝고 동심에 가득 찬 어린 시절이 아닌 엄마에게 혼나고,
자신의 아픈 손가락들을 바라본다.
애정까지 덧붙여 받아들인 '나의 옴망눈'은 옴팡눈이 아니었다.
짓궃은 별명일망정 야무지고 암팡지고 빈틈없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믿었다.
오십년 넘게 그렇게 믿었다.
오십년간 내 식대로 받아들이고 믿고 안으로 삭여 가능해진
균형이다.
어렸을 때부터 삼촌은 작가에게 "옴망눈"이라는 별명을 즐겨 불렀다. 그리고 저자는 옴망눈이 야무지고
암팡지고 빈틈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믿어왔다. 비록 그 뜻이 매서운 눈 독사를 연상시킴에도 오십 년간 자신이 믿은 대로 받아들여왔다.
저자의 책 곳곳에는 자신의 신체의 약점을 드러내는 부분이 많다. 구부러진 새끼 손가락, 못난이 손톱,
화상으로 생긴 발등의 자국 등. 여자인 저자에게는 볼 때마다 상처이고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삼촌의 외모를 비하하는 듯한 별명에도 저자는 자신의 해석대로 별명을 믿어나간다.
암팡지고 야무지다라는 뜻이라고.. 과연 누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자기 해석이 어쩜
자기의 외모를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는데 필요한 방법이였을 것이다.
나 역시 고3까지 보름달이라 놀림을 받은 기억이 있다. 친구들은 보름달을 보며 왜 하늘에 떠 있냐며
지상으로 내려오라고 놀리곤 했다.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내게 다른 한 친구는 "보름달이 뭐가 어때서? 다들 좋아하는 달이고 싫어하는 사람이
없잖아?" 라고 말해주는 순간 나는 그 보름달 별명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 역시 자신의 약점 모든 것을 감추기보다 의미를 부여해주며 오십년간 지켜올 수 있었다.
나의 깊고도 아픈 인자.
우리는 엄마의 줄기 하나였다.
아버지의 한 조각이었다.
저자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이 그토록 닮기 싫어하던 엄마의 모습이 자신 안에 있음을 싫어한다.
"너는 점점 엄마 목소리를 내는 구나." , "장모님을 닮아가."라는 주변의 말에 애써 부인하고
싶지만 결국 저자는 자신 역시 피할 수 없는 부모님의 한 줄기임을 고백한다.
나 자신으로 살고자 하지만 우리가 완전히 부모님과 동떨어져 자신을 생각할 수 없음을 저자는 나이가
들어가며 인정하게 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 줄기를 인정하면서도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고독한 몸부림과 외로움을 저자는 아래와 같이
고백한다.
엄마,
왜 나를 떠나지 않아?
아직도 내게 요구할 게
있나?
그래요. 난 엄마를 털어내고자 부단히 애쓸 거야. 엄마처럼 살지 않아.
나는 끝내 나이고
싶어
나 역시 부모님에게서 닮고 싶지 않은 모습들이 내 모습에 비칠 때 진저리를 치곤 한다. 그 모습 속에
우리는 좌절감을 느끼고 어쩔 수 없는 건가라는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그 인정 위에 우리는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우리는 끝까지 싸워나가야 한다는 걸 저자는 잘 알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주는 두려움은 온몸의 감각을 꺠울 수밖에 없다.
낯선 길과 타인에 대한 경계심은 내가 어린애처럼 세상을 보고 작은 것도 기쁘게 관찰하도록 해 주었다.
늘 다니던 익숙한 길의 왼쪽에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왜 나는 한가지 길밖에 몰랐을까.
익숙하고 편리한 게 전부가 아닌 줄 그때 이미 알았으면서 나의 오른쪽이 무너지고 있는 줄은 이렇게
몰랐다니.
이제부터는 왼쪽의 삶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겠다.
저자는 목 디스크로 인해 오른쪽 어꺠 및 손 등의 통증을 호소한다. 고통을 줄여보고자 자신에게 익숙한
오른쪽 근육 대신 왼쪽 손과 왼쪽 근육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불편함과 어색함 속에 스톡홀름에 머물렀던 경험을 소환해낸다. 익숙한 길
대신 왼쪽 낯선 길로 선택하여 바라본 주위의 풍경. 그리고 그 풍경이 주던 감동을 저자는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 낯선 왼쪽 삶을 살펴보기로
다짐한다.
나에게는 이 글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아닌 새로움도 있지만 내게는 저자가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보지
못하는 주변의 이웃들과 도움을 말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미혼모, 입양, 모성애등 소외된 자들을 향해 글을 써 온 저자에게 이 왼쪽은
바로 우리의 소외된 그 무엇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저자는 자신이 자신으로 설 수 있도록 글쓰기를 시작했고 이 에세이가 그 기록이라고 말한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 나는 이 글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과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손가락,발, 매서운 독사같은 눈 등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부모님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이며 인정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자신에게 언제나 돌아올 곳이 있는 집사람 같은 남편, 그리고 저자의 인생 곳곳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나가는 많은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저자가 지금의 자신이 되어 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저자의 글은 읽는 내내 따뜻함과 함께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버텨내왔던 자기와의 싸움을 느낄
수 있었다.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스스로 외로움을 택하기도 하며 자신을 지켜나가는 작가의 글을 보면서 과연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무엇일까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