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관하여 - 비로소 가능한 그 모든 시작들
정여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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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려가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에 괴롭다가도, 뭔가를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기.

어쩌면 예전보다도 훨씬 더 지혜롭고 활기차게,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중년이다.

(24p. 설레고 기특하며 눈부신 시간)

올해 마흔의 문턱에 들어서며 유난히 나이에 민감해지고 한없는 우울감이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켰다.

2-30대의 청년층에서 중년이라는 옷을 새롭게 입기 시작하며 왠지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듯한 어색함에 스스로 위축되곤 했다. 비 온 후의 나뭇잎의 색상이 더욱 또렷이 보이는 것처럼 마흔의 길에 들어서면서 내 자신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생생하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내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이 마흔이라는 나이는 누군가 나에게 내 나이를 물어보면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조심스레 내 나이를 말하곤 했다.

이런 내 마음이 나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것일까. 전에는 삼포, 오포,칠포 시대를 일컫는 2030 세대에 관한 책이 출간 열풍이 한참이더니 이제 마흔을 이야기하는 책들을 많이 보게 된다. 최근 내가 읽은 기시미이치로의 《마흔에게》부터 시작으로 《마흔, 공부법 》 등... 그 중 나와 같이 마흔의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며 마흔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쓴 정여울 작가 의 마흔에관하여 는 작가가 마흔의 길에 새롭게 발견한 인생의 진리들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흔히 마흔을 위기의 세대라고 불린다. 청년층도 아닌 노년층도 아닌 그 중간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세대. 또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며 자조적인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곤 한다.

하지만 작가는 왜 마흔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할까? 어떠한 것을 새롭게 배울 만한 최적의 시기라고 말할까? 이 새로운 마흔에 대한 정의는 작가의 글만이 아니다. 기시미 이치로 또한 《마흔에게》에서 나이든다는 것은 배움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준다고 하였다.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2-30대의 배움은 매우 한정적일 때가 많다. 영어,일본어,컴퓨터 등 온갖 자격증 및 취업을 하기 위한 방편의 공부에 집중하기 쉽다. 그런 목적이 있는 공부는 우리에게 배움의 기쁨을 앗아가기 쉽다. 반면 중년이 시작되는 시기는 자격증 보다는 자신을 위한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피아노, 기타, 마라톤, 글쓰기 등 나만을 위한 공부를 아무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해 준다.

회사의 동료 중 나와 같이 마흔의 길을 넘어선 동료, 또는 상사들의 배움을 보면 골프 또는 외국어 공부하는 행위에 전혀 부담감 없이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닐까.

'불편함'보다는 '옳지 않음'이 더 무서운 것이다. 그 정도의 어색함은 견딜 수 있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강해지고 대담해졌기에. 나를 싫어해도 괜찮다. 진심으로, 개의치 않는다.

남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얻지 못하는 것이 훨씬 무서운 일임을 뼈저리게 실감하기 때문이다.

(56p. 피스메이커를 졸업하며)

마흔, 진정한 나 자신으로 설 수 있는 시간이라고 작가는 정의한다. 마음이 불편해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참고 피스메이커로 살아가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둥,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둥 핑계를 대며 나 자신의 의견도 말하기 조심스럽던 2-30대를 지나 마흔이야말로 나의 목소리를 내 가며 진정한 나의 목소리를 찾아갈 수 있는 나이라고 말한다. 2-30대는 자신의 부족함과 컴플렉스 모두를 바꾸기에 바빴다. 나 자신의 입장보다는 다른 사람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 바빴다. 하지만 40대가 들어가면 내 모난 부분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리고 2-30대에 내 의견을 강하게 주장했다면 예의 없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 쉽지만 40대에 들어서면 나의 말과 행동에 무게감이 실린다.

젊으면 어린 것이 버릇없다고 할 수도 있고 노년층이라면 꼰대라거나 고집이 세다고 할 수 있지만 40대는 그야말로 중간에 서서 그 모두를 아우르고 이해할 수 있는 더 깊어진 내 자신이 될 수 있다.

그 무게감을 알기에 자신이 하나의 디딤돌이 되어 남성의 편견에 맞서 싸우는 작가도 그 마흔의 무게를 알고 있기 떄문일 것이다.

마흔의 문턱을 넘어서며,재빨리 요약하고 번개처럼 핵심을 파악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는 일을 멈추었다.

그런 '얼리 어답터'스러운 삶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느림보로 살더라도 대상의 섬세한 디테일을 하나하나 쓰다듬고 관찰하는 삶을 사랑한다.

(166p. 이제는 조금 느리게 걸어도 괜찮아)

작가와 나 모두 마흔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작가가 느낀 마흔의 깨달음이 모두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다.

미혼이며 예술가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작가와 두 아이의 엄마이자 회사와 육아 워킹맘의 삶을 살아가며 가까운 근교로의 여행도 버거운 나와의 마흔이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서로는 자신이 결코 얻어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눈물 흘리는 것도 그리고 우리가 2-30대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과정은 동일할 것이다. 정상을 바라보고 살았던 2-30대의 삶을 지나 이제는 어떻게 조심히 산을 내려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동안 어깨에 잔뜩 힘을 주었던 힘을 빼고 하루 하루의 소중함을 더없이 실감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건 2-30대의 나이가 결코 줄 수 없는 것이니까.

인생을 하나의 축제라고 말하며 축제를 준비하는 자가 아닌 즐기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삶.

진정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도전과 삶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삶.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작가는 매월 「월간 정여울」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책을 출간하고 '감성을 깨우는 글쓰기' 팟캐스트 방송도 진행하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실패보다는 도전하지 않는 삶을 두려워 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더욱 충실할 수 있는 마흔.

작가의 마흔이 부럽다. 작가의 마흔을 바라보며 나의 마흔 또한 새롭게 정의하고 싶다.

"매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나이",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나이"

마흔의 문턱에 서서 나의 버킷리스트를 써내려가며 새롭게 꿈꾸며 도전하는 나의 마흔을 응원하고 싶다.

실패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가 꿈꾸는 더 나은 나, 내가 살아가고 싶은 더 아름다운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225p '욕망의 대체제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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