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예순이 넘은 여성 킬러 조각, 한 때는 업계에서 알아주는 유능한 킬러였지만 그녀 또한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다. 퇴물 취급을 받고 있으며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으며 이 생에 아무런 미련도 없을 것 같은 그녀가 업무 수행 중 다친 상처를 강박사로부터 치료를 받게 되면서 그녀 인생에 소중한 것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한다. 

연민도 미련도 금물인 직업,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말자던 다짐 속에 킬러 일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던 그녀의 교훈이 흔들린다. 예기치 않게 외부 의사 강박사로부터 상처를 치유받게 되고 칼집으로 가득 한 자신의 내부와 심상치 않은 상처를 보았음에도 경찰 신고 대신 눈감아주며 상처를 치료해 준 강박사를 보며 조각은 강박사의 가족들에게 한 걸음 다가가게 된다. 

출산 중 세상을 떠난 부인, 그리고 남겨진 딸 혜니, 시장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강박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들에게서 조각은 사람의 온기를 느낀다. 강박사의 가정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따뜻함을 느끼게 되고 이 점을 이용한 후배 킬러의 음모. 그리고 그 음모로부터 그들을 지키기 위한 격투 등 이 소설은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을 의심할 정도로 그들의 세계를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오늘도 기약할 수 없는 그들이기에 "다녀,온다"라는 인사 또한 쉽지 않고 지켜야 할 것을 만들지 않은 킬러의 세계. 그들이야말로 바로 지금의 순간만을 살아간다.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일 수도 있기에... 
길가에 주워 오랜 시간 함께 한 반려견 무용이 세상을 떠났어도 조각은 슬퍼하지 않는다. 그저 죽음을 받아들이고 동료에게 뒷 일을 부탁할 뿐. 모든 것들이 순간일 뿐이며 사라져 가는 것임을 말한다. 
그러하기에 늙어가고 퇴물이 되어가는 몸이지만 끝까지 조각은 삶을 살아간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을 아쉬워하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빛나는 순간을 살아간다. 



"파과" 흠집 있는 과일이라는 뜻과 16세, 이팔청춘, 즉 청춘의 가장 빛나는 시기라는 전혀 상반된 두 가지의 사전적 의미가  있는 단어에 저자는 왜 60이 넘은 여성 킬러의 이야기에 <파과>라는 제목을 부과했을까? 그건 우리 모두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이 순간이 우리의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는 뜻이리라. 

저자의 또다른 책 <아가미>와 마찬가지로 <파과> 또한 읽는 이에게 많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한 번 읽어서는 이 책의 제목을 음미하기가 어렵다. 씹으면 씹을수록 참 맛을 알게 되는 음식처럼 이 책은 생각할수록 읽을수록 느낌이 다르다. 저자의 문장 또한 신선하여 읽을수록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게 된다.  

<아가미>에서도 아가미를 가진 소년의 이야기와 함께 <파과> 늙은 여성 킬러 등 주변의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사람들을 따뜻하면서도 저자만의 방식으로 탱탱하게 그려나가는 저자의 또 다른 소설들 또한 궁금해지며 나 또한 저자 작품의 마니아 중의 한 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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