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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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세요? 

소설책을 좋아한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주위에서 듣는 말들이 있다. 재테크나 일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책들을 읽으라고 조언한다. 허구의 이야기들이 과연 삶에 유용한 것이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소설을 탐닉하는 나에게 읽을수록 유용성을 강조해주는 책들이 있다. 내 삶의 전환점이 되어준 이야기 마나토 가나에의 <이야기의 끝>이 그랬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 임볼로 음붸의 소설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지난 달 초 읽은 김주혜 작가의 소설 <밤새들의 도시>는 나의 화려하지 않은 현실을 감싸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직감한다. 김혜진 작가의 소설 『오직 그녀의 것』이 또 다른 나의 일과 삶들을 지탱해 줄 것이라고 말이다. 

딱히 좋아할 만한 것도 없이 막연히 아버지의 꿈인 교사로서의 길을 생각하던 홍석주. 그녀는 대학 시절 청강생으로 듣게 된 최민애 작가 겸 교수의 수업을 듣게 된다. 자신의 작품을 합평하는 수업에서 냉정하지만 날카롭게 비평하는 자신의 말에 대해 최민애 교수는 홍석주에게 말을 한다. 

작품을 냉정하게 보라는 건 단점에 집중하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그 작품이 지닌 고유한 지점, 빛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라는 의미이기도 하죠. 좋은 점을 찾는 건 부족한 점을 찾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부족한 부분에서 잠재성을 발견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고요. 


최민애 작가는 분명 창작과를 수강하는 학생, 즉 자신만의 작품을 창작해내는 작가 지망생인 홍석주에게 하는 충고였다. 하지만 이 말을 결국 편집자의 길로 가게 되는 홍석주에게 편집자의 기본을 암시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작품의 빛나는 가능성을 발견해내는 사람. 부족한 점을 고쳐주고 잠재성을 키워주는 직업이 바로 편집자의 일이니 말이다. 

모든 사회 신입생들이 그렇듯 좋아하기보다 생계를 위해서 일을 시작한다. 홍석주 또한 마찬가지였고 의도치 않게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한 그녀가 교열부에서 편집부로 가기 위한 면접을 보며 물은 질문은 바로 '책을 좋아하세요?'였다. 

책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던진 장민재 사수의 말에 표정으로 답한 홍석주. 『오직 그녀의 일』에서는 '좋아한다'는 것이 단지 마음이 좋아한다는 것이 아닌 좋아하기 위해서 수많은 일들을 감당해낼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었음을 전반적으로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때론 양보해야 하고 물류창고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생각이 다른 동료나 상사를 설득해야 할 때가 있고 작가를 설득하기 위해 기나긴 토론을 이어갈 때도 있었다. 일들은 쉽지 않다. 개인만의 작업이 아닌 작가와 편집자, 그 외 다른 여러 관계자 그리고 독자들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 과정은 늘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떄면 새로운 형태로 시련과 고난을 안겨준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세요?'라고 질문했던 장민재 편집자는 홍석주에게 마지막 책을 건네며 말한다.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 속에는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 나갈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책에서 동료 규한보다 먼저 차장으로 승진한 대목이 나온다. 규한은 여행 에세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어 매출에 일조를 한 편집자이다. 하지만 먼저 승진한 건 규한이 아닌 석주였다. 규한은 반발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홍석주는 '책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진심으로 '예'라고 답할 수 있는, 그녀의 일로 증명해내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은 결국 자신의 삶으로까지 이어진다. 늘 남의 이야기를 만들어주느라 원고를 우선시하던 석주. 석주의 개인적인 삶은 늘 작가와 책 뒤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작가의 말에서 감사의 대상에 나오는 한 구절과 책 뒷편에 편집자의 이름으로 존재감을 알기 쉽지 않은 직업이다. 말 그대로 시시하고 평범한 삶. 반복적으로 읽고 만드는 직업. 하지만 그 평범한 하루들이 쌓여 오직 자신만의 것,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 바로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느 원고보다도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건 바로 자신의 인생이자 어느 편집자도 건드릴 수 없는 오직 그녀만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삶의 편집자이다. 최민애 교수가 말했던 부족한 점에서도 가능성을 발견해내는 과정이자 좋아하는 걸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꾸역꾸역 해 나가며 인생을 수정해나가는 한 권의 책의 저자이자 편집자라는 걸 이 책으로 말해준다. 

내 삶의 모토는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겠습니다' 이다.  『오직 그녀의 것』은 내게 좋아한다는 말의 의미를 더 날카롭게 묻는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 나갈 수 있나요?
이 일을 더 좋아하기 위해 부차적인 것들을 감당해낼 수 있나요? 

결국 좋아한다는 말은 더 큰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이라는 걸 김혜진 작가는 말해준다. 

그래서 나는 2026년 내 모토를 그대로 밀고 나간다.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겠습니다. 
좋아하기 위해서 다른 것들도 감당해낼 수 있을 만큼 더 좋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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