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라치아 마리아 델레다 지음, 정란기 옮김 / 본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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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불확실함 속에서 미래를 꿈꾸며 산다. 내 마음에 미래를 그리며 그것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미래의 모습은 그 미래가 현재가 될 때까지 모른다. 하지만 우린 현재에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생각한다. 현재 꿈꾸는 미래와 다가올 미래는 같지 않다.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를 꿈꾼다.



폴은 사제가 되기 위해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소년이었다. 사제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사제가 된 모습을 상상했을 뿐이다. 그의 어머니 역시 그가 사제가 되길 간절히 바랐다. 아들이 사제의 길을 걷는 것은 고아였던 그녀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과도 같았다. 자신이 걸었던 길을 아들이 걷질 않기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이것이 지상의 하느님 나라가 아닌가. 그러자 그 기억에 그는 가슴이 부풀었다. 오, 주여! 저희는 왜 그리도 몽매합니까? 어디서 빛을 찾을까요? 폴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지식은 그 의미를 불완전하게 이해한 책들의 파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폴은 사제가 됐다. 사제는 순결을 지켜야 하며 여성을 멀리해야 한다. 하지만 폴에게 있어서 이를 지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폴은 하나님에게 자신을 바치며, 순결을 약속한다. 하지만, 인간이 쾌락을 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일부러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에겐 사랑하는 여자, 아그네스가 있다. 사랑과 사제로서의 삶 중 그는 고뇌한다. 그토록 바랐던 사제가 됐지만,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여 할 것인가.

어머니는 그가 최근 여러 차례 여인처럼 거울을 들여다보고 손톱을 손질하거나 민머리를 숨기려는 듯 길게 기른 머리를 빗어 넘기는 모습이 기억났다. 그런 다음 그는 향수를 뿌렸고, 향기로운 가루로 양치를 했으며, 눈썹까지 벗어 정리했다.



어머니는 좌절하지 않고 들어서 알아내야 했다. 아니,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속이기 위한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폴과 아그네스만큼이나 어머니는 이에 대해 고뇌한다. 인간이라면 쾌락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는 게 당연하다. 아들이 하나님께 헌신을 약속했지만 자신의 본능을 억제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자신도 아들이 사제가 되길 원했지만, 그가 사랑에 빠진 모습을 보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폴은 일반적인 삶을 살 수 없을까?”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산을 내려온 이후 가장 참기 힘든 일이 바로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녀의 침묵,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흡입력이 대단한 소설이었다. 읽으면서 뒷장이 궁금해지고, 주인공들의 심정이 모두 이해가 갔다.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종교의 교리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규칙이나 교리를 왜 만들까? 그 공동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교리를 만든다. 교리는 그 집단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리가 변동될 수 없는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리를 도와야 할 수단인 교리가 우리를 옭아매도록 방치해둔다. 주인공들 역시 교리를 종교의 목적이라 받아들였을 것이다. 주인공뿐 아니라 현대의 사제들 역시 그렇다. 만약 교리가 지금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변경이 불가피하다면 바꿀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의 얼굴은 고요하고 엄숙했으며,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입은 소리치지 않으려는 듯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는 곧 어머니가 자신은 극복해던 슬픔과 공포에 동일한 충격으로 죽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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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침착하지 못하고 충동적일까? - 여러 가지 사례를 만화로 소개하는 성인 ADHD 안내서
후쿠니시 이사오.후쿠니시 아케미 지음, 이호정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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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는 ‘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의 약자로, 일본에서는 주의 결여· 다동성 장애(주의력 결핍 과입 행동 장애)라고 한다. 다동성(과잉 행동)과 충동성, 주의 결여(주의력 결핍)의 특징을 갖고 있는 발달 장애로 생활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ADHD 증상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뇌 기능의 문제다. 뇌의 전두엽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여러 증세가 나타난다. 전두엽은 뇌의 전방에 위치하고 이 중에 전두전야라 불리는 부분은 사람의 이성과 사고, 정보 정리, 실행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감정과 감각, 의욕 등에도 깊은 관계를 맺는다.

이 전두엽의 기능이 약하면, 생각을 정리하거나 이성적으로 생각하거나, 뇌 전체에서 느끼고 이해한 정보를 정리하고, 선택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이나, 들리는 소리 등 감각으로부터 자극에 영향을 받기 쉽고, 그 결과 진정할 수 없는 상태가 되거나 이성적인 사고를 잘하지 못하거나 집중하기가 어렵게 된다.


학교 현장에 나가보면 반에서 쉽게 ADHD 증상을 가진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주의가 산만할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수업에도 피해를 준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도 ADHD가 많았으나, 용어가 없었던 것뿐이라고 한다. 1학년 때 특수 아동의 수업을 듣기 전에 나 역시 이 사람들과 입장이 같았다. ‘ADHD’라는 이름이 생기니, 이 증상이 두드러져 보이고 장애라는 틀에 아이를 가둔다고 생각했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장애라는 틀에 학생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ADHD’라는 상황을 고려할 수 있게 됐다. 즉,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 그러한 행동을 보이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준다. 아이들의 행동이나 잘못을 모두 아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ADHD라는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ADHD라고 그 특징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스펙트럼 안에서 개인 간의 차이가 있다.





장애는 병이 아니다. 그러므로 치료의 관점에 보면 안 된다. ‘ADHD’ 역시 그렇다. 이 성향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이 책은 ‘ADHD’에 대한 이해부터 ADHD 극복 방법, 극복기 등을 만화로 다루고 있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을 만화로 풀어냄으로써 ‘ADHD’에 대해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다만, 만화책이다 보니 좀 더 깊이감 있는 내용을 원하는 독자들에겐 아쉬울 수 있다.

ADHD인 대부분의 사람은 지능에 문제가 없다. 자폐증 스펙트럼과 같은 다른 뇌 기능의 장애를 병발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ADHD 단독으로는 지능에 큰 영향이 없다.

ADHD는 뇌의 특성이기 때문에, 그것이 변하지는 않는다. 감기가 낫는 것처럼 병의 근본까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방치해두면 안 된다.

ADHD는 우울증, 불안증, 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중독 등의 정신질환을 합병하는 경우가 많은 병이다. ADHD의 뇌 기능 특징도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실패로 인해 비난과 질책을 받은 경험이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인생을 살아온 것도 원인의 한다. ADHD를 방치하면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위험이 커진다.

또한, ADHD에 대해서 아무것도 대처하지 않으면 자각을 하고 있든, 없든 상관없이 주위에도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 때문에 신용을 잃고 일이나 인간관계에 지장을 초래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성인 ADHD를 주로 다루고 있다. 성인 ADHD와 아동의 ADHD의 차이는 없다. 다만 아동은 통제된 상황에 있으므로 그 증상이 두드러질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덜렁대고, 자주 깜빡하고, 하나에 집중하면 이야기를 못 듣고, 맹하고... 그 친구가 ADHD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읽다 보면, 나 역시 성인 ADHD의 성향을 지닌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덜렁대고, 어떤 일을 하면서도 다른 일이 떠오르고, 하나에 빠지면 푹 빠지고, 정리를 못하고, 집중이 힘들 땐 외부와 나를 차단할 무언가가 필요하고... 이 책에서 말하는 성인 ADHD가 내가 아닐까? 그래서 궁금했다. ADHD가 뇌의 기능 문제라면, 뇌 기능 문제없이 ADHD의 증상을 똑같이 보이는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할까? ADHD? 아니면 다른 차원의 장애? 아니면 그냥 사람의 특징? 궁금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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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부 - 철학과 과학으로 풀어 쓴 미래정부 이야기
김광웅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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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정치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정치란 거창한 개념이 아니다. 한 개인이나 집단이 각자가 품은 의사를 전달하고 이를 활용해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치라는 말을 낯설고 멀리 있는 존재로 느껴진다. 국회의원, 지방자치, 정당 등 우리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치부한다. 우리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청원이나 투표에 한정돼 있다고 여길 뿐이다.

나 역시 정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수, 행정기관의 수, 주요 정책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도 모른다. 한국인으로서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왜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걸까? 옛날부터 정치를 논쟁거리로 치부해버리던 생각이 나에게도 주입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린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와 관련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는 나와 우리가 함께 해야 하며 그것은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부른다.

운 좋게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었다. 정치와 행정에 대해 공부하고 싶던 생각들이 막연했는데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많았다. 책의 저자는 김광웅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다. 김대중 정권 때 대통령 직속 중안인사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은 분이다. 처음 책을 봤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방대한 분량이라 놀랐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됐지만 한편으론 정치 문외한에게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니었다. 글이 쉽게 읽혔고 무엇보다 글쓴이가 지닌 지식의 방대함에 놀랐다. 그가 인용하는 학자의 수는 대단했고 자신의 논지를 보강하기 위해 알맞은 학자들의 주장을 갖다 쓴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과거엔 인용되는 학자나 지식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다른 책에서 또 보고, 그 사람들의 책을 찾아 읽으면서 책에서 언급되는 사람들이 나의 관심사가 됐다. 책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책을 풍성하게 해준다. 이 책 역시 그 풍부함 때문에 더욱 재미있고 쉽게 읽혔던 것 같다.

앎이란 자신만의 인식 경계에 스스로를 묶는 짓이다. 그러니 좀 안다고 으스대면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말했던 대로 지식인 중에는 이사야 벌린이 말하듯 거대 담론을 추구하는 고슴도치형이 있고, 호기심이 가득하고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는 여우형도 있다. 어떤 형태든 앎이 힘이 되긴 하지만 신분과 계급이 될 수는 없는데, 우리는 여기에 너무 집착해 스스로를 가두고 일을 저지른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글쓴이가 주장한 논지가 나와 다른 부분이 많았다. 글쓴이가 주장하는 것들이 나에겐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있었고 의문이 들기도 했다. 글쓴이는 규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국가의 규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보장해야 하는데, 오로지 자유만을 강조하다면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위험이 크다. 또한 규제의 완화는 효율성의 측면에서 좋아 보일 수 있지만 다른 요소들을 고려하지 못하는 위험이 크다.

규제에 대해 우리 학교 교육행정학 전공이신 정수영 교수님께 여쭤봤다. 정책을 두 가지 흐름으로 봤을 때 자유와 평등으로 볼 수 있다. 자유는 시장의 논리에 맡겨 시장의 자율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국가는 시장의 기능을 믿으며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평등주의 입장에선 시장은 불완전한 존재로서 실패에 노출돼 있다. 그렇기에 정부는 규제를 통해 시장실패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완전한 평등주의자. 자유주의자는 없다. 또한 이 두 가치를 하나만 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둘 사이에서 어느 것에 초점을 두는지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둘의 논리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우린 그 사이에서 우리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개인적인 사생활이 들춰지면서 망신을 받는 경우는 그것이 잘못일 때가 아닐까? 고위 공무원의 사적인 문제는 어디까지 용인해야 할까?

우리의 인사청문회를 예로 들어보자. 총리나 장관의 인사청문회는 이들이 공직에 취임했을 때 일을 잘할 수 있는지를 검증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직무수행 능력을 검증하는 본령은 제쳐두고 개인적인 사생활을 들춰내 망신을 주기 일쑤다. 그런 제도라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갈등이 많다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갈등은 무슨 의미를 지닐까?

갈등 지수가 세계에서 4번째로 높다는 사실만 봐도 사회 분위기가 얼마나 황폐한가를 어림할 수 있다.

관료는 얼굴이 없다. 표정이 없고 영혼도 없다. 물혼만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관료는 영혼이 없다란 말을 일찍이 베버가 했다. 관료는 자유, 평등, 정의 같은 정신적 가치를 생각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단기적 목적 달성을 위한 계산에만 몰두한다. 머리는 똑똑한데 뜨거운 가슴과 현장을 누비는 다리가 없는 것이 탈이다. 저자가 늘 부르짖는 실천 없이 머리 없다는 말의 뜻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현장을 모르고 사무실에서 서류 쌓기에 바쁠 뿐이다. 말 그래로 책상 관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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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의 비밀 - 나이에 상관없이 악기를 배울 수 있는
개리 마커스 지음, 김혜림 옮김 / 니케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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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음악은 우리 뇌에서 언어보다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한다.

-올리버 색스-

NATURE와 NURTURE 논쟁은 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 둘을 양자택일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에서 인간은 살아간다. 인간 이 둘 사이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그 사이가 어느 지점인지다. 이 논쟁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지난 학기 노경희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언어 습득에 있어서 결정적 시기를 인정한다. 나 역시 언어는 빨리 배울수록 좋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증명되지 않았다. 발음 부문에선 아이들이 습득이 빠를 수 있지만 문법이나 Syntax는 어린이보다 어른들이 더욱 잘 습득한다. 또한 어른들은 추상적인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고, 언어를 체계화하는데 능숙하다.



또한 집안에 오랫동안 갇혀 지내온 아이가 언어 발달이 안 된 점, 다른 언어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NURTURE와 NATURE을 양자택일할 수 없다는 걸 알려준다. 이 책은 음악적 능력에 대한 개리 마커스의 경험과 생각을 담은 글이다. 난 예술 영역에 대해선 유전/재능의 영향이 압도적이라 생각한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항상 부족했고, 노력을 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쉽게 하는 것을 나는 어렵게 한다는 걸 느끼면서 예술은 재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개리 마커스 역시 어렸을 때부터 박자감, 음감이 부족했던 사람이다. 그에게 악기란 먼 존재에 불과했다. 그는 음악적 재능이 음악 실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이 책을 썼다. 정말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부족한 것을 극복하기 위해 도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자신의 부족한 음악적 역량을 과연 보충할 수 있을지. 극복할 수 있을지.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과거엔 상상할 수 없던 일이 벌어졌다. 악기를 배우고 조그만 공연장에서 공연할 수 있는 실력이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며, 왜 어린아이들이 일반적으로 잘 배운다고 여겨지는지 생각할 수 있었다. 그들은 기회비용이 적다. 즉 포기해야 할 것들이 적다. 성인이 돼선 무엇을 배워도 그것에만 집중할 수 없다. 생계를 위해서라도 다른 것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흥미만 있다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것만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타율적인 것에 익숙하다. 성인들은 누군가의 말에 따라 그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익숙하다. 이에 따라 어린이와 성인들의 연습량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내가 피아노에 대해 많은 노력을 투자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남들 보다 못하는데 과연 내가 노력을 했다면 그 벽을 깰 수 없었을까?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다. 재능이 없다고, 재미없다고, 다른 것을 해야 한다고 변명을 하며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작가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한 노력을 내가 했다면 나 역시 그 벽을 깰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음악가들 역시 다 같은 뇌를 가지지도 않았다. 모두 다른 뇌를 지니고 있으며, 악기마다도 음악가의 뇌가 달랐다. 이는 피아노를 친다는 것이 다른 악기 연주 능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피아노를 못 치더라도 다른 악기는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교육에서 우리가 염두에 둘 부분이다. 개별화. 개인, 음악 분야, 악기 모두 다르다. 과거의 음악교육이 하나의 방식, 한 악기, 한 장르에 치우쳐졌다면 이젠 아이들 각각에 맞는 방향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느린 것은 불가능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느린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결과를 모르기에 느린 것이 불가능으로 보일 때가 있다. 교육 현장에서 우린 느린 학습자를 만날 것이다. 이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들이 자신의 능력에 좌절하지 않고, 학습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할 것이다. 교육에선 유전자를 믿는 것보다 환경의 영향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의 유전자를 바꿀 순 없지만 환경은 충분히 바꿀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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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된 불평등 - 첨단 기술은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분석하고, 감시하고, 처벌하는가
버지니아 유뱅크스 지음, 김영선 옮김, 홍기빈 / 북트리거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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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달은 양날의 칼과 같다. 삶의 편의를 높여주고 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지나친 맹신은 인간적인 것을 소홀히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기술이 그림자일 수 있고 빛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기술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다. 기술은 인간의 일을 보조할 뿐 아니라 대체하기까지 한다. 효율성, 가성비, 속도에만 치우친 나머지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소홀히 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는 기술이 완전히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과 사회는 기술의 사각지대를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이 어린 상담원에게 대략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어요. 계속 해당 규정을 인용했죠. 30분 정도 지나서 상담원이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상담원 그러더군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딱 그렇게 말했어요. 내가 그랬죠. 이봐요, 괜찮아요. 난 개별 사회복지사였어요. 난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써 놓은 당신네 규정 설명서를 직접 보고 있어요. 상담원을 울기만 하더군요.

기술이 지금보다 더 발달되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미래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엔 기계가 인간의 모든 일을 대체하기엔 이르다. 분명 효율성은 인간보다 높을 수 있겠지만, 효율성은 완벽함이 아니란 걸 명심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책에서 언급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계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새로운 피해자들을 생산해내는 꼴이 된다. 인간과 기게는 같이 가야 한다. 기계는 인간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지 맹신의 대상이 아니다.
자동화 이전에 협조 불이행은 개별 사회복지사가 적격성 판정 과정에 참여하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소수 민원인에 대해, 최후의 시도로서 이용하는 하나의 처벌이었다. 자동화 이후, 이 말은 어떤 피해가 뒤따르건 상관없이 ‘복지 등록부’를 모두 베는 전기톱이 되었다.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계는 이용돼야 한다. 하지만 책의 사례에선 기술에 인간을 맞추고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는 비상식적인 사태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기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행위에 기계는 보조할 뿐이다.

복지는 자선의 개념이 아니다. 수급자의 자산이다. 일시적인 혜택이 아니라,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다. 누구나 복지를 누릴 수 있다. 또한 누릴 위험에 처해 있다. 복지는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

자동화된 복지 시스템에서 복지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까? 자선, 수혜? 복지는 수급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산인데 자동화된 복지 시스템에서 수혜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내가 준다고 했는데 너희들이 안 등록한 거자!” 이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회가 없는 자유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악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자유가 주어진 것 같지만 할 수 있는 것을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자동화된 복지 시스템은 이와 비슷하다. 과연 수급자 중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 그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경제적 환경, 지식, 기술적 제반 시설이 꾸려 있지 않는 수급자들이 과연 이에 접근할 수 있을까? 정말 정책 입안자들은 복지를 실현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을까?

합리적 차별의 작동에는 계층 혐오나 인종 혐오, 심지어 무의식적 편견이 필요치 않다. 단지 기존의 편견을 못 본 체하기만 하면 된다. 자동화된 의사 결정 도구가 구조적 불평등을 해체하도록 명시화해서 만들어지지 않는 한, 그 속도와 규모는 구조적 불평등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합리적 차별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문제를 인식하지만, 적극적으로 대처할 의지가 없다. 왜? 그들의 상황이 아니니깐! 그들의 고통에 공감 못하니깐! 정책 입안자들은 모든 것이 효율성의 측면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복지는 수급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운영돼야 한다. 정책 입안자들의 입맛에 따른 복지는 진정한 복지가 될 수 없다.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이 만족해야 진정한 복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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