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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 우울증과 번아웃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나에게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지음, 추미란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20년 5월
평점 :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푹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탁해지는 느낌이었다. 먹는 양도 갑자기 확 늘기 시작했다. 5월 한 달간 살이 5kg이 찔 정도로 먹고 또 먹었다. 정말 침대에 누우면 골아 떨어지는 수준이 될 때까지 나를 혹사시켰다. 곧장 잘 수 있을 정도로 눈이 감기기 시작할 때가 나의 하루의 끝이었다. 잠을 잘 때까지는 일은 끊기지 않는 연속이었다.
많은 일들은 한 번에 하다 보니, 정작 내가 해야 할 것들에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일이나 학교 강의 같은 해야 하는 것들이 그 자리를 넘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일을 시작한 나를 탓하면서도 결코 그 일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5월엔 독일어, 스페인어, 교육학 공부, 글쓰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투자하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가 무탈히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다행히 학기가 마무리되면서, 나의 삶도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이번 주 목요일까지만 해도 글쓰기는 사치였다. 따뜻한 햇살 아래서 책을 읽는 것도, 아주 가끔씩만 가능했다. 그런데 이젠 다시 햇살 아래서 책을 읽고, 내가 가진 재료들을 적극 활용해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그토록 원하던 것을 하니 웃음이 끊기질 않는다. 다시 내가 원하는 삶에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기념하며 제일 처음 읽은 책이다. 내가 지난 5월에 겪었던 느낌을 잘 담아낼 거라 생각해 선택했다. 평소에 즐겨 찾는 분야의 책은 아니지만, 벤치에 앉아 자연을 느끼면서 읽기에 편한 책이었다. 또 굳이 모든 내용을 세세히 볼 필요 없이, 내가 읽고 싶은 부분만 가볍게 쓱 넘겨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한 질문이 떠올랐다. 과연 이 책은 언제 읽어야 하는가? 번아웃,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과연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내가 5월에 겪은 고단함보다 훨씬 힘든 심리적 압박을 느끼는 사람들이 과연 이 책을 읽을 여유가 있을까 궁금했다. 또한 이를 극복한 사람들이 이 내용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고통을 느낄 땐, 그 순간이 견디기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고통은 미화된다. 나 역시 5월에 느꼈던 고단함보단, 현재 행복한 것이 나의 삶과 생각에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번아웃의 전조증상이 나의 5월 모습 같은데, 이를 읽는 6월의 나에겐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이 이 책을 선택할지 궁금하다.
우울증과 번아웃은 아직도 나에겐 낯선 병이다. 내 주변에 이를 겪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건강 정보 모음 글 느낌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의약품에 대한 비판은 새로운 정보였다. 의약품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 쉽지 않은데, 이 글을 통해 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이 책은 절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읽을 필요가 없다. 즉 필요하지 않으면 읽지 않아도 되는 책 같다. 하지만 필요성을 느끼는 독자라면, 자신의 상태에 맞게 글을 찾아 읽으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