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동화된 불평등 - 첨단 기술은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분석하고, 감시하고, 처벌하는가
버지니아 유뱅크스 지음, 김영선 옮김, 홍기빈 / 북트리거 / 2018년 12월
평점 :
기술의 발달은 양날의 칼과 같다. 삶의 편의를 높여주고 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지나친 맹신은 인간적인 것을 소홀히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기술이 그림자일 수 있고 빛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기술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다. 기술은 인간의 일을 보조할 뿐 아니라 대체하기까지 한다. 효율성, 가성비, 속도에만 치우친 나머지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소홀히 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는 기술이 완전히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과 사회는 기술의 사각지대를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이 어린 상담원에게 대략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어요. 계속 해당 규정을 인용했죠. 30분 정도 지나서 상담원이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상담원 그러더군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딱 그렇게 말했어요. 내가 그랬죠. 이봐요, 괜찮아요. 난 개별 사회복지사였어요. 난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써 놓은 당신네 규정 설명서를 직접 보고 있어요. 상담원을 울기만 하더군요.
기술이 지금보다 더 발달되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미래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엔 기계가 인간의 모든 일을 대체하기엔 이르다. 분명 효율성은 인간보다 높을 수 있겠지만, 효율성은 완벽함이 아니란 걸 명심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책에서 언급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계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새로운 피해자들을 생산해내는 꼴이 된다. 인간과 기게는 같이 가야 한다. 기계는 인간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지 맹신의 대상이 아니다.
자동화 이전에 협조 불이행은 개별 사회복지사가 적격성 판정 과정에 참여하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소수 민원인에 대해, 최후의 시도로서 이용하는 하나의 처벌이었다. 자동화 이후, 이 말은 어떤 피해가 뒤따르건 상관없이 ‘복지 등록부’를 모두 베는 전기톱이 되었다.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계는 이용돼야 한다. 하지만 책의 사례에선 기술에 인간을 맞추고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는 비상식적인 사태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기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행위에 기계는 보조할 뿐이다.
복지는 자선의 개념이 아니다. 수급자의 자산이다. 일시적인 혜택이 아니라,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다. 누구나 복지를 누릴 수 있다. 또한 누릴 위험에 처해 있다. 복지는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
자동화된 복지 시스템에서 복지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까? 자선, 수혜? 복지는 수급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산인데 자동화된 복지 시스템에서 수혜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내가 준다고 했는데 너희들이 안 등록한 거자!” 이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회가 없는 자유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악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자유가 주어진 것 같지만 할 수 있는 것을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자동화된 복지 시스템은 이와 비슷하다. 과연 수급자 중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 그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경제적 환경, 지식, 기술적 제반 시설이 꾸려 있지 않는 수급자들이 과연 이에 접근할 수 있을까? 정말 정책 입안자들은 복지를 실현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을까?
합리적 차별의 작동에는 계층 혐오나 인종 혐오, 심지어 무의식적 편견이 필요치 않다. 단지 기존의 편견을 못 본 체하기만 하면 된다. 자동화된 의사 결정 도구가 구조적 불평등을 해체하도록 명시화해서 만들어지지 않는 한, 그 속도와 규모는 구조적 불평등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합리적 차별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문제를 인식하지만, 적극적으로 대처할 의지가 없다. 왜? 그들의 상황이 아니니깐! 그들의 고통에 공감 못하니깐! 정책 입안자들은 모든 것이 효율성의 측면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복지는 수급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운영돼야 한다. 정책 입안자들의 입맛에 따른 복지는 진정한 복지가 될 수 없다.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이 만족해야 진정한 복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