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클래식 애호가, 내 이름은 페르마타 일상의 스펙트럼 6
신동욱 지음 / 산지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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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기가 클래식에 대한 책을 냈다. 이 친구는 내 주변에서 클래식 음악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대학생활 동안 그를 지켜보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선 '나는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절로 뿜어 나온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그가 클래식 공연을 위해 유럽과 미국으로 서슴없이 떠나는 걸 보며 그가 클래식에 대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를 학보에 녹여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기사를 완성시켰다. 무언가 애정과 열정을 갖고 꾸준히 해나가는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한편으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클래식을 자주 듣지 않지만, 내가 클래식에 대한 장벽을 낮춘 것도 그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클래식을 재미없는 음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음악 장르에 매료된 사람이 곁에 있으니 의식적으로 이것의 매력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과거엔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그냥 흘려버렸다면, 지금은 좀 더 집중하며 한 음 한 음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공연장을 찾는 적극적인 청자는 아니지만, 가끔씩 클래식 음악이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어쩌다 보니 클래식 애호가, 내 이름은 페르마타>는 음악 애호가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다. 음악 애호가 신동욱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음악을 대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진실성(Authenticity)'엔 냄새가 난다.'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이 딱 이 말과 어울리는 책이었다. 내가 클래식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그가 이 음악에 얼마나 진심인지가 느껴졌다. '나는 클래식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반복하지 않아도 갖가지 모양으로 그는 이 말을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진심은 나로 하여금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도록 했다. 그가 소개한 클래식 음악들을 들으며 이 책을 행복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작가가 글을 행복하게 쓴 것이 느껴진다고 할까? 작가가 독자들에게 할 말이 많다고 해야 할까?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가 기대가 됐고, 그 이야기들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제목 짓기가 예술이다. 각 글마다 제목을 붙였는데, 이 기발한 제목들은 글을 안 읽을 수 없게 만든다. ' 악보를 사수하라, 제와피와 지아코 전에, 포도 향 차이콥스키, 그 티켓, 다시 주세요!' 등의 제목은 그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를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읽으면 제목의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 독서의 쏠쏠한 재미였다.



나는 에세이를 즐겨 읽지 않는다. 작가에 공감하지 못한 채 독서를 끝낸 경험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에세이의 매력에 대해 다시 생각한 독서였다. 음악도 자주 안 듣는 내가 어떻게 이 책에 공감을 하게 된 걸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은 억지로 독자에게 말을 걸으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껏 경험한 수많은 에세이엔 독자에게 교훈이나 깨달음을 의도적으로 주려는 글들이 많았다. 작가들은 자신의 경험에 곁들여 독자에게 수많은 생각들을 보내고 있었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말을 걸려고 쓴 글이기 때문에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지는 것일 수 있지만, 나에게 이러한 작위성은 전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더욱이 이러한 글들은 '작가는 독자와 달라. 나의 생각과 감정이 특별하지 않니?'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누군가의 일기장 같다고 할까? 일기는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제멋대로 쓴 글이다. 자신 외의 독자를 상정할 필요 없고, 일부러 멋스럽게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의도는 더더욱 없다. 그냥 작가가 느낀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정도만 쓰면 된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이 작가의 단백한 문체와 만나면서 역설적으로 그에게 더욱 공감하도록 이끈 것 같다.



올해 또 다른 책이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책과 달리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줄지 무척 궁금하다. 지금처럼 글을 쓰면 분명히 많은 독자가 사랑하는 작가가 될 것이라 생각하다. 그가 더 나은 책을 쓸 수 있도록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적어보려 한다. 우선 '주석'이 더욱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세이에 주석이 웬 말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음악 에세이의 특성상 다양한 음악적 표현 및 음악가가 자주 등장한다. 음악에 대해 많은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들은 별 어려움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들은 작가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내가 몇몇 구절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느꼈다. '악상, 스케르초, 미뉴에트, 형식 예술, 무곡 악장' 등과 같은 용어에 대한 사전 지식이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에 등장하는 '엘 시스테마'가 무엇인지 모르면,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엘 시스테마를 유튜브에 찾아보고 나서야 이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어떤 수준으로 독자를 설정한지 모르겠지만,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이러한 용어들이 독서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몇몇의 이야기들이 좀 더 구체적이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난날들에 대한 기억이나 생각, 감상 등을 추가하면 이야기들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나아질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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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책 모임 잘하는 법 - 운영자와 참여자를 위한 비대면 모임 노하우
김민영 외 지음 / 북바이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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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우리 삶에 영향을 주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 2020년 창궐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삶의 방식을 엄청나게 변화시켰다. 접촉을 최소화한다는 '사회적 거리 두기'는 우리의 일상이 됐다. 이전에는 대면 활동이 당연했던 것들이 점점 비대면 활동으로 전환됐다. 처음엔 비대면 활동이 낯설었지만, 현재는 수업, 회의, 업무, 취미 활동할 것 없이 대부분의 활동이 비대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대면 활동을 통해 편리성과 효율성을 만끽하고 있다. 독서모임 역시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내가 참여하는 서울교대 독서 동아리 역시 모임 방식을 바꿔야 했다. 사실 온라인 활동에 대한 거부감과 대면 활동의 익숙함 때문에 작년 1학기는 코로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직접 만나서 동아리를 진행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독서 모임 방식을 의도치 않게 온라인으로 바꾸게 됐다.

온라인 독서 모임을 1년 하면서, '온라인'에 품고 있던 나의 걱정과 의심이 기우라는 걸 느끼고 있다. 생각보다 온라인 독서 모임이 감정이 엄청나게 많다. 특히 온라인 독서 모임은 구성원이 지닌 공간적 한계를 극복시켜주었다. 나 역시도 옥천에 살지만 대부분 서울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과 독서 모임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온라인 독서 모임 덕분이다. 독서 모임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독서 모임을 하지 못하고 옥천에서 고립된 생활을 했을 것이다. 서울에 살면서는 이러한 모임에 쉽게 참여할 수 있었지만, 지방에 사니 서울이 가진 강점을 더욱 알아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온라인 독서 모임은 인터넷에만 접속하면 간편하게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참여에 부담이 덜하다. 이동 및 준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래서 시간 약속도 용이하다. 항상 이동거리를 생각하면서 독서 모임 일정을 잡았는데, 온라인으로 진행하다 보니 밤늦게도 독서 모임이 이뤄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 독서 모임은 대면 활동 당시엔 평일 6시에 만났다면, 현재엔 모든 일정이 끝나고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일요일 8시에 독서 모임이 이뤄진다. 그리고 온라인 독서 모임은 참여자들이 어떻게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대면 모임에선 나의 시선을 돌려가며 다른 구성원의 반응을 살펴하는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비대면 모임에선 나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 다른 구성원들의 반응을 살피기 쉽다. 구성원들이 나의 생각에 동조하는지, 의구심을 품는지를 쉽게 알아차림으로써 더욱 확장적인 대화가 용이해졌다.

온라인 독서 모임이 주는 편리성과 효율성은 독서 모임 참여의 장벽을 낮춰준다. 아마 나는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온라인 독서 모임을 지속적으로 할 것 같다. 분명히 온라인 독서 모임의 단점도 존재한다. 예컨대, 나의 경우 독서 모임 일정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 대면 모임 같은 경우엔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그 공간으로 모인 것이니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있다. 하지만 온라인 모임은 다른 구성원들 역시 이 모임에 큰 기회비용 없이 참여하는 것처럼 느껴져 이 일정이 그렇게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만약 대면 모임으로 약속을 했다면, 불참하고 싶은 유혹이 있더라도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어떻게든 참여했을 텐데, 온라인 모임은 나의 상황을 최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GRE 시험 때문에 독서 모임을 3연속 참여를 하지 못했는데, 이 역시 독서 모임에 대한 나의 태도가 진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적 동기가 충분하고 주변 환경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장 독립형 인간이라면), 온라인 독서 모임도 책임감 있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책 모임 잘하는 법'은 온라인 독서 모임에 빠져있는 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란 기대를 안고 읽기 시작했다. 저자들은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 모임을 진행하는 독서 활동가들이다. 나는 이 책을 공저자 중 한 명인 오수민 작가에게 받았다. 오수민 작가는 또 다른 공저자인 김민영 작가 덕분에 알게 된 분이다. 서평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김민영 작가의 서평 쓰기 특강을 통해 서평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그전엔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에 겁이 많았다. 완벽한 이해 없이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요약하는 것을 서평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민영 작가와의 만남 덕분에 나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에 용기를 얻었고 지금까지도 서평을 독서의 기본값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 인연이 또 다른 독서 활동가인 오수민 작가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그는 김민영 작가와 함께 숭례문 학당에서 활동하며 책을 읽고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랫동안 블로그 이웃을 하면서 이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코로나 이전에도 비대면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 책은 코로나 상황으로 생긴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온라인 독서 모임에 시선을 주지 않을 때, 이것의 이점을 먼저 알아차리고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얻어낸 기록들이다.

독서 모임에 대한 책을 읽으면 독서 모임에서 사람들이 기대하고 얻는 것이 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경험의 보편성이랄까? 분명히 우린 서로 다른 독서 모임을 했는데, 그 경험이 개인에게 주는 감정, 생각은 놀랄만치 유사하다. 그래서 이러한 책을 읽을 때마다 '나 역시 그런데! 오 나도 이런 경험 있는데~'와 같은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책 역시 많은 공감을 하면서 읽었다. 5년간의 독서 모임의 경험이 장면 장면 떠올랐다. 독서 자체로도 가치가 엄청나지만, 독서 모임은 그 과정을 더욱 가치롭게 만들어준다.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생각이 정리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고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기도 한다. 아마 독서 모임을 참여한 사람만이 이러한 가치에 공감할 것이다. 만약 독서 모임을 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기웃거리기만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독서 모임의 생생한 경험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오랫동안 독서 활동가로 활동한 작가들의 경험 기인만큼 독서 모임을 다양한 층위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 책은 온라인 독서 모임에 초점을 맞췄지만, 독서 모임이라는 큰 범주에서 나에게 몇 가지 생각거리를 남겨줬다. 이 생각거리들을 정리하고 글로 풀어내면 지금보다 더 나은 독서 모임이 가능할 거란 확신이 든다.

1. 말과 침묵에 대하여

나는 독서 모임에서 말을 많이 하는 구성원이다. 논제에 대해서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 이 생각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다.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더욱 정교화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생각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장이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독서 모임에선 생각을 나누고 각자의 생각에 의견을 덧붙이는 것이 자유롭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것 같다. 최근에 독서 모임을 참여하지 못했다. 내가 참여했을 땐 독서 모임이 항상 2시간을 넘겼는데, 내가 없으니 독서 모임이 40분 - 1시간 정도로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 적잖이 당황했다. 우리 독서모임에서 모임을 시작하면서 하는 활동 시간을 고려하면 독서 모임이 30분도 안 돼서 끝난 것이다.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우리가 다루는 책들은 농도가 짙은 책이라 말할 소재가 없을 이유가 없다. '근데 왜 이렇게 모임이 일찍 끝난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내가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 내가 정말 말을 많이 하는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논제에 대해서 내가 먼저 의견을 내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선 말을 많이 하는 구성원에 대해 부정적으로 그리기 때문에 나의 문제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에 대해 다른 참여자에게 물어봤다. '제가 독서 모임에서 말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 때문에 말할 기회를 빼앗기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그 참여자는 내가 말이 많다고 좋다고 했다. 내가 없으면 할 말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나의 생각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봐 줘서 좋다고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그들에게 피해는 주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왜 내가 없으면 할 말이 없어진다고 표현했을까? 앞으로도 계속 관찰해봐야 할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는 것은 우리 독서 모임이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서툰 것이 아닌가 싶다. 가끔씩 하나의 논제로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논제를 이야기하는 참여자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끌고 온 깊숙한 대화가 한순간에 끝나버린다. 그럼 추가적인 논의는 없어지고, 새로운 논제로 바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화의 꼬리를 엮는 역할을 누군가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듣기 없는 대화가 되고, 대화가 아닌 독백적 방백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사람들이 말이 많아지면 이 책에서 그리는 것처럼 부정적인 대상이 되겠지. 이러한 관점에서 발화의 빈도나 양의 정도가 아니라 유의미하거나 관련이 있는 발화의 양과 정도로 발화를 평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심도 깊은 대화에선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과연 독서 모임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예전의 나는 침묵이 있는 상황을 싫어했다. 침묵은 어색함과 같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독서 모임을 하면서 침묵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깨닫는다. 어떠한 논제에 대해선 침묵 없이 의견을 낼 수 있다. 내가 이전부터 관심 있거나 고민했던 문제에 대해선 판단 속도가 빨라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에 대해선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고민의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할 때 침묵이 찾아온다. 침묵은 문제를 고민하는 것에 있어서 필수적인 시간이다. 내가 침묵을 싫어했던 이유는 그 시간 동안 내가 아무것도 안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한다는 것은 항상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을 아무것도 안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침묵을 억지로 깨는 것은 고민하는 시간을 빼앗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고민을 끝낸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대화가 유의미할까? 침묵은 한 명이라도 고민을 끝냈을 때 절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발화를 하면 다른 사람들은 지금의 고민과 그 발화가 합쳐지는 경험을 한다. 이를 통해 나 혼자서 끝내지 못했던 고민이 선명해지기도 한다. 나는 이것이 독서 모임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 보는 것! 이 모임에서의 침묵은 그저 멍 때리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표지이기도 하다.

2. 운영자의 존재

나의 독서 모임엔 운영자가 없다. 발언권도 없고 자발적으로 대화가 이뤄진다. 사실 운영자가 있는 독서 모임에 참여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발언권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공감이 쉽지 않다. 하나의 논제에 대해서 대화하듯이 모임이 이뤄진다. 굳이 인위적으로 운영자가 발언권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할까? 우리의 독서 모임은 4-5명이 매번 참여하는데, 2시간은 항상 넘게 모임이 이뤄진다. 이를 5로 나누면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 24분 정도이다. 책과 그 책과 연관된 경험, 생각을 나누는데 24분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선 4-5명일 땐 1시간이 적절하다고 묘사돼 있다. 인위적으로 시간을 조절해야 하는 건가? 이 짧은 시간에 얼마나 깊은 대화가 오고 갈 수 있을까? 인원에 따른 시간 운영. 이것을 굳이 표준화해야 하나 싶다.

3. 사담의 필요성

어떤 모임이든 유대감은 필수적이다. 사실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우리 독서 모임 구성원 간의 유대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좀 더 서로가 알아갔으면 좋겠지만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이 유대감 없이도 독서 모임 참여하는 것이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독서 동아리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책을 즐겨 읽지 않는다. 의무감에 책을 읽는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 아마 독서 모임은 '일'과 비슷할 것이다. 마음이 끌린다기 보다 의식적으로 실천으로 옮겨야 하는? 하지만 이 모임에 유대감을 느낀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이 모임에 오는 것이 즐겁고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지겠지. 서로 저마다의 이유로 독서 모임을 찾겠지만, 그들이 활동을 통해서 그 이유에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유대감이 없는 모임은 언제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무언가가 없으니깐. 이 동아리를 교대생들이 교육을 읽고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로 만들었지만, 많은 구성원이 이 활동에 대한 애정이 그렇게 있어 보이는 것 같진 않다.

4. 책을 반드시 다 읽어야 할까?

나는 독서 모임의 기본 조건을 완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란 책이 완독의 부담에서 나를 해방시켜줬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 전에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을 느낀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독서 모임은 '완독 후'가 아니라 '독서 전', '독서 중'에도 빛을 발한다는 걸 느낀다. 독서 전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읽었는지 감상을 들으면서, 나의 기대감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어려운 책의 경우 그들이 나누는 것을 통해 배경지식을 기를 수 있다. 책을 읽는 프레임도 생기게 된다. 또 독서 중에 읽었을 땐 내가 지금까지 읽은 감상과 타인이 읽은 감상을 비교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해 다음의 읽기에서 생각의 변화를 겪기도 하고,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관점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독서모임은 언제 하든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읽었을 때 모임 하는 것만큼 다양한 분량을 읽은 독자들이 참여할 때도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다. 그러니 독서모임에 참여에 있어서 완독의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5. 서평의 습관화

서평은 정말 습관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독서의 끝을 서평이라고 생각한다. 독서에서 얻은 생각과 깨달음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지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사라진다. 서평을 썼더라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록한 걸 다시 볼 때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평을 쓰지 않는 것은 똥을 싸고 똥을 덜 닦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을 습관화하는 것은 독서를 습관화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우선 시간이 너무나도 오래 걸린다. 이미 읽고 생각 정리를 마친 것처럼 여겨지는 책에 또 다른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머릿속에 산재된 생각을 글로 풀어내기 위해선 구조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과정은 귀찮고 힘들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시간에 새로운 책을 읽거나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독서의 양을 늘리고 싶은 사람에겐 하나의 책 온 정신을 쏟는 것보다 여러 책을 가볍게 다루는 것이 효율적이기도 하다. 독서 모임과 서평. 이 둘은 독서와 독립적인 사건이다. 이 둘은 독서를 좋아한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독서와 마찬가지로 누군가 시킨다고 억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은 자발성과 필요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책을 읽어보고 나의 생각이 부족함을 느끼거나 내가 읽었던 책들의 내용과 감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걸 직접 경험할 때. 그때 비로소 이 추가적인 행위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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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어 회화 1 - 미국적인 너무나 미국적인 미국 영어 회화 1
김아영 지음 / 사람in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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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어 회화 1은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저자의 책이다. 꼭 읽고 싶던 저자의 책이다. 그런데 운이 좋게 이 책을 무료로 얻게 됐다. 그리고 요즘 이 책을 활용해 틈틈이 영어 인풋을 채우고 있다. 이 책은 영어회화를 아웃풋이 아니라 인풋 중심으로 익히도록 설계돼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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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어 회화 1 - 미국적인 너무나 미국적인 미국 영어 회화 1
김아영 지음 / 사람in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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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원어민 교사와 이야기할 기회가 꽤 있었다. 나는 그들과 최대한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특히 대부분의 원어민 교사가 나와 비슷한 나이여서 다른 교사들 보다 통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우리나라 교육 현장 모습을 듣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뭐랄까. 예전엔 우리의 입장에서 원어민 교사 이야기만 들었다면, 현장에 나오니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게 됐다. 이건 정말 뜻깊은 경험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우리의 교육 문제, 학생들 현황, 교사들 특징 등 새로운 관점을 많이 접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의 회화 능력의 불만족을 자주 느끼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을 잘할 수 있는데, 더욱 깊이 들어가는 것에서 나의 언어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더욱 깊이 나아가지 못하고, 대화가 중간중간 멈추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정적. 할 말은 있는데 말할 수 없는 그 상황. 참. 아쉽다. 내가 좀 더 영어 능력을 갖췄더라면 이야기를 내가 원하는 만큼 끌고 갈 수 있을 텐데. 그들이 나를 배려해 줘도 그 한계에서 오는 부담감은 극복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에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영어를 한국어와 1:1 대응하려는 것이다. 영어와 한국어는 엄연히 다른 언어는 1:1 대응이 될 수 없는데 계속 이것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특히 한국어로 복잡한 말들을 표현할 때 이러한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그런데 대화가 끝나고 보면 웃프게 대부분 영어로는 더욱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다. 한국어는 모국어기 때문에 이리 꼬고 저리 꼬아도 표현하고 알아들을 능력이 있다. 영어는 그렇지 않는데도, 그 어감을 표현하려고 무진장 애쓰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휴! 내가 그들과 모국어 화자처럼 휘황찬란하게 언어를 구사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그리고 그럴 수도 없다. 나는 그런 걸 원치 않는다. 그저 내가 그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요지를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 회화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정확한 구사는 아니어도 된다! 다만 그들이 오해 없이 나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는 내 영어 실력을 끌어올리고 싶다.

미국 영어 회화 1은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저자의 책이다. 꼭 읽고 싶던 저자의 책이다. 그런데 운이 좋게 이 책을 무료로 얻게 됐다. 그리고 요즘 이 책을 활용해 틈틈이 영어 인풋을 채우고 있다. 이 책은 영어회화를 아웃풋이 아니라 인풋 중심으로 익히도록 설계돼 있는 것 같다. 실제 인터뷰 상황을 각색해 제시하고 있는 인터뷰집과 같은 책이다. 그리고 각 인터뷰마다 주인공들의 성격, 특징, 배경 등이 제시돼 있는데 이것과 함께 그들의 대화를 읽어나가는 것이 재미있다. 내가 인터뷰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어 읽어보기도 하고, 습득하고 싶은 표현들은 잠시 멈췄다 외워보기도 하고. 그냥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다. 게다가 인터뷰 녹음 파일도 제공해서 실제로 모국어 화자가 어떤 억양, 발음, 강세로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초등학교 땐 이렇게 대본을 듣고 외우는 방법으로 영어를 공부했는데, 중학교 때부턴 이러한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었다. 왜 그랬을까. 초등학교 때 공부했던 것처럼 쭉 했다면, 지금 나는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덜 했을 텐데. 입시에 나의 영어를 팔아버린 거지 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어회화 #미국영어회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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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동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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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는 평범한 남자아이들과 달랐다. 운동은 나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었다. 운동 경기에서 이겨야 하는 부담감과 땀을 흘리며 힘들게 몸을 쓰는 것이 싫었다. 더욱이 아이들이 즐겨 하는 총 쏘는 게임, 전략 게임, 격투 게임, 축구 게임 등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춤을 추는 걸 좋아했다. 가만히 앉아서 친구들과 한번 수다를 떨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냥 그땐 그런 것이 재미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특이점들은 아이들에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이것은 일종의 놀림거리로 작동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나이대의 남자들은 무리에서 의리를 중시해서 차이를 별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로부터 여자 같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이 말이 정말 싫었고 고통스러웠다. 왜 아이들이 나를 이렇게 부르는지 아니깐. 그리고 남중에 진학하면서, 친구들과의 차이는 점점 크게 다가왔다. 게임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운동도 못했기 때문에 점점 소외됐던 것 같다. 친구들과 겉으론 웃으면서 잘 지냈지만 다른 아이들과 다른 내가 너무나도 싫었다. 다른 아이들이 즐기는 것에 관심이 없는 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왜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게임과 운동에 흥미가 없지?”라는 생각을 항상 했다. 이러한 비정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 자신을 정말 많이 탓했다. 평범한 아이들이 즐기는 것을 똑같이 즐기고 그들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을 항상 바랬다. 이와 같은 이유로 매 학기 방학 목표는 이것들에 대한 취미 붙이기였다. 결과적으로 성공은 못 했지만, 친구들과의 접점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마음속에 응어리로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것들이 대화 소재로 나오거나 하게 될 일이 있을 때 나 스스로 웅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비정상이 아니란 걸 알며 나 역시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애초에 인간은 다른데 이를 의리라는 이름에 한 무리에 집어넣으려는 행위가 비정상 아닌가? 내가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 차이를 매개로 배제하고 소외하려는 사람들이 문제 그 자체다.

다행히 고등학교때부터 이러한 소외감을 덜 느낄 수 있었다. 남자들로만 가득했던 중학교에서 벗어나 여자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남자 아이들이 소수였기 때문에 그들과 나의 관심사가 같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내가 체육을 못하고 게임을 하지 않아도 친구를 사귀는 데에 별 문제가 없었다. 더욱이 내가 비정상이라고 여겼던 나의 특징과 관심사는 이 집단에선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학교 3년을 남자 중학교에서 보낸 나와 여학생들과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갈등이 엄청 심했던 적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조금씩 알아갔던 것 같다.

고등학교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여초 집단에서 생활하고 있다. 남성들이 주를 이룬 환경은 중학교와 군대 훈련소가 전부다. 나는 여초 집단에서 있으면서 자연스레 여성들의 고충을 알게 됐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성차별 및 불평등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민감해질 수 있었다. 내 주변엔 정말 능력이 좋은 여성들이 많이 있다. 능력과 더불어 성실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사회에 나가면 수 많은 여성들이 자취를 감춘다고 한다. 대부분의 고위직 및 존경받는 자리는 남성들의 몫이다. 아이러니이다. 내 나이대에만 잘난 여성들이 있었던 걸까? 아니. 그들을 ‘성’을 매개로 차별과 배제를 당했던 것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일상생활을 경험을 통해 성차별이 나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나 역시도 일상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 표현을 무시했던 적이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을 혐오하며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자가 조신해야지. 현모양처가 좋은 거 아니야? 왜 남성 혐오와 여성 혐오가 다르죠?’ 등 무지에서 나온 발언도 했다. 또 서슴없이 ‘입에 걸레 물었냐.’ 등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욕도 서슴없이 사용했다. 지금은 문제라는 걸 알지만, 그 당시엔 어떠한 문제의식도 없었다. 아마 지금도 내가 일상에서 혐오가 만연한 생각, 행동, 말 등을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는 작가의 불편한 경험과 생각에 대한 수필집이다. 같은 세상에 살지만, 남성과 여성이 겪는 세상의 모습은 정말 다르다. 그냥 다른 것을 넘어 질적으로 차이 난다. 남성이라면 겪지 않을 것들은 여성들은 일상에서 흔히 겪는다. 상상할 수 없는 영역까지 이러한 차이는 만연해 있다. 이러한 차이는 차별과 배제를 내포한다. 누가 인간들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 하는가? 학교에서 우린 이를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 배우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비정상성에 대해 익숙해 있어, 이것이 지닌 문제를 쉽게 지나친다.

불편함은 문제를 알아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 문제로부터 이익을 취하거나 문제에 식민화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불편함’도 혐오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 이는 오래전부터 부정적으로 여겨졌다. 어렸을 때부터 불편함을 토로할 때면 ‘저런 거에도 불편을 느끼나? 괜히 트집이야.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등의 반응을 했던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이러한 반응은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남성인 나도 이러한 폭력적인 반응에 무기력해지는데, 배제와 차별이 일상화된 여성의 삶은 얼마나 더 무기력할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에서 말하는 ‘당신’은 여성과 남성 모두라고 생각한다. 불편을 느끼는 것에 결코 죄책감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문제가 있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데 누가 이 감정을 억제하려는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통제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실상은 불편함을 토로하는 목소리를 억제하려 한다. 이는 그 사람의 언어와 생각을 빼앗는 행위라고도 생각한다. 불편함은 변화를 부른다. 이는 불편함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문제점에 불편함을 느끼고 이것에 대해 세상에 외칠 때 이러한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을까. 또한 남성은 여성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주로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지며 남성들에겐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의도적으로 문제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할 땐, 불편함을 느낄 수 없다. 불편함을 느기 위해선 문제가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제목은 불편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인식하라는 말을 전하고 있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으면 내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것이 계속 공부해야 하는 이유겠지. 공부하지 않으면 문제를 방치하고 더 심화할 테니까. 이런 걸 보면 공부의 목적은 과거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함인 것 같다. 공부하자! 그리고 나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자.

질문이 부족한 사회는 아니지만 질문하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가난한 남성이 가난한 여성을 폭행하거나 성을 구매하는 시인 김수영 식의 서사처럼, 남성과 여성 •성소수자가 겪는 빈곤의 경험은 각각 다르다. 다 른 사회적 차별과 폭력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남성이 아 닌그외 존재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거나 ‘다른' 질문을 던지는 책은 찾기 어렵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는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무언가에 불편할 수 있는 건, 어떤 존재가 눈에 걸리적거릴 때이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몸에서 일어 나는 일은 침묵됨으로써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때, 세상은 딸국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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