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좋은 정부 - 철학과 과학으로 풀어 쓴 미래정부 이야기
김광웅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인간은 정치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정치란 거창한 개념이 아니다. 한 개인이나 집단이 각자가 품은 의사를 전달하고 이를 활용해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치라는 말을 낯설고 멀리 있는 존재로 느껴진다. 국회의원, 지방자치, 정당 등 우리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치부한다. 우리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청원이나 투표에 한정돼 있다고 여길 뿐이다.
나 역시 정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수, 행정기관의 수, 주요 정책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도 모른다. 한국인으로서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왜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걸까? 옛날부터 정치를 논쟁거리로 치부해버리던 생각이 나에게도 주입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린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와 관련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는 나와 우리가 함께 해야 하며 그것은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부른다.
운 좋게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었다. 정치와 행정에 대해 공부하고 싶던 생각들이 막연했는데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많았다. 책의 저자는 김광웅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다. 김대중 정권 때 대통령 직속 중안인사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은 분이다. 처음 책을 봤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방대한 분량이라 놀랐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됐지만 한편으론 정치 문외한에게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니었다. 글이 쉽게 읽혔고 무엇보다 글쓴이가 지닌 지식의 방대함에 놀랐다. 그가 인용하는 학자의 수는 대단했고 자신의 논지를 보강하기 위해 알맞은 학자들의 주장을 갖다 쓴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과거엔 인용되는 학자나 지식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다른 책에서 또 보고, 그 사람들의 책을 찾아 읽으면서 책에서 언급되는 사람들이 나의 관심사가 됐다. 책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책을 풍성하게 해준다. 이 책 역시 그 풍부함 때문에 더욱 재미있고 쉽게 읽혔던 것 같다.
앎이란 자신만의 인식 경계에 스스로를 묶는 짓이다. 그러니 좀 안다고 으스대면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말했던 대로 지식인 중에는 이사야 벌린이 말하듯 거대 담론을 추구하는 고슴도치형이 있고, 호기심이 가득하고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는 여우형도 있다. 어떤 형태든 앎이 힘이 되긴 하지만 신분과 계급이 될 수는 없는데, 우리는 여기에 너무 집착해 스스로를 가두고 일을 저지른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글쓴이가 주장한 논지가 나와 다른 부분이 많았다. 글쓴이가 주장하는 것들이 나에겐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있었고 의문이 들기도 했다. 글쓴이는 규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국가의 규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보장해야 하는데, 오로지 자유만을 강조하다면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위험이 크다. 또한 규제의 완화는 효율성의 측면에서 좋아 보일 수 있지만 다른 요소들을 고려하지 못하는 위험이 크다.
규제에 대해 우리 학교 교육행정학 전공이신 정수영 교수님께 여쭤봤다. 정책을 두 가지 흐름으로 봤을 때 자유와 평등으로 볼 수 있다. 자유는 시장의 논리에 맡겨 시장의 자율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국가는 시장의 기능을 믿으며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평등주의 입장에선 시장은 불완전한 존재로서 실패에 노출돼 있다. 그렇기에 정부는 규제를 통해 시장실패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완전한 평등주의자. 자유주의자는 없다. 또한 이 두 가치를 하나만 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둘 사이에서 어느 것에 초점을 두는지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둘의 논리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우린 그 사이에서 우리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개인적인 사생활이 들춰지면서 망신을 받는 경우는 그것이 잘못일 때가 아닐까? 고위 공무원의 사적인 문제는 어디까지 용인해야 할까?
우리의 인사청문회를 예로 들어보자. 총리나 장관의 인사청문회는 이들이 공직에 취임했을 때 일을 잘할 수 있는지를 검증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직무수행 능력을 검증하는 본령은 제쳐두고 개인적인 사생활을 들춰내 망신을 주기 일쑤다. 그런 제도라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갈등이 많다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갈등은 무슨 의미를 지닐까?
갈등 지수가 세계에서 4번째로 높다는 사실만 봐도 사회 분위기가 얼마나 황폐한가를 어림할 수 있다.
관료는 얼굴이 없다. 표정이 없고 영혼도 없다. 물혼만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관료는 영혼이 없다란 말을 일찍이 베버가 했다. 관료는 자유, 평등, 정의 같은 정신적 가치를 생각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단기적 목적 달성을 위한 계산에만 몰두한다. 머리는 똑똑한데 뜨거운 가슴과 현장을 누비는 다리가 없는 것이 탈이다. 저자가 늘 부르짖는 실천 없이 머리 없다는 말의 뜻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현장을 모르고 사무실에서 서류 쌓기에 바쁠 뿐이다. 말 그래로 책상 관료다.
🧚🏼♂️리뷰어스 클럽으로부터 제공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