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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라치아 마리아 델레다 지음, 정란기 옮김 / 본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우린 불확실함 속에서 미래를 꿈꾸며 산다. 내 마음에 미래를 그리며 그것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미래의 모습은 그 미래가 현재가 될 때까지 모른다. 하지만 우린 현재에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생각한다. 현재 꿈꾸는 미래와 다가올 미래는 같지 않다.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를 꿈꾼다.
폴은 사제가 되기 위해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소년이었다. 사제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사제가 된 모습을 상상했을 뿐이다. 그의 어머니 역시 그가 사제가 되길 간절히 바랐다. 아들이 사제의 길을 걷는 것은 고아였던 그녀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과도 같았다. 자신이 걸었던 길을 아들이 걷질 않기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이것이 지상의 하느님 나라가 아닌가. 그러자 그 기억에 그는 가슴이 부풀었다. 오, 주여! 저희는 왜 그리도 몽매합니까? 어디서 빛을 찾을까요? 폴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지식은 그 의미를 불완전하게 이해한 책들의 파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폴은 사제가 됐다. 사제는 순결을 지켜야 하며 여성을 멀리해야 한다. 하지만 폴에게 있어서 이를 지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폴은 하나님에게 자신을 바치며, 순결을 약속한다. 하지만, 인간이 쾌락을 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일부러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에겐 사랑하는 여자, 아그네스가 있다. 사랑과 사제로서의 삶 중 그는 고뇌한다. 그토록 바랐던 사제가 됐지만,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여 할 것인가.
어머니는 그가 최근 여러 차례 여인처럼 거울을 들여다보고 손톱을 손질하거나 민머리를 숨기려는 듯 길게 기른 머리를 빗어 넘기는 모습이 기억났다. 그런 다음 그는 향수를 뿌렸고, 향기로운 가루로 양치를 했으며, 눈썹까지 벗어 정리했다.
어머니는 좌절하지 않고 들어서 알아내야 했다. 아니,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속이기 위한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폴과 아그네스만큼이나 어머니는 이에 대해 고뇌한다. 인간이라면 쾌락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는 게 당연하다. 아들이 하나님께 헌신을 약속했지만 자신의 본능을 억제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자신도 아들이 사제가 되길 원했지만, 그가 사랑에 빠진 모습을 보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폴은 일반적인 삶을 살 수 없을까?”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산을 내려온 이후 가장 참기 힘든 일이 바로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녀의 침묵,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흡입력이 대단한 소설이었다. 읽으면서 뒷장이 궁금해지고, 주인공들의 심정이 모두 이해가 갔다.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종교의 교리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규칙이나 교리를 왜 만들까? 그 공동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교리를 만든다. 교리는 그 집단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리가 변동될 수 없는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리를 도와야 할 수단인 교리가 우리를 옭아매도록 방치해둔다. 주인공들 역시 교리를 종교의 목적이라 받아들였을 것이다. 주인공뿐 아니라 현대의 사제들 역시 그렇다. 만약 교리가 지금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변경이 불가피하다면 바꿀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의 얼굴은 고요하고 엄숙했으며,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입은 소리치지 않으려는 듯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는 곧 어머니가 자신은 극복해던 슬픔과 공포에 동일한 충격으로 죽었음을 알았다.
리뷰어스 클럽으로부터 제공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