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의 상상력 - 질병과 장애, 그 경계를 살아가는 청년의 한국 사회 관찰기
안희제 지음 / 동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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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의 질병과 통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목적으로 ‘난치의 상상력’을 썼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글이 아니다. 독자들이 질병과 통증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넘어, 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도록 바라는 마음을 담은 글이다. 그가 이 목적을 ‘정치적 이유’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는 이 책을 통해 독자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주고 싶었을 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한 명의 독자에 있어서 이 목적을 달성한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일상에 만연한 장애, 병, 장애인 등에 대한 불편한 시선에 대해 성찰할 수 있었다.

작가 안희제는 크론병을 앓고 있다. 크론병은 나에게 익숙하다. 고등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가 크론병으로 힘들어했기 때문에 이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친구가 묘사하길 고통이 심할 땐, 배가 찢어질 정도로 아프다고 한다. 이 고통은 일반적인 복통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면역 반응을 조절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양의 약을 먹었다. 약의 반응을 외관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성분을 포함한 듯 보였다.

난치의 상상력을 읽어나가면서, 내 주변의 장애인들에 대해 상상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사실 우리 엄마, 아빠도 장애인이다. 그들은 휠체어나 인공 내우와 같은 가시적인 장치를 사용하지 않아 장애인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엄마는 고된 노동으로 목, 허리, 무릎, 발목 등 수술을 5번 정도를 한 지체장애인이다. 아빠는 군대에서 지뢰 폭발 사고로 인해 한쪽 눈이 불편하다. 나는 부모님의 신체능력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실감한지 오래되지 않았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모님은 가정에 충실하며 어떠한 나약함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걸을 때, 엄마의 걸음걸이가 불편하다는 걸 발견하곤 한다. 양쪽 다리의 길이가 달라 다리를 절며 걷고, 계단을 오르내릴 땐 한쪽 무릎을 구부리지 못한다. 내가 쉽게 내딛는 한 발자국도 엄마에겐 편하지 않다. 하지만 나처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가시적이지 않은 질병은 그 고통과 증상이 경시되기 쉽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환자성, 장애인성이 있는 듯하다. 그들이 머릿속에 임의로 그린 장애인과 환자의 모습에 타인을 대입시켜, 그들의 고통을 지레짐작한다. 크론병 역시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병이고 증상이 일관되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설정한 기준으로 이 병을 평가하며,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작가 안희제가 세상에 내는 목소리는 강력하다. 이는 정상성 또는 일상성이라는 이름하에 가볍게 여겼던 삶의 방식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히 장애 체험에 대한 그의 생각은 장애에 대한 나의 태도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같은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생각하나? 그는 장애인 체험이 장애인에 대한 단순히 연민, 동정의 시선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존중과 이해는 엄연히 다르다. 존중은 상대의 존재 가치를 그대로 인정한다. 이는 타인을 주체로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해의 경우, 대상의 가치는 이해를 통해 결정된다. 대상이 가치를 갖기 위해선 상대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는 주체를 대상화할 위험이 있다.

이 주제에 대해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작가의 말이 공감이 됐는데, 한 동기는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나쁘게 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역시 다양한데, 작가의 생각이 모든 장애인의 생각을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분법적으로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은 나쁘다’라고 단언하면 감정싸움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이 아는 장애인은 다른 사람들이 불쌍하게 바라보며 도움을 주는 것을 원한다고 한다. 또한 불쌍하다는 감정이 장애인을 위한 제도 개선에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불쌍하다는 감정과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권 신장을 예로 들면 쉽다. 우리가 여성의 인권을 높이려는 이유는 여성이 불쌍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그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그들을 누리지 못했고 이를 바로잡는 것이 여권 신장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 역시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지닌 존재다. 하지만 장애라는 삶의 조건은 그들이 인간으로서 권리를 누릴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처럼 여겨지도록 한다. 즉 장애인들은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삶의 조건 때문에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 인식 및 제도 개선은 그들이 불쌍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래야 하는 위치를 되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엔 장애와 병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생각이 가득 담겨있다. 내가 평소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이라, 작가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납득이 되지 않은 생각 역시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그처럼 장애를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고 이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아 서툰 문제 제기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책 한편에 적어둔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선 그가 병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헷갈린다. 이 책은 병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가 경험을 통해 드러내는 생각은 종종 이와 어긋난다. 그 역시 ‘병이 없던 정상’적인 과거의 삶을 그리워한다. 이러한 시선 역시 병에 대한 부정을 전제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병이 없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그의 태도를 비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의 비판의 초점을 달리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병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가 아니라 병을 가진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를 비판해야 한다. 삶의 조건인 병과 환자를 분리하지 않는 사회가 문제적 사회 아닐까?

작가는 세월호 사건과 코로나 바이러스를 다루는 미디어의 행태를 비판한다. 그는 이 두 사건 이후 달리 전개된 재난 영화 상영에 의문을 던진다. 그는 세월호에 대해 사람들이 애도를 하기 때문에 재난 영화를 상영하지 못했다고 해석한다. 이에 반해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경우, 대부분 사망자가 기저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이들에 대한 애도가 없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재난 영화 상영을 활발히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재난 영화 상영에 대해 다른 이유를 찾고 싶다.

세월호 사건과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의 책임소재가 다르다. 세월호 사건은 인재, 코로나 창궐은 자연재해가 중심돼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사건을 바라볼 땐, 애도의 감정을 넘어 죄책감이 주를 이룬다. 무책임한 행위에 대한 죄책감으로 재난 영화 상영을 쉽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후자는 책임의 소재를 자연에서 찾음으로써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의 경우, 자연재해에 대한 경각심이 부각된다. 인간은 이 재해의 원인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활발한 영화 상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을 인재로 바라봐도, 중국에서 시작한 전염병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미디어는 책임을 덜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긴급 상황에 이뤄지는 AED 사용 및 심폐소생술에 대한 작가의 의견에 공감할 수 없었다. 긴급 상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생과 사를 오고 가는 상황을 가리킨다. 긴급 환자에 대한 응급지원이 신속히 이뤄지지 않으면 환자들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응급 처치 교육을 받을 때 환자의 갈비뼈가 부서지는 것이나 자신의 잘못으로 죽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지 말고 신속하게 환자를 도울 것을 요구한다.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환자가 죽지 않도록 신속하게 응급처치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작가는 환자가 어떤 질병을 가졌는지, 어떤 장비를 장착했는지를 살펴 적절한 대응을 할 것을 원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응급 처치가 어느 상황에서 이뤄지는지 맥락을 살핀다면, 이러한 주장은 안 하지 않았을까?

또한 민방위 훈련에서 비장애인 건장한 남성이 응급 처치하는 사례만 보여주고, 이를 보고 배우는 것 역시 건장한 남성이라는 점에 비판을 가한다. 이는 우리나라에 대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판이라 생각한다. 이 영상은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상영되다. 민방위 훈련은 전시를 대비해 이뤄지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전시 상황 대비에 맞춰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성인 남성이다. 그들이 이걸 보는 이유는 국방의 의무 중 하나기 때문이다. 그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공간에서 비장애인 건장한 남성이 응급처치하는 영상을 보는 것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뤄지지 않을 응급 처치 교육에 대해 비판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이 일상화되면, 이 교육이 이뤄지는 장소와 맥락에 맞게 사례 역시 다양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만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에세이였다. 지금껏 읽은 에세이들은 대부분 작가가 자신의 세계에 취해, 공감되지 않은 이야기를 펼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뻔한 말들로 지면을 가득 채워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정성이 담기지 않은 글들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 책은 쉽게 쓴 것이 아니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독자에게도 작가의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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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4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장애가 고려되지 않은 응급지원이 장애인을 죽일 수도 있다는 내용인 듯한데.. 배우는 사람만 비장애인남성이라고 한 게 아니고 받는 대상이 핵심이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