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윤곽 3부작
레이첼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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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은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이 '21세기 최고의 책 100'으로 선정한 소설이다. 2020년에 21세기를 대표하는 책을 선정하는 것이 우습지만, 20년간 발행된 수많은 책들을 제쳤다는 사실만으로도 명예로운 일이다. 특히 가디언지는 영국을 대표하는 일간지로서, 이 소설을 가벼운 이유로 목록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됐고 궁금했다. 이 조그만 책에서 어떠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됐다. 다른 책들이 갖지 못한 '윤곽'의 강점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러한 마음을 안고 소설을 시작했다. 책장은 아주 가볍게 넘어갔다. 쉽고 일상적인 언어로 소설이 이뤄지기 때문에 소설을 읽어나가는 데엔 어려움이 없었다. 작가의 언어를 따라가며 책장을 넘기니 어느새 책의 후반부에 도착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책이 끝났다. 모든 게 순식간에 이뤄졌다. 책을 빨리 읽는 편이 아닌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이 끝나버렸다. 책을 덮었을 때 "내가 무엇을 읽은 거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어려움 없이 책을 읽었지만,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나는 나의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타인의 서평을 읽지 않는 편이다. 같은 책이더라도, 그들과 내가 읽은 책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껏 쌓아온 경험, 생각 등이 물리적인 책과 어우러져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들 나름의 의미를 찾는다. 같은 책에서 같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만, 전혀 다른 모습을 할 수도 있다. 내가 나의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먼저 보면 이 책에서 나만의 의미를 뽑아내기 어려워진다. 다른 사람의 서평을 읽은 기억이 나의 이미 창출 과정에 간섭하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그 기억을 잊으려 해도, 이를 전적으로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서평은 누군가의 간섭이 절실히 필요했다. 쉽게 읽히면서 의미를 뽑아낼 수 없던 책은 처음이었다.

가장 먼저 아마존에서 이 책의 평을 찾았다.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내가 발견하지 못한 이 책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다양했다. 이 책에서 어떠한 감흥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 있는 반면, 이 책을 극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의 글을 천천히 읽어갔다. 어떤 글은 나와 생각이 똑같아서 놀랐다. 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 같았다. 다른 독자들이 이 책에서 뽑아낸 의미 역시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주목하지 않은 부분들을 그들의 글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독서할 때 가볍게 넘기는 것들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었더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의 이 책에 대한 평가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이 책은 대화로만 이뤄져 있고, 대화 참여자들의 정보는 파편적이다. 그들은 주인공에게 각자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 쉽다. 그들에 대한 정보는 오로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주인공이 그들과 같은 경험을 공유한 것이 아니기에, 주인공의 체험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주인공 역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평가할 수도 없다. 또한 이것에 대해 가치 평가하기도 조심스럽다.

내가 이 소설에서 의미를 뽑아내기 어려운 이유를 생각해봤다. 맺고 끊음이 없었다. 다른 소설의 경우, 상대방의 말에 대한 반응이 담기기 마련이다. 누군가 이야기를 했으면, 그것에 대하 상대방의 반응이 뒤따르다. 감정 표현, 의미 창출 등 다양한 형식으로 반응이 나타난다. 그 후에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파예'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이럴만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무미건조한 '파예'의 대화 참여는 대화의 매듭을 짓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주인공이 반응을 할 때, 나도 반응을 하는 편인데 이 소설은 그럴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책장은 쉽게 넘겼지만, 마지막 장에 내가 안고 간 의미가 없던 것이 아니었다 싶다.

소설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하나 있었다. 소설 '폭풍의 언덕'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이다. 같은 창을 통해 바깥을 봐도,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르다. 모든 인간살이 그러 것 같다. 무언가 보는 방식뿐 아니라 대화 참여 역시 사람마다 상이하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서로 느끼는 것, 얻어 가는 것이 다르다. 화자는 누군가에게 청자며, 청자는 누군가에게 화자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에 똑같이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이 소설은 청자와 화자 역할이 뚜렷하다. 주인공은 주로 청자의 역할을 하고,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화자의 역할을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같은 창을 보더라도, 다른 것을 보듯이 나와 다른 감정과 생각을 얻어 가겠지. 이러한 점에서 다른 독자들의 리뷰를 보기를 잘한 것 같다. 청자로서 내가 얻어내지 못한 걸 다른 청자들 얻어냈으니.

쉬운 언어로 채워진 소설이지만, 천천히 읽어야 할 것 같다. 대화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리며, 대화 당사자들이 무슨 문제를 안고 있는지 찬찬히 사려야 하는 소설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게 뭐지?"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마치 나처럼. 하지만 나와 같은 독자가 많다는 사실에 위안이 된다. 나는 지금껏 나의 습관대로 소설을 읽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고 하면 내가 느낀 바를 그대로 전해줄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처럼 독서를 하라. 그 대화에서 의미를 끄집어내는 것은 대화 참여자들이 아니라, 순순히 독자의 몫이다. 대화를 경청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쳐 길을 잃게 된다. 이러한 나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스스로 헤쳐나가도록 한다. 이러한 점에서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 그리고 이 책이 왜 21세기 최고의 책 100에 선정됐는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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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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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강남순 교수님으로 인해 알게 된 학자다. 그 후 그는 나의 삶과 생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책을 직접 읽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을 통해 그의 사유세계를 알 수 있었다. ‘악의 평범성,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 생성/탄생의 철학자’ 등 그의 사상은 많은 사람들의 글에서 활용됐다. 독서를 하며 그의 흔적을 마주할 때마다, 그의 책을 직접 읽고 싶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으며, 그의 사상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어 쉽게 책을 시작할 수 없었다. 2020년이 돼서야 비로소 그를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생전 인터뷰를 담은 <한나 아렌트의 말>로 그를 읽기 시작했다. 그의 학문세계를 모두 알지 못하지만, 이 책은 그의 학문 세계에 대한 개괄을 담는 것 같다. 특히 이번에 읽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한 그의 생생한 진술을 들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만약 이 책을 읽지 못했다면, 그의 경고한 것과 같은 잘못된 해석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다루며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핍박의 역사를 샅샅이 알리는 책이었다. 박물관에서 알 수 없었던, 피의자들의 생각과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방식으로 유대인을 핍박했는지. 또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해석은 나와 사회를 되돌아보게 했다. 개인이 얼마나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지. 인간이 사회에서 어떠한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 나치의 만행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나와 연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렌트의 해석은 이 만행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개인들을 연결 짓는다.

악의 평범성. 그가 걱정했던 것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누구나 악을 자행할 수 있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해, 잘못 및 범죄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악의 평범성은 행위의 주체보다 행위에 초점을 둔 개념이다. 즉, 평범해 보이는 행위가 ‘악의 자행’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이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유대인을 적극적으로 핍박했던 것처럼, 그는 이 행위를 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치 당원으로서 이 일을 그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총통의 말이 법이었던 시절에, 그 법을 지키는 것이 정상이었고 옳은 것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행위였다. 하지만 아렌트는 우리가 평범하게 하는 행위 역시 악이 될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사고의 부재는 그 행위가 누군가에게 폭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사고의 부재의 위험성을 알리며 적극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적극적으로 사고하기란 쉽지 않다. 일상에는 지극히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개인 역시 다양한 삶을 꾸려나간다. 인간에겐 매 순간 생각하고 의문을 던지는 것보다 이에 적응하는 삶이 더욱 익숙하다. 반면에 적극적 사고란 평범성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는 행위다. 적극적 사고를 통해 인간은 표지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면을 살필 수 있다. 이는 외부 세계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개인은 적극적 사고를 통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자신의 행위가 무엇을 정당화하는지,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등을 깨닫게 된다. 적극적 사고의 부재는 평범해 보이는 것들에 권위를 부여하며, 그것이 지속할 수 있는 힘을 만든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하더라도 평범성의 이름으로는 어떠한 문제로도 읽히지 않는다.

그가 끝까지 열렬히 믿은 것은 성공이었고, 이것이 그가 알고 있던 ‘좋은 사회’의 주된 기준이었다. 히틀러 (그와 그의 동지 자센이 자신들의 이야기의 ‘중심’이 되기를 원한 사람)에 관한 주제에 대해 그가 한 마지막 말은 전형적인 것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히틀러가 "모든 것이 틀린 것은 아니고, 이 하나만큼은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노력을 통해 독일 군대의 하사에서 거의 8000만에 달하는 사람의 총통의 자리에까지 도달했습니다. ……그의 성공만으로 도 제게는 이 사람을 복종해야만 할 층분한 증거가 됩니다." 그는 자기 가 그랬던 것처럼 그 ‘좋은 사회’가 모든 곳에서 열정과 열성을 가지고 반응하는 것을 보았을 때 사실상 그의 양심은 휴식상태에 있었다. 판결 문에 나오는 말처럼 "양심의 소리에 자신의 귀를 가까이할" 필요가 그에게는 없었다. 그것은 그가 양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의 양심이 "자기가 존경할 만한 목소리와 함께", 자기 주변에 있는 사회의 존경할 만한 목소리와 더불어 말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권력을 유지 수단으로 ‘인간의 사고 부재’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알았던 것 같다. 그가 사용한 언어 규칙과 국민들의 사고를 개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은 인간을 하찮은 존재로 만든다. 인간은 규정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존재임과 동시에 그 환경을 개혁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특별하다. 하지만 히틀러에겐 국민들이 자신의 정책에 반감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전체주의 교육의 목적이 국민들이 어떠한 정치적 신념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에 깊이 공감된다. 또한 언어 규칙은 그들이 행하는 폭력의 잔인성을 가려준다. 최종 해결책, 특별한 치료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계획, 캠프는 수용소, 샤워는 가스 살포 등과 같이 범죄를 일상적인 언어로 유화시키고 있다. 유화된 폭력의 언어는 인간으로 하여금 폭력의 심각성을 경시하게 하고, 행위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나치의 만행을 들을 때마다,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상황이 상상이 된다.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행위들이 나치의 행위와 무관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영화 말모이에서 한국의 아이가 일본 순사에게 부딪혔을 때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스미마셍”을 말했던 장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그 나라의 문화와 사고가 담겨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언어를 빼앗고 그들의 언어를 주입시킴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을 의도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어를 통해 그들의 사고체계, 문화를 습득함으로써 일본이 저지르는 만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사고가 부재된 국민으로 나아가기를 원했을 것이다. 일본이 펼친 일본어 정책은 나치의 독특한 언어 규칙이 어떻게 국민들의 사고를 조정하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언어 규칙이 고안된 또 다른 이유가 무엇 이건 간에 그 규칙은 이 문제 처리에 본질적이었던 아주 다양한 많은 협조 체제를 이루어 갈 때 질서와 제정신을 유지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되었음이 입증되었다. 더욱이 ‘언어규칙 (sprachregulung)이란 용어 자체가 암호였다. 그 말은 일상어로는 거짓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지칭할 수 있었다. ‘비밀을 가진 자가 (스위스에서 파견된 국제적십자 사 대표들에게 테레지엔슈타트를 보여주기 위해 아이히만이 파송되었을 때처럼) 외부에서 은 사람을 만날 때 명령과 더불어 ‘언어 규칙'을 받았다.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해선, 외부에서만 공격을 해선 안 된다. 완벽하고 철저하게 파괴하기 위해선 내부의 균열이 반드시 필요하다. 외부의 적은 내부의 단결을 견고히 할 뿐이다. 독일과 일본은 이러한 생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엔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핍박하기 위해 유대인들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알 수 있다. 유대인 위원회를 만들어 그들에게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동족을 핍박하도록 이끌었다. 유대인 위원회는 부여된 특권에 취해, 나치 독일의 적극적인 동조자 역할을 한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친일파들 역시 사리사욕에 취해 같은 민족을 핍박하는 것에 어떠한 문제점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문제적 상황을 견고히 하는 유용한 도구로써 사용됐다. 이는 주체성을 포기한 행위로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부다페스트 위원회의 첫 번째 성명서에는, "유대인 중앙위원회는 모든 유대인의 정신적, 물질적 부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유대인의 인력에 대해서 처분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서술되어 있다. 우리는 유대인 관리들이 살인의 도구가 되었을 때 (자신의 배가 침몰할 때 갖고 있던 화물들을 바다로 던져버리고 배를 안전하게 항구로 성공적으로 운항한 선장들처럼, ‘100명의 회생자를 내고 1000 명을 구한, 1000명을 회생시키고 1만 명을 구한 구원자들처럼)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를 알고 있다. 진실은 더욱 끔찍했다.

베를린의 유대인 핍박의 흔적과 아렌트의 책을 짚어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면서 위험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프락시스의 존재로서 인간은 주체성을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 주체성을 포기하고 사고를 멈출 때, 우리의 행위가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또한 나 역시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칸트의 말처럼 나의 행위가 보편 법칙에 합당한지를 지속적으로 따질 수 있는 ‘입법자’로서 살아가고 싶다. 익숙함에 취해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지 못하는 ‘나약한 나’가 되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이 공부해야겠지.

전체주의 지배체제는 선하거나 악한 모든 사실 들을 사라져버리게 하는 망각이라는 구멍을 마련하려고 애쓰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1942년 6월 이래로 있었던 대량학살의 모든 흔적을 지우려는 소란스러웠던 시도들(화장을 통해, 구덩이를 파서 시체들을 불태움으로써, 폭약과 화염방사기와 뼈를 갈아버리는 기계들을 이용한 시도들)이 실패할 운명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적들이 ‘완전한 익명 속에서 사라져버리도록’ 한 모든 노력들은 허사였다. 망각의 구멍 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어떤 것도 완전하지 않으며, 망각이 가능하기에는 이 세계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단 한 사람이라도 항상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것도 ‘실질적으로 불필요’하지 않다.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아니다. 만일 그러한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진다면, 이는 오늘의 독일을 위해서, 단 지 독일의 해외에서의 위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슬프게도 혼란스러운 내면적 조건을 위해서도 실질적으로 아주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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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식탁 -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
이라영 지음 / 동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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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원피스엔 패기가 등장한다. 패기의 종류는 다양하다. 견문색, 무장색, 패왕색 패기가 있다. 견문색 패기는 상대의 속도 및 거리와 상관없이 그들의 기척을 읽는 능력을 말한다. 무장색 패기는 기를 통해 보이지 않는 갑옷을 만들어 방어를 하거나, 더욱 강력한 공격을 가능케 한다. 마지막으로 왕의 자질을 일컫는 패왕색 패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기로써 상대방을 제압하는 능력이다. 이 세 패기는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다. 문득 '정치적인'이라는 형용사가 원피스의 패기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정치적 행위를 말할 때, 명확하게 의도나 목적이 드러나 있는 행위를 말하지 않는다. 이면에 어떠한 의도를 품고 있는 행위를 정치적인 행위라고 부른다. 인간은 정치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 나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한다.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에게 전달된다. 상대는 정치적인 행위와 마주했을 때, 그 의도를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지만 못 알아차리는 경우도 많다. 전자의 경우 그 의도대로 행위를 하거나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반면 후자의 경우, 은밀하게 상대의 행위 및 생각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정치적 의도는 상대의 행위에 지속적으로 스며든다. 이는 행위 주체가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의 정치적 의도를 내면화하는 결과를 낳으며 그가 의도한 대로 행동하게 된다.

사실 인간 살이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하든 그 행위엔 의도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행위의 의도가 오로지 한 가지만 있는 경우도 드물다. 명확히 의도가 보이는 행위 역시 그 이면에 다른 의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적 의도는 행위 주체에게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의도 없이 한 행위 역시 상대에겐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왜? 인간은 다양한 결과 다층적인 권력 구조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권력 구조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 한국인, 아시아인, 교대 남자, 키 184cm 사람,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 지방 사람. 등 나를 어떻게 범주화하냐에 따라 나의 권력 구조는 달라진다. 항상 개인이 권력자일 수도 없고, 피권력자일 수도 없는 이유다. 나의 행위를 받아들이는 상대방이 나와 그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냐에 따라 내 행위의 의미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주체가 행위 한 후에, 그 행위는 주체의 품을 떠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상대방의 의도와 달리 행위를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인간으로서의 특권이자 의무다. 같은 대상을 봐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며 해석한다. 어떤 프레임과 함께 보느냐에 따라서도 같은 행위가 달리 보이기도 한다. 정치적인 식탁은 이러한 해석 행위가 가득한 책이었다. 작가 이라영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음식을 소재로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음식은 먹는 것을 넘는 존재가 된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볼 때, 그 이면의 정치적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것 같다. 또한 본래는 정치적 의도가 없었더라도, 어떻게 상대에게 정치적으로 다가오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음식을 낯설게 보려는 이라영의 노력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음식을 성별 프레임으로 해석하려 해,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가 음식을 통해 서로 다른 성별 간의 권력 구조를 고발하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이 작업이 항상 같은 구조를 보여 아쉬웠다. 단편적인 글마다 큰 주제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담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또는 하나의 생각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해석을 끌고 갔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다. 하나의 현상을 깊이 있게 여러 장에 걸쳐서 이야기했다면, 독자에게 더욱 오래 남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하나의 권력 구조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남자일 땐 다른 성별에 비해 권력이 높을 수 있다. 내가 대졸자일 때 고졸자에 비해 취업에서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시아인일 때 나는 백인 및 다른 인종에 비해 힘이 없어진다. 내가 지방에 살 땐, 서울에 사는 사람들 보다 문화 권력 역시 낮아진다. 이렇듯 우리의 권력 구조는 다층적이며, 가변적이다. 하나의 권력 구조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것은 하나의 구멍으로 벽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하나의 구멍에서 볼 수 있는 세계는 제한적이다. 다른 쪽 면이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다른 구멍을 바라볼 수 있는 자세와 다른 구멍들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세가 없다면 하나의 구멍에서만 본 세상을 진리라고 생각하며, 다른 구멍들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 위험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아무리 복잡하게 봐도 세상을 모두 볼 순 없다. 단순화의 작업이 세상의 두드러진 특징을 잡아낼 수 있지만, 그 외의 것들은 소외되고 만다. '소외'는 폭력을 낳는다. 세상을 단순하게 보는 것도 좋지만, 내가 갖고 있는 연장 도구를 최대한으로 활용해 복잡하게 바라보는 건 어떨까? 이게 낯설게 보기의 시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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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 우울증과 번아웃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나에게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지음, 추미란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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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푹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탁해지는 느낌이었다. 먹는 양도 갑자기 확 늘기 시작했다. 5월 한 달간 살이 5kg이 찔 정도로 먹고 또 먹었다. 정말 침대에 누우면 골아 떨어지는 수준이 될 때까지 나를 혹사시켰다. 곧장 잘 수 있을 정도로 눈이 감기기 시작할 때가 나의 하루의 끝이었다. 잠을 잘 때까지는 일은 끊기지 않는 연속이었다.

많은 일들은 한 번에 하다 보니, 정작 내가 해야 할 것들에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일이나 학교 강의 같은 해야 하는 것들이 그 자리를 넘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일을 시작한 나를 탓하면서도 결코 그 일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5월엔 독일어, 스페인어, 교육학 공부, 글쓰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투자하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가 무탈히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다행히 학기가 마무리되면서, 나의 삶도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이번 주 목요일까지만 해도 글쓰기는 사치였다. 따뜻한 햇살 아래서 책을 읽는 것도, 아주 가끔씩만 가능했다. 그런데 이젠 다시 햇살 아래서 책을 읽고, 내가 가진 재료들을 적극 활용해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그토록 원하던 것을 하니 웃음이 끊기질 않는다. 다시 내가 원하는 삶에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기념하며 제일 처음 읽은 책이다. 내가 지난 5월에 겪었던 느낌을 잘 담아낼 거라 생각해 선택했다. 평소에 즐겨 찾는 분야의 책은 아니지만, 벤치에 앉아 자연을 느끼면서 읽기에 편한 책이었다. 또 굳이 모든 내용을 세세히 볼 필요 없이, 내가 읽고 싶은 부분만 가볍게 쓱 넘겨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한 질문이 떠올랐다. 과연 이 책은 언제 읽어야 하는가? 번아웃,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과연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내가 5월에 겪은 고단함보다 훨씬 힘든 심리적 압박을 느끼는 사람들이 과연 이 책을 읽을 여유가 있을까 궁금했다. 또한 이를 극복한 사람들이 이 내용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고통을 느낄 땐, 그 순간이 견디기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고통은 미화된다. 나 역시 5월에 느꼈던 고단함보단, 현재 행복한 것이 나의 삶과 생각에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번아웃의 전조증상이 나의 5월 모습 같은데, 이를 읽는 6월의 나에겐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이 이 책을 선택할지 궁금하다.

우울증과 번아웃은 아직도 나에겐 낯선 병이다. 내 주변에 이를 겪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건강 정보 모음 글 느낌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의약품에 대한 비판은 새로운 정보였다. 의약품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 쉽지 않은데, 이 글을 통해 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이 책은 절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읽을 필요가 없다. 즉 필요하지 않으면 읽지 않아도 되는 책 같다. 하지만 필요성을 느끼는 독자라면, 자신의 상태에 맞게 글을 찾아 읽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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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희 2021-07-1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을 언제 봐야하는지는 괜찮아지고 여유 생겼을 때의 본인이 선택했으니 알고 있는 것 아닐까요? 정말 힘들때 우울증이 왔을땐 책 하나 읽는 게 힘들테니 당연히 어려울 수 있죠! 그러다 괜찮아지고 싶고 극복하고픈 맘이 든다면 그때서야 책이 눈에 들어올 것 같아요~ 아쉽게도 5월의 내모습을 잘 담아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 책이 당연히 나의 모습을 담고 있을거란 생각으로 골라서 실망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인터넷 속 건강정보를 담은 듯 보일 순 있어요! 왜냐면 요새는 유튜브에 블로그 카페 인스타 등등 다양한 sns에서 비슷한 내용의 글들이 올라오고 직접 찾아보시기도 많이 찾아보셨을테니까요^^
 
일단 합격하고 오겠습니다 ZERTIFIKAT DEUTSCH 독일어능력시험 B2 일단 합격하고 오겠습니다 ZERTIFIKAT DEUTSCH
정유진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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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독일어 문법 공부를 했다. 문법을 명시적으로 공부하는 걸 싫어하는데, 운이 책 한 권을 받게 돼 한번 공부해봤다. 이 책은 시원스쿨에서 강의 교재로 사용하는 책이다. <일단 합격하고 오겠습니다>시 키지로 쎄쌤 톡 방에서 누가 B1를 준비하는 걸 알았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또 이 책의 저자 정유진 선생님은 쎄쌤이 항상 다른 학생들에게도 좋다고 추천해 주시는 선생님이었다. 독일인의 입장에서도 한국인에게 바른 독일어를 가르쳐준다고 한다. 내가 받은 책은 B2 대비를 위한 책이었는데, 내가 C1 수준이라고 해도 B2를 다 알지 못하기에 부족한 부분을 위주로 공부해봤다. 또 자격증을 위한 시험 준비를 테스 타프 때만에 해봤기에, 어떤 지식 필요한지 궁금하기도 했다. 책의 두께는 400쪽 정도지만, 시험 대비를 하지 않기에 시험 부분들은 읽지 않았다. 시험 유형을 굳이 알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문법 지식을 학습하는 것에만 초점을 뒀다.



문법과 구문을 학습하면서 느낀 이 책의 특징은 간결성이다. 강의와 함께 활용도는 책이다 보니, 문법 설명이 간결하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문법 지식에 대한 설명이 없기도 했다. 독일어 능력별로 요구되는 문법 지식이 다르니 그럴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이 책에서 다뤄지는 문법 지식의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 C1까지 공부하면서 조금씩 주워들은 문법 지식이 없었다면 혼자 공부기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독학을 하는 학생들이라면 이 책으로 혼자 독일어 B2를 준비하기에 무리가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더 많은 예시와 함께 문법 설명이 있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몇몇은 설명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문법은 아무래도 정확도가 중요한데, 감수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문법 지식을 토대로 제시된 예시 문장은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많이 채워줬다. 특히 언어 공부를 하면서, 함께 쓰이는 동사와 명사 쌍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의 예시문은 그런 공부를 하기에 적합했다. 또한 우리와 멀리 떨어진 이야기로 예시 문제들이 구성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쓰일 법한 문장을 활용해 필요성을 느끼며 공부할 수 있었다. 다만 예시문의 뜻이 제시됐다면, 혼자 공부하는 교재로서 더욱 도움이 됐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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