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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 -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ㅣ 윤곽 3부작
레이첼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8월
평점 :
윤곽은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이 '21세기 최고의 책 100'으로 선정한 소설이다. 2020년에 21세기를 대표하는 책을 선정하는 것이 우습지만, 20년간 발행된 수많은 책들을 제쳤다는 사실만으로도 명예로운 일이다. 특히 가디언지는 영국을 대표하는 일간지로서, 이 소설을 가벼운 이유로 목록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됐고 궁금했다. 이 조그만 책에서 어떠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됐다. 다른 책들이 갖지 못한 '윤곽'의 강점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러한 마음을 안고 소설을 시작했다. 책장은 아주 가볍게 넘어갔다. 쉽고 일상적인 언어로 소설이 이뤄지기 때문에 소설을 읽어나가는 데엔 어려움이 없었다. 작가의 언어를 따라가며 책장을 넘기니 어느새 책의 후반부에 도착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책이 끝났다. 모든 게 순식간에 이뤄졌다. 책을 빨리 읽는 편이 아닌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이 끝나버렸다. 책을 덮었을 때 "내가 무엇을 읽은 거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어려움 없이 책을 읽었지만,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나는 나의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타인의 서평을 읽지 않는 편이다. 같은 책이더라도, 그들과 내가 읽은 책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껏 쌓아온 경험, 생각 등이 물리적인 책과 어우러져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들 나름의 의미를 찾는다. 같은 책에서 같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만, 전혀 다른 모습을 할 수도 있다. 내가 나의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먼저 보면 이 책에서 나만의 의미를 뽑아내기 어려워진다. 다른 사람의 서평을 읽은 기억이 나의 이미 창출 과정에 간섭하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그 기억을 잊으려 해도, 이를 전적으로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서평은 누군가의 간섭이 절실히 필요했다. 쉽게 읽히면서 의미를 뽑아낼 수 없던 책은 처음이었다.
가장 먼저 아마존에서 이 책의 평을 찾았다.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내가 발견하지 못한 이 책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다양했다. 이 책에서 어떠한 감흥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 있는 반면, 이 책을 극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의 글을 천천히 읽어갔다. 어떤 글은 나와 생각이 똑같아서 놀랐다. 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 같았다. 다른 독자들이 이 책에서 뽑아낸 의미 역시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주목하지 않은 부분들을 그들의 글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독서할 때 가볍게 넘기는 것들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었더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의 이 책에 대한 평가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이 책은 대화로만 이뤄져 있고, 대화 참여자들의 정보는 파편적이다. 그들은 주인공에게 각자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 쉽다. 그들에 대한 정보는 오로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주인공이 그들과 같은 경험을 공유한 것이 아니기에, 주인공의 체험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주인공 역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평가할 수도 없다. 또한 이것에 대해 가치 평가하기도 조심스럽다.
내가 이 소설에서 의미를 뽑아내기 어려운 이유를 생각해봤다. 맺고 끊음이 없었다. 다른 소설의 경우, 상대방의 말에 대한 반응이 담기기 마련이다. 누군가 이야기를 했으면, 그것에 대하 상대방의 반응이 뒤따르다. 감정 표현, 의미 창출 등 다양한 형식으로 반응이 나타난다. 그 후에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파예'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이럴만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무미건조한 '파예'의 대화 참여는 대화의 매듭을 짓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주인공이 반응을 할 때, 나도 반응을 하는 편인데 이 소설은 그럴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책장은 쉽게 넘겼지만, 마지막 장에 내가 안고 간 의미가 없던 것이 아니었다 싶다.
소설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하나 있었다. 소설 '폭풍의 언덕'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이다. 같은 창을 통해 바깥을 봐도, 사람마다 보는 것이 다르다. 모든 인간살이 그러 것 같다. 무언가 보는 방식뿐 아니라 대화 참여 역시 사람마다 상이하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서로 느끼는 것, 얻어 가는 것이 다르다. 화자는 누군가에게 청자며, 청자는 누군가에게 화자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에 똑같이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이 소설은 청자와 화자 역할이 뚜렷하다. 주인공은 주로 청자의 역할을 하고,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화자의 역할을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같은 창을 보더라도, 다른 것을 보듯이 나와 다른 감정과 생각을 얻어 가겠지. 이러한 점에서 다른 독자들의 리뷰를 보기를 잘한 것 같다. 청자로서 내가 얻어내지 못한 걸 다른 청자들 얻어냈으니.
쉬운 언어로 채워진 소설이지만, 천천히 읽어야 할 것 같다. 대화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리며, 대화 당사자들이 무슨 문제를 안고 있는지 찬찬히 사려야 하는 소설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게 뭐지?"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마치 나처럼. 하지만 나와 같은 독자가 많다는 사실에 위안이 된다. 나는 지금껏 나의 습관대로 소설을 읽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고 하면 내가 느낀 바를 그대로 전해줄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처럼 독서를 하라. 그 대화에서 의미를 끄집어내는 것은 대화 참여자들이 아니라, 순순히 독자의 몫이다. 대화를 경청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쳐 길을 잃게 된다. 이러한 나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스스로 헤쳐나가도록 한다. 이러한 점에서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 그리고 이 책이 왜 21세기 최고의 책 100에 선정됐는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