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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삭제 완역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ㅣ 현대지성 클래식 37
메리 셸리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평점 :
인류가 가져올 창조물에 대한 윤리와 책임은 누가 정의하는가?
200년 전 쓰인 고풍스러운 SF 소설이다. 당시 자연과학의 열풍으로 사람들은 새로운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인간의 손으로 창조주의 일을 인간 스스로 해낼 수도 있다는 기대. 그 기대는 이미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상상 속에 창조했고, 그로 인해 벌어질지 모르는 신생명에 대한 윤리와 책임의 소재를 미리 곱씹어 본 이야기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인지 알았다
프랑켄슈타인 하면 동명의 영화 속에 존재하는 괴물을 떠올렸다. 며칠 전 서평을 위해 받은 책 표지를 보고 중학생 아들 녀석이 "엄마,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아니라- 그 괴물을 만든 사람 이름이더라고요?" 나는 내 아들이 만날 먹을 거만 축내고 사는 밥도둑인 줄 알았는데 가끔 지적으로 보일 때도 있더라. 과연 아들의 말대로 프랑켄슈타인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추하게 생긴 괴물을 창조한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자기가 만들어 놓고 내팽개친다
프랑켄슈타인은 생각이 어린 사람이다. 고결한 척, 지적인 척 한껏 고개를 치켜들고 부족한 것 없이 산다. 한마디로 금수저를 쥐고 태어난 명문가 부잣집 도련님인데 서른이 다 된 나이에 자연 과학에 관심을 갖더니 중간 과정 싹 삭제하고 어느 날 인간을 만든다. 황당하다, 한마디로.
자신이 만들 창조물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과 인류에 끼칠 파장을 전혀 생각하지도 마술과 같이 신생 인류를 만든다.
그리고 자기 상상과는 다른 핏줄이 훤히 보이는 살결, 디룽거리는 누런 두 눈, 질척거리는 검은 머리칼, 흐늘 거리는 관절 등 그가 만든 창조물의 안 생긴 미모에 온갖 폭언을 다 퍼붓는다. 이게 웹툰이면 내가 몇 년 치 들을 온갖 쌍욕이 종합선물세트로 모조리 쏟아져 나올 판이다.
I beheld the wretch — the miserable monster whom I had created.
내가 창조해낸 참혹한 괴물이었어요.
프랑켄슈타인
괴물은 아예 이름도 없이 죽는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 - 김춘수
프랑켄슈타인은 자기의 창조물에게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꽃은 고사하고, 괴물이라는 언어 폭행을 가한다.
그는 숨이 끊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손으로 지은 창조물을 극혐오한다. 엄청난 일관성이다. 내가 보기에는 혐오스러운 외모는 괴물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괴물은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나온 게 아니다. 지가 만들어 놓고, 자기가 내팽개친 거다.
그러나 나는 철저히 혼자요
프랑켄슈타인
인간도 괴물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고결함과 숭고함을 주인으로부터 부여받았으나 결국 자기를 창조한 자의 철저한 무시와 배신으로 프랑켄슈타인의 이중적인 살기, 분노, 포악함을 배운다. 프랑켄슈타인은 자기가 만든 창조물을 처음부터 끔찍한 괴물이라 마이너스 빵점의 별점을 주지만 실은 프랑켄슈타인이 최악의 창조자이자 저열한 인간의 상을 적나라하게 하게 보여준다. 살기 어린 살인마로 변해가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나 프랑켄슈타인 모두 인간성의 모든 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빚은 괴물 모두 괴물이면서 인간이다.
인류 전체가 내게 죄를 지었는데, 유일한 범죄자라는 굴레는 왜 나만 써야 하는 겁니까?
프랑켄슈타인
내 안에도 괴물이?
프랑켄슈타인은 고결한 척, 인간다운 척 온갖 척을 다 한다. 자기의 창조물에게 배우자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여기저기 도망 다니며 괴물을 약 올린다. 결국 괴물에게 된통 당하고 괴물을 죽이겠다고 추적자로 살다 객사한다. 천벌받은 거지.
모든 인간에게 배반당한 그를 보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일그러진 상을 본 건 아닐까? 자기의 괴물을 괴롭히는 건 결국 그런 괴물을 창조한 자기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고 싶었던 자해 행위는 아니었나?
프랑켄슈타인의 패배로 일단락 맺지만 정말 불쌍한 건 그런 몰골로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살 괴물의 운명이다. 내 아비가 죽었으니 나도 죽을란다 하며 홀연히 "얼음 뗏목"으로 가뿐히 짬뿌하는 괴물.
뗏목에 올라타며 괴물은 이런 말도 남기지 않았을까?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자신이 천하게 난 것을 스스로 가슴 깊이 한탄하네
홍길동전 짜깁기